[기자수첩]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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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 김흥수 기자
  • 승인 2022.12.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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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상인회,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사결과 감춰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가 우선인 상인의 의무 망각

대구시는 최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추진 협약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국상인연합회 대구지회를 비롯한 소상공인단체와 대형마트의 협의체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소속 관계자가 참석해 대구 지역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에 협력하기로 했다.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 의무적으로 쉬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10년간 업계에서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규제’라거나 ‘급변하는 유통환경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규제’라는 지적들이 잇따랐다.

전국상인연합회(전상연)는 2015년경 3000만원의 비용을 들여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통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대중소유통협력에 대한 상가인식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전상연 관계자는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의 시행이 3년이 흐른 시점에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이 전통시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조사를 진행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전상연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왔다. 전통시장 상인의 31.2%만이 대형마트의 주말휴무제를 고집하는 답변결과가 나온 것이다. 반면 요일과 상관없다거나 평일로 바꿔야 한다는 답변은 60.9%에 달했다.

당시 전상연집행부에서는 조사결과를 덮어버리기로 결정했다. 당시 관계자에 따르면 조사결과를 발표하게 되면 대형마트로부터 매년 받을 수 있는 상생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덮어버렸다고 한다. 

지난 8월 대형마트 의무휴무제 논란이 불거지자 전상연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형마트의 의무휴무제를 폐지하면 전통시장 상인들이 모두 죽는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전상연 일부 임원들은 전상연이 의무휴무제를 평일로 옮기는데 합의해주면 각 지역에서 상생기금을 받고 있는 상인회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아 견뎌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는 전상연뿐이 아니다. 대표적인 소상공인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도 대형마트의 일요일 의무휴무제 변경은 골목상권을 죽일것이라며 전상연의 반발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소공연 또한 마찬가지로 각 지역에서 상생기금을 받고 있는 지역회장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논리가 빈약할 수 밖에 없다. 빈약한 논리를 메우기 위해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차원에서도 일요일 의무휴무제는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을 꺼내들었다.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휴식권은 보장돼야 한다면서도, 연중무휴로 영업하는 자신들이 고용한 동네수퍼 노동자의 휴식권은 안중에도 없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형태를 보였다.

서울의 고척동과 공항동에는 새로운 복합쇼핑몰이 입점을 계획하고 있어 지역 골목상권 상인들이 비대위까지 구성해가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 초기에 참여했던 서울상인연합회 회장은 올해 상반기에 비대위를 탈퇴했다고 한다. 비대위가 여성단체와 장애인단체까지 끌어들여 반발하는 모습을 보며 ‘전통시장 팔아서 돈 뜯어내려는 수작’에 휘말리기 싫어 탈퇴했다고 고백했다. 

대형마트의 입점을 볼모로 지급된 상생기금이 지역 소상공인 단체장들의 기금횡령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도권에서 소공연 광역단체장을 지낸 한 인사는 “상생기금 받아먹는 몇 안 되는 소상공인때문에 5천만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으니 대형마트 의무휴무제는 당장 폐기돼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의 혜택은 세계로, 장보고 등 골목상권이라 부르기 어려운 식자재마트에게로 돌아갔다. 매장 규모가 3000㎡(907.5평)이하이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SSM만 규제대상일 뿐 식자재마트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식자재마트의 집합체인 한국마트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대형 식자재마트는 체인점형태로 운영되면서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상위 4개사의 연 매출액이 2조원을 상회한다고 하니 무늬만 골목상권인 대형마트의 또 다른 전형이다.

전상연 관계자는 덧붙여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의 코앞이나 한가운데에 점포를 개설해 그나마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들까지 모두 빨아들이고 있다며 비난한다.

이렇듯 ‘대형마트가 쉬는 날이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 혹은 골목상권을 찾을 것’이라는 논리는 현실에 전혀 맞지 않을뿐더러 특정 집단의 선전선동이 생성해 낸 집단최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대구시가 집단최면에서 깨어나기 위한 물꼬를 텄다. 타 지자체들도 대형마트의 의무휴무제를 재검토해야 할 시기가 됐다. 

지난 십수년간 전통시장에 쏟아부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금은 수조원을 넘어섰다. 거기에 대형유통업체가 퍼 준 상생기금도 한두푼이 아니다. 그 많은 돈을 받아가면서도 발전을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한 탓에 이 나라 골목상권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마트에 족쇄를 못 채워 안달이 났던 사람들은 “소비자가 원하면 알파고라도 구해다 주는 것이 상인의 의무”라고 했던 어느 전통시장 상인회장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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