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銀, 디지털화폐 검증 돌입... 은행 "플랫폼 고도화 총력"
상태바
韓銀, 디지털화폐 검증 돌입... 은행 "플랫폼 고도화 총력"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2.09.07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 CBDC 연계 실험 가닥... 하반기 확대
5대 은행, 관련 부서 신설 등 인프라 구성 준비
한은 "아직은 결제시스템 설계 단계 연구 중"
보안·익명성·프라이버시 보장 여부는 ‘과제’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들이 CBDC도입 관련해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들이 CBDC도입 관련해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최근 한국은행이 시중은행들과 손잡고 CBDC(디지털화폐) 시범 운영 확대에 돌입했다. 기존 심층 프로젝트 수준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 측면에서 검증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다. 은행들은 디지털화폐 시장 진출을 위해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고도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시중은행들은 올해 하반기 안으로 CBDC 연계 실험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CBDC는 상용화된 디지털 금융 거래와는 달리 금융기관의 중개 없이 단독으로 현금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디지털 법정 화폐를 일컫는다.

구현 방식은 한국은행 파일럿 플랫폼과 각 은행의 CBDC 플랫폼 시스템을 연계하는 식이다. 한국은행이 CBDC를 발행할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 검증을 통해 정상적인 유통(결제·송금, 해외송금 등)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일원장 방식과 다수의 거래 참가자가 동일한 거래기록을 관리하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원장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CBDC 파일럿 플랫폼 테스트에 참여한 은행들은 KB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은행 등이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CBDC 관련 부서를 신설해 모의테스트를 하거나 자체 플랫폼 개발을 추진해왔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17일 금융권 최초로 디지털화폐 파일럿 시스템 대응을 위해 이더리움 계열과 하이퍼레저 블록체인 플랫폼 2종을 구축했다. 또한 자체 스테이블코인 NHDC(NongHyup Digital Currency)' 개발을 공식화했다. NHDC는 한국은행이 CBDC 대응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할 시 디지털자산 확장 기술 검증을 위해 쓰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은행 CBDC 도입에 맞춰 블록체인 플랫폼과 전자지갑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의 확장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앞으로 원활한 유통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은행은 향후 자체 구축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활용해 연말까지 대체불가토큰(NFT), 스테이블코인(농협은행 디지털화폐 NHDC), 멀티자산 전자지갑 등 다양한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 모델을 검증할 계획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화폐 플랫폼의 시범 구축을 선제적으로 완료한 은행도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3월 8일 CBDC 발행에 대비해 LG CNS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플랫폼 시범 구축을 했다. 이 플랫폼은 향후 CBDC가 도입될 경우 개인·가맹점은 물론 계좌 조회, 결제, 송금, 환전, 충전이 가능하다. 거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의 토큰형(거래별 데이터 관리) 방식이 적용됐다. LG CNS는 블록체인 사업 관련 국내 최다 수준의 개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CBDC의 발행 형태를 개인이 보유한 원화 잔액에서 환전해 사용하는 일반자금과 정부·지자체에서 교부하는 재난지원금도 구분이 가능하다. 신한은행은 자금별로 원장을 별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재난지원금은 사용처를 한정하거나 사용 기한을 설정할 수도 있다.

하나은행도 CBDC 상용화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는 포스텍 크립토블록체인연구센터와 함께 CBDC 도입 전 기술 검증을 수행했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과 연계가 용이한 '코스모스(Cosmos)' 플랫폼을 통해 진행됐다. 해당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화폐가 실제로 도입됐을 때 시중은행이 실물화폐처럼 공급과 개인의 교환·이체·결제 등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해 테스트한 것이다. 또한 특정 업종이나 지역에서만 결제할 수 있게 하거나 일정 기간 동안만 사용되도록 조건을 설정하는 등 기능을 추가로 적용했다.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이 온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설계해 검증한 것이 특징이다.

KB국민은행도 LG CNS와 협력해 중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앞서 2019년에는 전자화폐인 마곡페이를 개발한 바 있다. 마곡페이는 암호화폐(토큰) 기반 결제 프로젝트다. LG사이언스파크 내 식당에서 카드나 현금이 아닌 토큰으로 먼저 결제하고 정산하는 서비스다. 전자화폐를 자체 모바일 앱에서 충전, 가맹점에서 실제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LG CNS가 운용사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자지갑 구현과 CBDC 파일럿 테스트를 추진 중이다.

KB국민은행은 올해 3월 블록체인 전문기업 람다256과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람다256은 클라우드 기반의 블록체인 서비스 플랫폼 ‘루니버스’를 운영하는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사다. 가상자산 사업자의 트래블룰(자금이동추적시스템) 준수를 돕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람다256과 함께 NFT, CBDC 등 블록체인 기술 상용화를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업무에 확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블록체인 플랫폼 업무를 전담하는 '혁신기술사업부'를 신설했다. 올해 초에는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해 한국은행 CBDC 모의실험연구의 민간기관 유통을 위한 기술 검증을 완료했다. 오는 하반기 한국은행의 CBDC 유통확대 실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CBDC 플랫폼 개발과 함께 자체 스테이블코인인 '우리은행디지털화폐(WBDC)' 발행도 검토 중이다. 또한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는 NFT 발행과 이를 송금과 결제에 이용할 수 있는 멀티자산지갑 등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은행이 CBDC를 발행하면 이를 직접 유통하지 않고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한 시중은행을 통해 국민들에게 간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은행들이 블록체인 기술로 플랫폼을 고도화하려는 이유는 향후 CBDC가 발행될 때 거버넌스(governance)할 수 있는 장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버넌스 작용은 데이터 환경에 기록하는 ‘분산원장(分散元帳·distributed ledger) 관리 기술’을 의미한다. 

분산원장 기술은 온라인 거래기록을 하나의 데이터로 만들어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은행들과의 모의실험에서 분산원장 기반의 관리 기술과 데이터 위·변조 방지를 위한 보안기술을 CBDC 시스템에 적용 가능한지 여부를 점검 중이다. 이는 가상환경에서 CBDC를 사용할 때 결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CBDC 제도화가 제대로 정착되려면 현금 수준의 익명성·프라이버시 보장 유무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종이화폐의 경우 완전한 익명성이 보장되나 CBDC는 설계에 따라 자금 출처를 추적해야 하므로 보안체계 구축은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이다. 특히 CBDC 시스템이 시중에 도입됐을 경우 현재 공존하는 대외적인 금융정책성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성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CBDC가 기존에 나온 가상화폐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보안체계 구축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상황”이라며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기존 은행 서버에서 계좌를 관리했던 것도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하게 되므로 이에 따른 다양한 금융정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여져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행은 시중은행 등 민간기관과 공조해 관련 리스크를 점검하고 제도적 기반 마련에 대한 필요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그동안 CBDC 도입 필요성 제기에 따라 연구모델을 추진해 왔다”면서 “현재는 참여한 은행들과 가상공간에서 시험테스트를 하고 있는 것과 동시 현금에 비해 익명성이 약화될 수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 관련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CDBC가 당장 실물로 나올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기술적으로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있고, 국민들에게 간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유력기관과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