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현대차 로봇에 도전장... "머스크式 쇼맨십" 업계 회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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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현대차 로봇에 도전장... "머스크式 쇼맨십" 업계 회의적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9.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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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AI데이 열고 ‘테슬라봇’ 내년 공개 선언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현대차, 로봇 상용화 박차
궁합 좋은 '자동차'와 '로봇' 만남, 시너지 극대화
'스팟' '아틀라스' '스트레치'... 정의선 '신의 한수'
블룸버그 "머스크, 시제품 내놓고 비전만 제시 사례 많아"
'로봇개' 스팟과 현대차의 차량모델. 사진=현대차
'로봇개' 스팟과 현대차의 차량모델. 사진=현대차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4차 산업시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로봇’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로봇개발 전문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은 단숨에 이 분야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내연기관차에 국한됐던 전통적 사업구조에서 탈피해 수소사업과 도심항공모빌리티(UAM)에 이어 로보틱스 분야까지 확장하며 야심을 드러내는 정의선 회장의 ‘승부수’다. 

자동차와 로봇은 얼핏보면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밀어내며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요즘, 로봇기술은 자동차 기업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됐다. 전기차의 자율주행 기술과 인공지능(AI), 이차전지, 전기모터 기술 등은 로봇 기술과 접점이 많다. 전기차가 이미 바퀴달린 ‘로봇’이나 다름없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로보틱스 기술은 자동차 기업에게 꽤 매력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2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6월 지분 인수를 최종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에 따라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분 80%는 현대차그룹이, 나머지 20%는 소프트뱅크가 보유하게 됐다. 

현대차가 투자한 지분인수 금액은 8억 8000만달러(한화 약 1조원) 규모다. 이 중 정의선 회장이 지분 20%가량을 사재 2400억원에 사들였다는 사실은, 정 회장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 사진=시장경제DB
정의선 현대차 회장. 사진=시장경제DB

 

독보적인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기술... 정의선 '신의 한수'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보유한 로봇 플랫폼은 4족보행 로봇 ‘스팟’과 2족보행 로봇 ‘아틀라스’, 자동 물류로봇 '스트레치' 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종류의 로봇 모두 세계적으로 독보적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일명 ‘로봇개’로도 불리는 스팟의 전신은 군사용으로 개발됐던 ‘빅독’이다. 2015년 2월 처음 영상을 통해 공개된 빅독은 험한 산길과 빙판길을 시속 6.4km의 속도로 주파하는 모습을 보여줘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디젤엔진을 탑재한 탓에 요란한 소음이 단점이었던 빅독은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하는 ‘스팟’으로 진화했다. 스팟은 개발단계에서부터 험지를 누빌 수 있도록 개발한 빅독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빅독에 비해 몸집을 크게 줄여 인간이 진입해 작업하기 어려운 재해현장이나 각종 장애물이 산적한 산업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최대 주행 속도는 4.8km/h, 평균 작동시간은 약 90분 수준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전 소유주인 구글과 소프트뱅크의 경우, 로봇기술 상용화 과제를 끝내 풀어내지 못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적극적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을 실제 산업현장에 투입하며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이달 17일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첫 협력 프로젝트를 공개한 바 있다. 산업현장의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이 그것이다. 이 로봇은 최근 기아 '오토랜드 광명' 내부에서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의 근간은 '스팟'이다. 여기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의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AI 프로세싱 서비스 유닛’을 적용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스팟이 ‘몸’이라면, 현대차그룹의 AI유닛은 ‘두뇌’인 셈이다. 

AI 유닛은 3D 라이다(Lidar), 열화상 카메라, 전면 카메라 등 다양한 센서를 탑재했다. 딥러닝 기반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통해 ▲출입구 개폐 여부 인식 ▲고온 위험 감지 ▲외부인 무단침입 감지 등이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반 내비게이션을 갖추고 있어 산업현장 내 정해진 순찰영역을 자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로봇은 근로자들이 퇴근한 새벽 시간 대 시설 내부 순찰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차그룹은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의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 상용화를 본격 추진한다는 밑그림을 그렸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첫 물류로봇 ‘스트레치’도 가까운 미래에 산업현장에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하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스트레치는 한 시간에 상자 800여개를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좁은 공간에서도 움직임이 자유로워 기존 물류창고에 그대로 투입할 수 있다. 

4개의 바퀴로 기동하는 스트레치에는 진공흡착 패드가 달린 로봇팔이 달려있다. 로봇팔은 한번에 최대 23kg의 물건을 들어올린다. 머신러닝 기반 ‘비전시스템’을 탑재해 컨테이너 내 벽과의 충돌을 피하고, 각각의 박스를 인식·선별한다. 한번 충전하면 8시간 동안 작동해 실사용에도 부족함이 없다. 

이달 10일 현대차그룹이 개최한 온라인 미디어 간담회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버트 플레이터 CEO는 스트레치에 대해 “매년 5000억 개 이상의 상자가 사람들에 의해 수동으로 이동되고 있다”며 “물류산업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지는 이 시대에 스트레치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는 '아틀라스'. 사진=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캡쳐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는 '아틀라스'. 사진=보스턴다이내믹스 유튜브 캡처.

 

'휴머노이드'에 도전장 내민 테슬라... 상용화는 '글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간판스타’격인 2족보행 로봇 ‘아틀라스’도 빼놓을 수 없다. 아틀라스는 휴머노이드 형태의 로봇으로 1.5미터 높이에 무게는 89kg이다. 28개의 유압관절을 지녔으며, 실시간 인식 및 모델 예측 제어 기능을 갖췄다. 이를 통해 걷고 뛰는 기본적인 동작은 물론, 장애물을 피해 점프를 하거나 물구나무서기, 공중제비 등 높은 난이도의 동작을 무리 없이 구현할 수 있다.  

아틀라스는 연구 단계에 있으며, 아직까지 상용화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미디어간담회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아론 손더스 최고기술책임자는 “아틀라스를 활용한 안정성 연구는 로봇이 일상생활에 적응하는데 있어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이며, 이는 로봇과 보스톤 다이내믹스 미래 경쟁력을 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보스턴나이내믹스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미국 굴지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켈리포니아 테슬라 본사에서 인공지능(AI)데이를 열고 ‘테슬라봇’ 개발을 선언했다.  

머스크가 소개한 테슬라봇 제원은 키 172cm, 몸무게 57kg이다. 이동속도는 8km/h에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손을 갖췄다. 한번에 들 수 있는 짐의 무게는 20kg 수준이다. 테슬라는 이 로봇의 시제품을 내년 공개할 계획이다. 

자신만만한 발표와 달리, 업계 반응은 회의적이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술격차를 보여주고 있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단기간에 뛰어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요 외신도 내년에 테슬라봇이 공개될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상황이다. 전형적인 머스크식 ‘쇼맨십’이라는 반응도 적잖다.

블룸버그는 “일론 머스크는 그동안 시제품 수준의 상품을 출시하고 양산을 시작하기 전부터 비전만을 가지고 판매를 시작한 사례가 많다”며 “테슬라봇이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테슬라의 미션과 어떻게 부합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CNN도 “머스크는 자동차와 우주항공 업계에서 혁신을 이뤄냈다”면서도 “기존 발표된 일정을 지키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야심찬 목표를 발표한다는 평판을 받았다”고 촌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기술이 시작된 시기는 무려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창립자인 마크레이버트 MIT 교수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1족 점프 로봇을 개발했다. 4족 보행 빅독이 개발된 시기는 2008년이며, 2족 보행로봇 아틀라스는 2013년 처음 공개됐다. 로봇기술을 최일선에서 개척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노하우를 경쟁업체들은 흉내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테슬라봇의 개발 유무와는 상관없이 현대차그룹은 로보틱스 분야에서 지배적 위치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흐름 속에서, 로봇기술은 스마트모빌리티와 물류분야를 아우르며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이달 13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국회 ‘모빌리티 포럼’ 3차 세미나에 참석한 자리에서 “현대차그룹이 모빌리티와 로보틱스 등의 기술에 대해 투자를 하고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는 목적은 결국 우리와 우리 후손을 포함, 모든 인류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내비쳤다. 

나아가 정 회장은 “로보틱스는 기술 자체가 목적이 아닌 오로지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앞으로 안전성 등에 중점을 두고 기술을 차근차근 개발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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