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하루 손실 15억... 불법점거 3주째, 상처 뿐인 현대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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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하루 손실 15억... 불법점거 3주째, 상처 뿐인 현대제철
  • 신준혁 기자
  • 승인 2021.09.1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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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로 정규직"... 민노총 당진제철소 불법점거
'선 넘은' 시위, 월급 주는 재경부서 직원 출입 통제
경비업체 1명 코로나 확진, 노조위해 검사소 설치
남은 건물마저 점거 당할까... 경비업체도 초긴장
'하루 손실액 15억' 현대제철, 민노총에 손해배상 예고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무단 점거한 당진 제철소 통제센터. 사진=시장경제DB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조원이 무단 점거한 당진제철소 통제센터. 사진=시장경제DB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회사와 노조 간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가 3주 넘게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제철이 자회사 설립을 통해 협력업체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침에 반대하고 '본사 직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통제센터를 무단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당진제철소 경비업체 직원 10명과 당진제철소 직원 1명 등 총 11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외부에는 타 지역에서 집결한 노조원까지 가세해 천막을 치고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24시간 시위를 이어가기 위해 건물 내외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통제센터는 제철소를 종합 관리하는 관제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당진제철소 최고 관리자인 제철소장 집무실을 비롯해 직원 월급을 지급하는 재경부서도 이 건물에 위치한다. 현재 통제센터 근로자는 인근 사무동으로 옮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무동 주변으로는 외주 경비업체 직원들이 배치돼 노조의 무단 점거에 대비하고 있다. 

내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시위를 하더라도 공장 운영이 가능한 최소한의 동선과 출입을 허용했다"며 "지금은 출입구와 로비 등 모든 동선을 차단한데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중에도 대규모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까지 현대ITC 근로자에 대한 폭력사태나 접촉은 다행히 없다"며 "남은 사무동을 점거한다는 첩보가 있어 건물과 부서를 걸어 잠그고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이 통제센터 인근에 천막을 설치한 모습. 사진=블라인드.

사실상 불법으로 건물을 점거하고 3주째 공장 운영을 방해하고 있지만 지자체인 당진시와 당진경찰서는 손을 놓고 있다. 경찰은 통제센터 인근에 대규모 인력을 배치했지만 해산을 명령하지도 않았고, 강제 진압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대규모 집회가 장기화되면서 코로나 확산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현대제철 경비업체 직원 A씨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A는 지난달 23일 조합원 100여명이 통제센터를 점거할 당시 이를 막기 위해 조합원들과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당국은 불법 농성 중인 노조를 위해 통제센터 앞 임시 출장 검사소를 마련해 코로나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인원은 전원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피검사자 수가 39명에 불과해, 추가 확진자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일 현대제철 경비업체 직원들이 사무동 건물을 경비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1일 현대제철 외주 경비업체 직원들이 사무동 건물을 경비하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본사 정규직 해달라" 명분 잃은 싸움 계속

문제는 불법 점거가 길어지면서 사업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제철은 통제센터 점거로 인한 생산운영 차질비용을 하루 15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등 혐의로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고소와 방해금지가처분을 진행했다. 가처분 신청사건 첫 심문기일은 14일 대전지법에서 열렸다. 법원이 가처분금액을 확정하면 노조는 1일 당 1000만원을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 이와 별도로 통제센터 점거를 주도한 노조원 10명에 대해서도 1일 당 각 100만원의 간접강제비용 청구가 이뤄졌다. 

현대제철은 본사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는 노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직고용은 민간 기업로서 최초로 시행하는 방식인 만큼 본사 채용 요구를 수용하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진제철소에 근무하는 협력업체 직원 5000명 중 2700여명은 현대ITC 정규직으로 전환을 마쳤다. 인천공장과 포항공장 협력사 직원은 각각 현대ISC와 현대IMC로의 채용 전환에 찬성해 정상 출근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2차에 걸쳐 자회사 직고용을 완료했다. 다만 자회사 직고용을 거부한 협력사 직원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당진제철소 내 32개 협력사 중 15곳 직원 대다수는 자회사 직고용에 찬성했다. 남은 17개 업체는 기존 협력사 관계를 유지하지만 원청과 현대ITC가 맺은 계약 작업에 참여할 수 없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본사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 비정규직지회 노조는 모두 가족이 있는 근로자이며 현장에 복귀해 공장을 운영해야 하는 동료"라며 "대책 없는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상처만 남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 앞 플랜카드가 수십개 줄지어 걸려있다. 사진=시장경제DB
1일 당진제철소 정문이 위치한 동곡 교차로 일대에 '본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다수 걸려 있다. 사진=시장경제DB.

현대제철은 100% 자본을 출자해 설립한 현대ITC 등 자회사를 통해 협력사 직원을 직접 고용했다. 고용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린 시정명령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국내 민간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협력업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한 첫 사례이다. 현대ITC 등 이번에 새로 설립된 자회사들은 공정거래법상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이자 현대제철의 100% 자회사이다. 현대차 계열사들과 동일한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임금 수준도 현대제철 본사의 80% 수준에 이른다. 특히 협력사 고숙련자와 경력자가 안전관리자로 전환 근무하는 안전 관리도 강화됐다.

반면 민노총 비정규직지회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협력사 직원 고용은 꼼수"라며 현대제철 본사 정규직 채용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자회사 직고용은 또 다른 형태의 불법 파견이며 노동환경과 임금차별 구조가 나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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