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합작계약서'도 안보고 감사했다는 회계사... 그걸 인용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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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합작계약서'도 안보고 감사했다는 회계사... 그걸 인용한 전문위원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8.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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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vs 증선위 8차 소송 쟁점 분석
"의견서 내랬더니 결론"... 전문의원 편향성 공방
대전대 교수 "삼바 재무제표 오류" 단정적 결론
삼바 "의견서 내용, 자의적·편향적... 해석 오류"
"증선위도 합작계약서만으로 분식 판단 안 해"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분식회계 의결 취소 청구' 행정소송에서, 전문심리위원이 낸 의견서의 오류를 놓고 원·피고 사이 날선 공방이 오갔다. 삼바 측은 "해당 보고서는 본 사건 쟁점에 대해 단정적 결론을 내려 법적으로 ‘의견’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났고, 자의적이고 편향적인 해석과 판단 오류로 공정성과 객관성을 저버렸다"고 입장을 밝혔다. 

2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증선위 시정요구 취소청구 소송' 8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이날 기일에서는 전문심리위원으로 위촉된 정재욱 대전대 교수가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을 놓고, 원피고 양측이 각각 변론을 진행했다. 

정 교수가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는 분량만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서에서 정 교수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 오류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의견서는 삼바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의 견해와 전체적 맥락을 같이 했다.  

삼바 측은 “해당 의견서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형사소송법상 원활한 소송 진행을 위해 전문심리위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재판부가 사건을 심리하는데 있어 보조자의 역할에 불과할 뿐 의견 개진 수준을 넘어 판단 내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정 교수는 재판부 제출 문건을 통해, 자의적 기준을 바탕으로 단정적 결론을 내리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 삼바 측 지적이다. 

삼바 측 법률대리인은 “회계기준과 합작투자계약에 대한 자의적, 편향적 해석으로 객관성·공정성을 현저히 침해했다”며 “정 교수는 별도 항목까지 만들어 이 사건 전체에 단정적 결론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판사인양 결론내리면서 법관 고유 권한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삼바 변호인단은 "정 교수가 제시한 논거 중 일부는 삼성바이오는 물론이고 삼바 분식회계를 의결한 증선위조차 주장하지 않는 내용"이라며, 정 교수 의견서의 신뢰도에 강한 의문을 표했다. 다음은 이 부분 삼바 변호인단 항변 중 일부.

“정 교수는 합작투자계약에 주식양도조항 등이 있으므로 2012~2014년 기간 동안 삼바가 에피스를 단독지배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삼바와 증선위 누구도 주장하지 않은 내용. 금감원조차 합작투자계약의 해석만으로 지배력 여부를 판단하지 못했다.”

“합작계약에 대해 정 교수는 ‘지분율 만큼 이사 임명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단독지배가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회계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논리의 비약이자 오류. 국제합작계약에서 확립된 기초 사실도 모르면서 어떻게 지배력 판단을 한 것인지 의문.” 

삼바 변호인단은 “이 사건 행정소송의 쟁점은 삼바가 회계기준을 위반했는지, 위반한 것이 맞는다면 이를 고의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라며 “회계기준 위반은 다양한 회계적·법률적 견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증인신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삼바-바이오젠 합작계약서는 은폐됐나? 

분식회계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12년 삼바와 미국의 거대 제약사인 바이오젠이 합작해 탄생한 회사다. 당시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기술이 미약했던 삼바는 바이오젠과 50:50으로 지분을 꾸려 에피스를 설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 계획은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바이오젠은 사업 성공 여부에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단 15%의 지분만 투자했다. 다만, 향후 에피스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성공할 경우를 가정해 최대 '50%-1주'까지 지분을 늘릴 수 있는 ‘콜옵션’을 보유키로 합의했다. 

에피스 출범 당시 삼바 보유지분은 85%. 이사회 멤버 5인 중 4명의 지명권은 삼바가 나머지 1인에 대한 지명권은 바이오젠이 각각 갖기로 했다. 바이오젠은 2012년부터 매년 미국 나스닥 공시를 통해 에피스 지배권이 삼바에 있음을 공시했다. 무엇보다 바이오젠은 2014년 이전 삼바가 추진한 두 차례의 유상증자에 모두 불참하면서 보유지분율은 8%대까지 줄었다. 서울대와 고려대 회계학 교수들이 법원에 낸 의견서를 통해 '삼바 재무제표 변경은 회계해석의 문제일 뿐 분식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공통된 견해를 낸 배경에는 이런 사실관계가 자리한다.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단독지배’가 아닌, ‘공동지배’로 회계원칙 적용을 달리해야 한다. 단독지배의 경우는 회계기준상 '자회사'(종속회사)에 해당하므로 연결회계를, 공동지배의 경우는 '관계사'에 해당돼 지분법 회계를 각각 적용해야 한다. 삼바가 에피스를 단독 지배한 기간은 2012년부터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높아지기 직전년도인 2014년까지로 볼 수 있다. 

이후에는 에피스의 회사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 역시 높아졌다. 실제 바이오젠은 에피스의 가치가 크게 오른 2018년 6월 콜옵션을 행사했고, 3000억여원을 투자해 약 2조원에 가까운 에피스 지분을 취득했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재무제표 작성 때부터 에피스를 관계사로 보고 지분법 회계를 적용했다. 이 대목은 '삼바 분식회계 의혹'의 최대 쟁점이다. 2015년 이후 ‘공동지배’가 맞다는 데 이견은 없다. 문제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에피스를 ‘단독지배’로 보고 연결회계를 적용한 삼바의 판단이 K-IFRS에 반하느냐에 있다. 

삼바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는 삼바가 ‘콜옵션’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공시 누락, 은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바의 모회사였던 구 제일모직은 삼성물산과의 합병을 앞두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 자회사인 삼바의 재무제표를 부풀릴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부채 상당의 콜옵션 존재 사실을 고의로 누락, 은폐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삼바 측이 합작계약서를 감사인에게 제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감사인은 콜옵션 존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콜옵션 은폐에 따른 회계 분식이 이뤄졌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헸다. 

증선위 변호인단도 "삼바가 감사인들에게 합작계약서를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보여준 것처럼 행동했고, 감사인들도 합작계약서를 본 것처럼 금융위와 금감원에 허위 진술했다"며 "정 교수 의견서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정 교수와 증선위 측 견해에는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쉽지 않은 모순이 존재한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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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계약서 제출 거부했다면 '감사 거절'했어야 

증선위측이 언급한 ‘회계사들의 거짓진술’이란 2019년 4월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검찰발(發) 기사를 근거로 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삼정케이피엠지(KPMG)와 딜로이트안진 소속 회계사들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기존 입장을 번복해, “미국 바이오젠 보고서에 콜옵션이 담긴 내용을 확인하고 삼성바이오 쪽에 ‘합작 계약서’를 요청했지만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위 증언이 사실이라면 다음과 같은 모순이 불거진다. 

기업의 외부감사인은 ‘중요성 관점’에서 재무제표 작성의 적정성을 판단한다. 삼바 측이 계약서 제출을 거부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중대한 사안이라면 감사를 거절하거나 한정의견을 내면 된다. 당시 회계사들은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적정 의견’을 냈다. 회계사들이 다른 경로로 그 내용을 확인했거나 해당 문건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합작계약서·콜옵션 사실 몰랐으면 자문 불가... 정 교수 의견서 '모순'   

삼바는 2015년 재무제표 작성을 앞두고 에피스를 계속 종속회사(단독지배)로 볼 것인지, 아니면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판단할 것인지를 놓고 국내 3대 회계법인에 자문을 구한 사실이 있다. 이는 증선위나 검찰도 부인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다. 

이때 회계법인들은 삼바 측에 “이제는 지분회계를 적용할 때가 됐다”는 의견을 냈다. 지분회계를 적용한다는 것은 콜옵션 지배력이 현실화됐으므로 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사로 변경 처리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회계법인들의 답변은 바이오젠 보유 콜옵션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약정의 주요 내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콜옵션 존재와 그 행사 조건에 대한 세부 정보를 알지 못했다면 위와 같은 자문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사건 다음 9차 변론기일은 다음달 29일 열릴 예정이다. 재판부는 차회 기일을 준비절차기일로 정하고 증인신청 등 향후 절차 진행에 대해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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