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회계법인 보고서가 '이재용 시세조종 증거'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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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회계법인 보고서가 '이재용 시세조종 증거' 될 수 없는 이유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7.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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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회계·합병 의혹’ 공판 쟁점 중간 정리
檢 "합병비율에 맞춰 회계법인 보고서 조작"
"조작된 보고서, 국민연금 합병 결정에 영향"
조작 의도라면 합병비율 결정 전 의뢰했어야
삼바 분식 의결한 증선위도 회계 보고서 '배제'
외부 제출·공개 목적 아닌 '비공식 내부용' 문건
내부 참고용인데 회계법인 압박? 비합리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주>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0명에 대한 자본시장법 등 위반 의혹 공판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결정 후 회계법인이 두 기업의 시장가치를 평가한 '기업가치평가보고서'를 시세조종 혐의의 새로운 증거로 꺼내들었다. 

2015년 5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옛 미래전략실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산정 직후 삼정·안진 두 회계법인에 각각 '기업가치평가보고서' 작성을 의뢰했다.

모직-물산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주식시장의 시가'를 기준으로 결정됐다.  

검찰 역시 합병비율의 산정이 자본시장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검찰은 미래전략실이 '일자별 예상 합병비율'을 미리 계산하는 방법으로 이 부회장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발표하고, 양사 이사회를 개최했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은 위 두 회계법인이 물산의 기업가치를 각각 다르게 평가한 사실에 주목했다. 당시 안진회계법인은 삼정회계법인에 비해 물산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했다. 

검찰은 삼성 미래전략실이 안진회계법인에 압력을 행사해 물산 가치를 삼정회계법인 수준으로 낮출 것을 종용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물산 기업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췄으며,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에 이렇게 조작된 기업가치평가보고서가 영향을 줬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이 사건 8차, 9차 공판 증인신문의 상당시간을 이 부분 입증에 할애하면서 각별한 공을 들였다.

삼성 미전실 측이 회계법인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기업가치평가보고서 내용 중 물산의 기업가치를 조작했다는 검찰 시각은 몇 가지 점에서 결정적 모순을 안고 있다. <시장경제>는 검찰이 ‘시세조종’의 증거로 제시한 안진회계법인 기업가치평가보고서와 관련, 검찰 출신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그 증명력 여부를 분석했다.  

 

檢이 꺼내 든 회계법인 보고서... '조작 의혹' 공세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재판장 박정제·주심 박사랑) 심리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외부감사법상 분식회계,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재판(‘삼성바이오 회계·삼성 합병 의혹’ 사건)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 측이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주가조작과 분식회계를 비롯한 위법을 행하고, 그 내용을 이 부회장이 직접 지시했거나 적어도 이를 사전에 알고도 묵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달 1일 열린 8차 공판에서 ‘시세조종’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안진회계법인이 작성한 기업가치평가보고서 내용을 제시하면서 증인에게 작성 경위를 캐물었다. 증인으로는 양사 합병 관련 업무를 자문한 전 삼성증권 IB팀장 A가 출석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동 보고서는 합병비율 결정 후 삼성 측이 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된 문건이다. 동 보고서는 당시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컨센서스를 근거로 산정한 모직, 물산 기업가치를 담고 있다. 

검찰이 눈여겨 본 부분은 삼성증권 직원 B가 A에게 보낸 이메일이다. 이메일을 보면 삼정회계법인은 물산의 영업가치를 약 3조원, 안진회계법인은 동 기업의 가치를 5.7조원으로 각각 평가했다. 

동 이메일에는 '안진회계법인이 삼성물산 가치를 약 3조원 정도 다운시키지 못하고 있다. C(삼성물산 소속)와 안진이 미팅을 통해 최종 합의할 예정'이라고 기재한 부분이 나온다.  

검찰은 미래전략실이 '일자별 예상 합병비율'을 미리 계산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먼저 정하고, 동 비율과 맞추기 위해 위 보고서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9차 공판에서도 검찰은 증인으로 출석한 B를 상대로 이메일 작성 경위와 그 의미 등을 집중 추궁했다. 문제의 이메일을 직접 작성한 B는 “안진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묘사해 공유한 것에 불과하다”며 “보고서를 통해 합병비율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내부 참고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B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기업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주가”라고 강조하면서 기업가치보고서는 삼성 내부직원들이 참고용으로 작성을 의뢰한 비공식 문건이라고 답했다. B는 거듭된 추궁에도 불구하고 물산 기업가치에 대한 결과값을 맞출 목적으로 회계법인을 압박한 사실은 없다고 증언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회계법인 보고서를 시세조종 증거로 볼 수 없는 이유

삼정과 안진회계법인이 각각 작성한 기업가치평가보고서를 시세조종의 증거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다음의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시점의 불일치'이다. 검찰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삼성 측이 회계법인에 동 보고서 작성을 의뢰한 시점은 양사 합병비율이 결정된 이후이다. 주가조작을 마음먹었다면 보고서는 합병비율 산정 이전에 이미 존재했어야 한다. 그 내용도 합병비율 산정 이전, 어떤 식으로든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어야 했다. 그것이 주가를 조작하는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굳이 합병비율 산정 이후 회계법인에 보고서 작성을 의뢰하고, 국민연금이 자료 협조를 요청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는 비효율적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보고서의 '법적 효력'이다. 2018년 11월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전원회의를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의결했다. 증선위 의결은 이 사건의 첫 시작이나 다름이 없다. 김용범 증선위 부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문제의 회계법인 보고서를 언급했다.

김 부위원장은 삼정과 안진이 각각 작성한 기업가치평가보고서를 분식회계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보고서가 삼성 내부 임직원들의 '비공식·참고용 문건'에 불과해 이를 의결의 근거자료로 삼기에는 부적절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삼바 분식을 의결한 증선위조차 위 보고서를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은, 검찰 주장의 신뢰도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세 번째는 보고서의 '성격'이다. 삼정과 안진회계법인 작성 기업가치평가보고서는 삼성 측의 '의뢰'를 받아 작성된 문건이다. 

합병에 관한 현행법과 당국의 지침 어디를 봐도 합병비율 결정 후 회계법인에 기업가치평가보고서 작성을 의뢰해야 할 의무는 없다. 더구나 동 보고서는 '비공식' 문건이다. 외부 공유나 노출을 염두에 둔 공식 문건이 아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양사 합병에 반대표를 던지지 않도록, 안진회계법인 보고서 조작을 압박했다는 검찰 시각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외부 공유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은 내부 참고용 보고서를, 압박을 가해 조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합병 후 신용등급 2단계 상승... 검찰 판단, 팩트와 달라 

두 기업의 합병비율은 제일모직의 1주를 삼성물산의 약 3주로 계산해 결정됐다. 이는 2015년 5월 자본시장법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결정됐다. 

그해 5월 삼성물산 시총은 8조 6000억원, 제일모직은 약 25조원에 달했다. 주주만 수만명에 달하는 데다가 변수가 워낙 많아 시가총액 상위 기업의 주가 조작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시장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런 사실은 자본시장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법학자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부분이다.  

합병 이전 삼성물산 경영상황은 악화일로였고, 이는 주가에도 반영됐다. 의도적으로 기업가치를 평가절하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삼성물산은 2010년 이후 공격적인 경영으로 해외 수주에 나서는 과정에서 수익성이 떨어졌고, 국내 건설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실적 부진이 이어졌다. 물산 측은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에 강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물산 경영진도 합병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합병 후 삼성물산의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부채비율도 줄었다. 국내 신용등급은 2단계 상승했고 신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해외 테마파크 공사에 참여하는 등 위기극복에 합병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적법하다는 사실은 이미 법원도 인정했다. 2015년 7월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는 원고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했다.

2017년 10월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도 구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한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 청구소송 1심 선고기일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적법하게 산정됐고, 그 기준인 주가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로 형성됐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도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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