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콜마 피해'만으로 끝날까... 기술 탈취에 관대한 法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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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콜마 피해'만으로 끝날까... 기술 탈취에 관대한 法 [기자수첩]
  • 최지흥 기자
  • 승인 2023.11.13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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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기술 유출, 법원 솜방망이 처벌 도마위
국내 화장품기술 일류, 법적·제도적 지원은 미흡
한국콜마 전 직원, 인터코스에 기술 유출 논란
인터코스, 이전에 없던 선케어 매출 460억 올려
형사서 벌금 1천만원, 민사도 2억 배상 그쳐
중국 기업 인력 빼가기 더 심각... 강력 처벌해야
서울중앙지방법원 62민사부(부장판사 이영광)는 한국콜마가 인터코스코리아와 전 연구원들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 민사소송 1심에서 한국콜마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진=최지흥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62민사부(부장판사 이영광)는 한국콜마가 인터코스코리아와 전 연구원들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 민사소송 1심에서 한국콜마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진=최지흥 기자

최근 국내 기업의 우수한 기술이 해외로 빼돌려지는 유출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강력한 처벌만이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화장품 업계는 주요 기술 유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유망 산업의 근간 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화장품은 산업 특성상 한 가지의 핵심 기술로 수백, 수천개의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이에 따른 피해 규모 역시 클 수 밖에 없다.

화장품 산업 성장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이뤄진 것이 아닌 업계 스스로 이뤄낸 것이다. 80년도 되지 않는 역사에도 100년이 넘는 세계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며 현재 세계 3위의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제조 분야 역시 2002년 화장품 브랜드숍 탄생 이후 OEM, ODM 사업이 확대되며 국내 기업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가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해외에서는 국내 화장품 제조 기술력에 대해 가성비 높은 고품질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기업 인수와 투자를 명분으로 기술을 빼가거나 핵심 연구 인력을 영입해 기술을 가져가는 사례가 빈번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소송을 진행 중인 한국콜마와 인터코스의 재판도 기술 유출 문제와 연관이 있다. 이미 형사는 2심이, 민사는 1심이 완료된 상태이다. 기술 유출과 관련해 대부분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났지만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건은 이렇다. 2008년 한국콜마에 입사한 A씨는 9년 4개월 동안 근무하다 2018년 1월 미국 이주를 이유로 퇴사했다. 그러나 A씨는 퇴사한지 불과 일주일 뒤 이탈리아 화장품 기업 인터코스의 한국법인(구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으로 이직했다. A씨는 한국콜마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에 있던 자외선 차단제 기술 주요 업무파일 수백개를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하는 방법으로 무단 반출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콜마에서 근무했던 B씨 역시 2018년 인터코스코리아에 입사한 다음 부정한 방법으로 핵심기술 유출을 시도했다.

인터코스코리아는 2017년까지 선케어 제품을 제조·판매하지 않다가 A씨가 입사한 2018년 이후 선케어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해에 발생한 인터코스코리아의 선케어 제품 관련 매출액은 약 460억원에 달한다. 또한 인터코스코리아는 2018년 한 해에만 선케어 관련 44건의 식약처 심사를 완료했다. 법원은 일련의 상황이 한국콜마의 기술을 탈취해 제품을 만든 것이라고 판단했다. 

최근 국내 기업의 우수한 기술이 해외로 빼돌려지는 유출 피해가 계속해 나타나면서 정부의 강력한 대책 마련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최지흥 기자
최근 국내 기업의 우수한 기술이 해외로 빼돌려지는 유출 피해가 계속해 나타나면서 정부의 강력한 대책 마련 요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최지흥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62민사부(부장판사 이영광)는 한국콜마가 인터코스코리아와 전 연구원들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 민사소송 1심에서 한국콜마 승소 판결을 내렸다. 또, 전직 직원과 인터코스코리아는 유출한 한국콜마 영업비밀을 폐기함과 동시에 2억원의 배상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앞서 형사소송 2심에서도 A씨와 B씨는 각각 징역 10개월 실형,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인터코스코리아에도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한국콜마의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처벌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이 크다. 기술 유출 이후 인터코스에 없던 선케어 매출이 460억원에 달했는데 민사 배상금은 2억원, 형사 벌금은 1천만원에 그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것마저도 한국콜마가 대기업이기 때문에 얻은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중소기업이었다면 이 정도 규모의 소송전도 힘들었을 것이다. 

해당 문제는 한국콜마 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K-뷰티를 이끌고 있는 주요 제조기업들도 비슷한 사례를 겪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중국 기업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은 국내 제조사의 핵심 연구원을 영입하거나 한국 내 연구소를 설립해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중국 화장품 제조 기술이 성장한 데에는 한국에서 영입한 연구원들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한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개의 신제품들이 나오고 성분과 기술 하나에 성패가 결정되는 곳이 화장품 시장이다. 때문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력 하나는 천금의 값어치 이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쿠션'이라는 기술로 세계 화장 문화까지 바꿨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기술이어서 법원의 판결이 아쉽다. 불법을 저지른 후에 받은 처벌이 벌어들인 수익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처벌이 약하면 결국 잘못된 행위는 사라지기 어렵다. 잘못을 저지른 기업 입장에는 벌금과 배상금이 견딜만한 리스크 정도로만 인식될 수 있다. 

이제 정부는 스스로 성장한 K-뷰티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기술 유출로 현재까지 이룩한 것을 모두 빼앗기는 누를 범하기 전에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기술 유출과 관련된 사범은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같은 사례 발생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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