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은 '국민정서', 辯은 '데이터'... 가습기살균제 결심 전략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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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은 '국민정서', 辯은 '데이터'... 가습기살균제 결심 전략 치열
  • 최유진, 한정우 기자
  • 승인 2023.10.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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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결심 공판 분석 
檢, 여론의식 '기업책임' 부각... 처벌 당위성 강조 
제출 실험보고서 인용... "CMIT·MIT 폐 도달"        
辯, 실험·절차상 허점 지적 "비현실적 초고농도"
"실험동물 절반 죽는 농도로 실험... 말도 안 돼"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결심 공판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항소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사 : (애경산업 판매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인 CMIT·MIT)를 실험 대상 동물 비강에 점적했을 때 5분 경과 후 폐에서 발견됐고, 48시간 동안 잔류했다. 손상된 세포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 다시 흡입이 이뤄져 폐 기능에 영구적 장애가 발생했고, 천식 등 중증 난치성 폐질환을 유발했다. 고정코호트 분석과 유동코호트 분석 등 역학적 조사 결과만으로도 유해성은 충분히 입증됐다." 
  
"변호인 : 검사 측이 증거로 제시한 실험은 가습기살균제 사용 환경과 전혀 다른 여건에서 진행됐다. 예를 들어 급성비부흡입노출 실험은 동물에 마스크를 씌우는 방식이다. 이 실험에 사용된 CMIT·MIT 물질의 농도는 ‘NOAEL(최대 무독성량)’의 258배이다. 비현실적 초고농도로 진행된 실험 결과를 가지고, 물질의 폐 도달과 독성 발현 사실이 입증됐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26일 서울고등법원 서관 303호 법정. 애경산업과 SK케미칼 전직 대표 등 13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사건 항소심 구형(결심) 공판 쟁점은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인 CMIT·MIT의 유해성 입증 여부'였다. 검찰은 항소심 공판에서 추가 제출한 증거와 증인신문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서, ▲역학조사 결과 ▲방사성동위원소 기반 체내거동평가 실험 보고서를 핵심 논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약 2시간에 걸쳐 구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여론 혹은 국민 정서에 기대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의 생명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현대사회에서 막대한 이윤을 얻는 기업과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는 임원의 부주의에 의해 막중한 피해가 야기됐다’, ‘영유아들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게 했고 부모들을 평생 죄책감에 살아가게 했다’는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반면 변호인은 최후 변론에서 상반된 전략을 들고 나왔다. 변론 내내 법정에는 생소한 의·약학 용어와 수치화된 실험 데이터를 설명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변호인단은 이를 통해 검찰 측 증거와 증인진술의 증명력을 무력화하는데 집중했다.
 

대법, ‘역학조사 증명력’ 제한... 검찰, 입증 한계 드러내

이 사건 1심 판단은 2021년 1월 나왔다. 원심 재판부는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주원료로 하는 애경산업 제조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폐질환, 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위 물질을 공급한 SK케미칼 전직 대표와 임직원, 동 물질을 원료로 가습기살균제 완제품을 제조한 애경산업 전직 대표와 임직원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환경단체와 피해자단체 등은 영국계 글로벌기업 옥시 제조 가습기살균제 사용자와 애경산업 제품 사용자들 모두 사실상 같은 증상을 보였다며, 이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옥시 제조 가습기살균제 주원료인 PHMG와 CMIT·MIT는 화학식 구조가 다를 뿐 인체 유해성과 체내 독성 발현이란 점에서 다를 게 없다고 부연했다. 검찰 논거 역시 환경단체 주장과 맥락이 같다.

우리 대법원은 옥시 제조 가습기살균제와 관련, 제품 사용과 중증 폐질환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CMIT·MIT의 체내 독성 발현 여부는 지금도 논쟁 중에 있다.

검찰은 CMIT·MIT의 인체 내 잔류와 독성 발현 가능성을 시사한 일부 실험 논문, 역학조사전문가들의 보고서 등을 증거로 삼았으나 1심 재판부는 이를 배척했다.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중증 폐질환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는 검찰 증거와, 역학조사전문가 등 증인 진술의 증명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피해자들은 중증 천식, 폐섬유화증, 간질성 폐렴 등의 진단을 받았다. 이들 질병은 '비특이성 질환'이다. 가습기살균제 사용 외에도 다양한 원인에 의해 질병이 유발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검찰은 1심은 물론이고 항소심 초반에도 역학조사 연구자들의 보고서를 근거로 “CMIT·MIT 계열 가습기살균제 역시 PHMG 계열 제품과 유사한 인체 내 독성을 발현했다”고 주장했다.

'역학적 상관관계'는 특정 행동이나 현상이 국민 전체에 미친 영향을 수치화해 보여줄 뿐, 통계적 관계성이 인정된다고 해서 소송법상 입증 혹은 증명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다. 대법원은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일관되게 '제한적 증명력'만을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2013. 7. 12. 선고 2006다17553, 판결 / 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1다22092, 판결 / 서울중앙지법 2020. 11. 20. 선고 2014가합525054 판결 참조).
 

검찰 ‘처벌 당위성’ 부각... 실험보고서 증명력 입증엔 소홀

이 사건 항소심 현장 취재를 종합해 보면, 역학조사 보고서에 기반한 검찰의 국면 전환 시도는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담배 소송과 고엽제 소송을 통해 확립된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넘어서는 새로운 법리를 정립하는데 이르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 항소심 남은 쟁점은 검찰이 재판부에 새롭게 제출한 방사성동위원소 기반 체내거동평가 실험보고서의 신뢰도 내지 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변호인단의 최후 변론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검찰은 이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 당위성을 부각하는데 치중하면서 위 실험보고서의 증명력 입증에는 다소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대조적으로 변호인단은 동 보고서의 증명력을 탄핵하는데 최후 변론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다음은 이 부분 변호인 최후 변론 발췌.

원심 판결은 CMIT·MIT가 폐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실제 실험도 수행됐는데 도달 사실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동물의 장기 적출해 각 장기에서 CMIT·MIT가 있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 원심이 CMIT·MIT의 폐 도달 여부 확인할 수 없다고 하자 새롭게 체내거동평가 실험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를 통해 폐 도달 확인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습기살균제 실제 사용 환경과 전혀 상이한 실험 방식이다. 한 가지 예로 급성 비부 흡입 노출 실험에서 CMIT·MIT 농도는 'NOAEL' 기준 258배 높게 적용됐다.

동물의 기도에 점적하는 방식은 이것 보다도 높다. NOAEL 기준 970배 높은 농도다. 

비부흡입노출 실험은 동물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NOAEL’은 약학용어로 우리 말로 번역하면 ‘무영향관찰농도·최대무독성량’이라고 한다. 노출량 반응 실험에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최대 투여량을 의미한다.

이같은 초고농도 실험은 이른바 ‘반수 치사 농도’(50% 치사 농도·LC50)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LC50은 한 무리의 실험동물 가운데 50%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성물질의 농도를 뜻한다. 화학물질의 급성 독성 지표로 쓰인다.

위 실험들의 결과를 보고 CMIT·MIT가 폐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사가 말하는 실험 중 CMIT·MIT를 PHMG와 같이 사용한 케이스가 있다. 이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실험보고서 중 모순된 부분 존재... 변호인 “증명력 인정 어려워”

가습기살균제의 지속적 반복적 사용이 영구적 폐손상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검찰 논거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검사는 가습기살균제를 지속적 반복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폐손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나 고농도 실험 대상 동물도 노출을 중단하면 측정 수치가 회복된다는 것이 CMIT·MIT의 특징이다. 실험 내용을 보면 가습기살균제 권장사용량의 833배에 달하는 초고농도에 노출된 동물도 노출이 중단되자 대조군 수준으로 완전 회복됐다.”

지난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방사성동위원소 전문가 A교수가 작성한 CMIT·MIT 체내거동평가 실험보고서 주요 내용의 모순을 지적하는 변론도 이어졌다.

“체내거동평가에서는 동물 장기를 동결건조한 뒤 얇게 박편을 만들고 영상으로 찍어 방사능동위원소가 어디 얼마나 있는지 확인한다. 이를 통해 실험 대상 물질의 폐 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검찰 증거와 증인 진술의 요지이다.

지난 공판 검찰 증인에 따르면 비강 점적 노출 시 5분 후 기도에서 발견됐다고 진술. 비강 노출된 액체가 기화돼, 기도 즉 에어웨이를 통해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5분 뒤 폐 도달량은 전체 노출량의 0.42%라고 증인은 진술했다.

그러나 CMIT·MIT의 상온 기준 증기압은 물의 증기압보다 1000배 내지 7000배 낮다. 비강 내부는 습도가 높아 물도 기화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CMIT·MIT가 기화돼 비강에서 기도로 넘어가 폐에 도달한다는 검찰 증인 진술은 납득할 수 없다.

한 가지 더, 기도 에어로졸 실험은 대상 물질이 무조건 폐에 도달할 수 있게 설정됐다. 긴 관으로 된 장치를 이용해 투입 물질의 90~100%를 직접 폐에 노출시켰다. 인위적으로 무조건 폐에 도달하도록 한 것이다. 검찰 증인도 이 방식은 CMIT·MIT 폐 도달 여부 확인과는 무관하다고 인정했다.” 

검찰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모 이마트 상품본부장에게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각각 금고 5년형을, 나머지 다른 피고인들에게는 금고 3~5년형을 구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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