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만만디 법무부... '로톡 징계심의' 왜 자꾸 미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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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만만디 법무부... '로톡 징계심의' 왜 자꾸 미루나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3.06.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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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2년전 유권해석 "로톡은 합법"
대한변협, '로톡 퇴출' 전방위 압력 행사
로톡 가입 변호사 9명에 과징금 징계처분
변협 징계에 변호사들 잇따라 로톡 이탈
로톡 가입 변호사 4000명→2000명 '반토막'
변협 징계 당부... 법무부 징계위 심의서 판단
법무부 판단 따라 '리걸테크 산업' 운명 갈려
심의 두 차례 연기... 어정쩡 행보에 비판 목소리
사진=연합뉴스
로톡의 지하철 옥외광고. 사진=연합뉴스

벼의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어린 벼가 5~6월 땅에 뿌리를 내리는 '활착기'다. 가장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혹여 가뭄이라도 들어 물이 모두 말라버린다면, 벼는 손쓸 새 없이 시들어 죽고 만다. 

스타트업을 육성은 흡사 '벼 농사'에 비유할 수 있다. 신산업의 '첨병'인 스타트업은 잘만 육성한다면 열 대기업 부럽지 않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성공한 스타트업이 많아질수록 국가 경제는 '풍년'을 맞게 된다.

'스타트업 농사'가 성공하기 위해선 민·관·정을 아우르는 각별한 관심과 정책적 도움이 절실하다.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기까지 물을 대고, 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어린 벼가 말라죽듯, 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면 스타트업은 고사(枯死)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돌아보면,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하기에 가혹한 환경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각종 규제와 기득권의 견제 등이 발목을 잡는 구태가 여전한 탓이다. 그 대표적 예로 '로톡'을 들 수 있다. 

로톡은 우리나라 '토종' 리걸테크 플랫폼이다. 2014년 첫 선을 보인 로톡은 변호사와 의뢰인 간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변호사 프로필과 각종 법률정보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어, 법률시장의 '문턱'을 낮추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리걸테크'가 신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로톡 역시 높은 성장 가능성이 점쳐졌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사업 초반 순항했던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라는 '골리앗'을 만나 고사 직전까지 몰리는 처지에 놓였다. 

대한변협과 로톡의 골깊은 갈등은 장장 9년간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 5월 대한변협은 '변호사 광고업무 규정'과 '변호사 윤리장전'을 개정하며 '결정타'를 날렸다. 변호사들이 로톡에 가입할 수 없도록 사실상 강제한 것이다. 국내 법률시장에서 리걸테크 플랫폼을 아예 퇴출시키기 위한 목적이 다분했다. 

그 여파로 한때 4000명에 달했던 로톡 가입 변호사 수는 절반인 2000명 수준으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투자유치와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고육지책으로 직원의 50%를 감원하고, 사옥도 입주 1년여만에 쫓겨나듯 내놓아야 했다. 

지난해 8월 '광고 규정 개악과 부당한 회원 징계를 반대하는 변호사 모임' 소속 윤성철 변호사(가운데) 등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간부들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 전 입장문을 읽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8월 '광고 규정 개악과 부당한 회원 징계를 반대하는 변호사 모임' 소속 윤성철 변호사(가운데) 등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경찰청 민원실 앞에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간부들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강요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 전 입장문을 읽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골든타임' 절실한 로톡... 법무부, 합리적 판단 내려야

대한변협은 지난해 10월 로톡 탈퇴 요구에 따르지 않은 소속 변호사 9명에게 과태료 300만원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해당 변호사들은 부당함을 호소하면서 이의를 제기했다. 이 사건은 법무부 징계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우려되는 점은 법무부의 미적지근한 행보다. 법무부가 심의를 통해 납득 가능한 유권해석을 내려줘야 함에도, 이의신청이 있은지 반년이 지나도록 차일피일 미루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서다. 

당초 올해 3월 열릴 예정이었던 법무부 징계위원회 심의는 3개월 연기된 6월로 정해졌다가, 다시 7월로 밀렸다. 이마저도 심의결과가 다음달 중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로톡은 여러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등에서 이미 '합법적 법률 서비스'라는 판단을 받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대한변협의 변호사 광고 규정 조항에 일부 위헌 판단을 내렸다. 올해 3월 공정거래위원회도 로톡을 '합법'으로 판단하는 한편, 변협에 대해선 거액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등 제재처분을 내렸다. 

앞서 법무부는 2021년 8월, "로톡은 중개형이 아닌 광고형 플랫폼"이라며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가 징계위 심의를 통해 로톡 가입 변호사들에 대한 대한변협의 징계를 무효화하지 않는다면, 불과 2년전 공개적으로 밝힌 유권해석을 스스로 번복하는 모순이 벌어진다. 행정의 일관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서라도 이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각종 규제에 짓눌려 혁신이 질식해 버리는 국가에서 신산업이 꽃을 피울리 만무하다.  

최근 대법원은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합법으로 판단했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와 박재욱 전 브이씨엔씨(VCNC) 대표, 쏘카·VCNC 법인 모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정 싸움에 종지부가 찍히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재판에선 이겼지만, 타다는 '회생불능'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2020년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면서 두터운 규제의 벽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로톡을 두고 '제2의 타다'가 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 그 첫 단추는 법무부 징계위 심의이다. 법무부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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