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급발진 사고 원인규명 운전자 몫... 제조물책임법 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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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급발진 사고 원인규명 운전자 몫... 제조물책임법 개정해야"
  • 김성욱 오토데포 대표
  • 승인 2023.04.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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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사고 원인 입증 책임 운전자에게 부과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 폭넓게 인정... 한국과 대조적
"현행법상 차량 운전자가 제조사 이기는 건 불가능"
자동차 전문가도 급발진 원인 규명 매우 어려워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 바람직... 법·제도 개선 서둘러야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하나의 생명이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1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출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할 때 국가적인 손해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강릉에서 벌어진, 급발진 추정 사망사고 이야기이다.

유튜브나 기사를 보면 얼마든지 쉽게 접할수 있는 것이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상해·사망사고 얘기다. 여기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사고 원인규명이다. 급발진 사고 원인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존재한다.

2018년 시행된 제조물 책임법에 따라 급발진 추정 사고는 차량 소유주 또는 운행자가 원인을 규명해야만 제조사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자동차분야에서 25년 가까이 일해온 필자도 급발진 추정 사고 원인 규명은 어렵다. 무수히 많은 변수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원인을 파악하고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동차 구조를 살펴보면 EDR(사고기록장치)이 있다. 이 장치는 차량에 설치된 센서들이 측정한 데이터를 수집, 사고 당시 차량 상태를 알 수 있도록 한다. 급발진 사고의 경우, EDR에 기록되는 센서값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엑셀레이터와 스로틀(엔진 실린더로 유입되는 연료와 공기의 혼합 가스 양을 조절함으로써 엔진의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밸브) 운동 수치는 100%를 나타낼 것이고, 브레이크 수치는 0%로 표시될 것이다. EDR에 기록되는 이런 수치들만 보면, 마치 운전자가 엑셀레이터를 급격하게 밟아서 일어난 사고로 보인다. 

운전자 실수와 인지 오류에 따른 요인을 제외하고 기계적 오류만 살펴도,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과연 EDR 기록만으로 급발진을 규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전과 달리 최근 차량에는 컴퓨터와 같은 모듈이 20개 이상 장착돼 있다. 수많은 센서가 보내는 데이터는 차량 메인 컴퓨터인 ECU가 처리하며, 차량을 움직이는 모든 기계적 명령은 ECU의 통제를 받는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급발진은 ECU 혹은 모듈 오류에 의한 이상 증상일 수 있다. 외부에서 유입된 전자파가 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전기차도 마찬가지이다. 모터를 제어하는 메인 모듈이 ECU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EDR 역시 서브로 장착된 기록모듈이므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EDR이 급발진 추정 사고 원인규명에 있어, 자동차 제조사에게 면죄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신차에 장착되는 자율주행 보조장치도 오작동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 오작동은 급발진 추정 사고의 원인일 수도 있다. 

미국 D사는 급발진으로 인한 사고와 관련해 사고차량의 모든 제어 소프트웨어를 공개하고 리콜과 소송합의금, 벌금 등으로 40억 달러(약 5조원)를 지불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급발진 추정 사고에서 소비자가 제조사를 이긴 선례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소비자가 사고 원인을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급발진 추정 사고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지만 완성차 제조기업들은 뒷짐을 지고 있다. 사고 원인 파악이나 재발방지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기업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 H사조차 각종 커뮤니티 비방글이나 소문을 차단하고 삭제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 하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자동차 구동 시스템 또는 제어 계통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법조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일반 소비자 편에 서서 미국의 D사 판례와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제라도 자동차 및 전기차 전문가, 교통사고 전문 법조인, 급발진 추정 사고 관련 임상경험이 풍부한 민간 전문가, 학계 및 공공기관 전문가, 소비자단체 전문가, 제조사 관계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기구 출범과 활동이 자동차 급발진 추정 사고를 줄이는데 실효적 해법이 되길 바란다. 

※ 위 칼럼의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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