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신용자 '불법 사금융' 내몬다... 대부업 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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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신용자 '불법 사금융' 내몬다... 대부업 규제의 역설
  • 유민주
  • 승인 2023.03.2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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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부업체 신용대출 전년比 10만명 감소
사채이용 2020년이후 증가... 평균금리 1305%
규제 일정부분 풀어줘야 악덕사채 이용 방지 가능  

#.어머니 치료비,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급하게 사채로 135만원을 빌린 A씨. 선이자 65만원을 떼고 수중에 들어온 돈은 고작 70만원이었다. 월 이자율은 30%에 달했고 밤낮으로 일을 했지만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A씨를 더욱 힘들게 한건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독촉전화. A씨는 물론 가족들도 24시간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사채 예방의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대부업. 하지만 최근 수익성 악화로 신용대출이 중단된지 4개월이 지나면서 다중채무자나 저신용자가 사채로 몰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이들은 전년보다 약 10만명 줄어들었다. 문제는 대출인원의 감소가 형편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대출중단에 따른 것이라 그 인원만큼 사채를 썼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이에따라 이를 막기 위한 금융당국의 발빠른 조치가 필요한 실정이다. 

 

대부업에서 사라진 10만명... 사채로 내몰렸나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감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부업계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차주는 2021년말 106만7005명에서 2022년 9월말 96만8688명으로 9만8317명(9.2%) 감소했다. 대출잔액은 2021년말 8조4578억원에서 2022년 9월말 8조373억원으로 4205억원(5%) 줄었다. 

신용점수를 기준으로 보면 감소인원의 72%가 300점대 저신용자였다. 대부업계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300점대의 7만832명(16%)이 대출인원에서 빠진 것. 반면 500점대 차주는 3만593명에서 3만3138명, 400점대 차주는 1만1989명에서 1만2334명으로 늘었다. 통상 보통의 신용자가 제1금융권에서 밀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내려오고,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으로 다시 밀리게 된다. 통계는 300점대이하의 초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에서조차 밀려났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보여준다. 

국회 환노위 김형동 의원(국민의힘)이 발표한 경찰청 이자제한법 위반 조사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사인간 돈거래(불법사금융)에 적용하는 이자제한법 위반건수는 2018년 301건에서 2019년 258건으로 감소했다가 코로나 발생이후인 2020년에는 286건, 2021년 306건, 2022년 330건으로 다시 늘었다. 특히 지난해 대부협회에 접수된 민원 1245건을 분석해보면 연 평균금리가 법정최고금리 연 20%의 65배가량인 1305%에 달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12월 거의 모든 대부업계가 '수익성'으로 인해 신용대출을 중단했고 지금의 고금리 상태에서는 대출 재개가 요원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대부업계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가 이달중순 대출을 재개했지만 나머지업체는 언제 대출을 재개할지는 미지수다. 

대출을 기다리는 시민. 사진= 시장경제신문DB
대출을 기다리는 시민. 사진= 시장경제신문DB

 

'시한폭탄' 될수도... 돈 빌려준 금융사도 당혹

최근 국내 가계대출 연체율이 상승해 저축은행 등 금융사의 자산건전성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지난 23일 발표한 3월 금융안정상황 보고서를 통해 대출자들의 채무상환 부담이 과하다고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계대출 차주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40.6%를 기록했다. DSR은 소득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로 DSR이 40%를 넘은 것은 2018년 4분기(40.4%)이후 4년만이다.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대출이자 부담이 늘었다는 것이다.

또한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다른 업권을 상회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작년말 기준 은행권이 0.2%, 저축은행 4.7%, 여전사 2.4%로 각각 집계됐다. 연체율 속도도 더 빨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빚을 갚기 위해 또다른 대출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3개 이상의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는 ‘빚을 내서 빚을 돌려막는’ 경우가 허다했다.

진선미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다중채무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3분기 다중채무자는 447만명으로 대출잔액은 589조원이었다. 이는 2018년 3분기(417만명, 497조원) 보다 18.5%, 7.2% 증가한 수치다. 진 의원은 “다중채무자가 급격히 증가한 상태에서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함으로써 자산건전성이 저하될 우려가 커졌다”며 “취약차주 지원을 위한 금융지원 프로그램과 정책금융의 확대 등을 통해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관(官) 만으론 한계... 민(民)도 활용해야

정부도 사채 예방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금융위는 돈을 빌리기 어려운 취약계층을 위해 '소액생계비'(긴급 생계비) 대출상품을 지난 27일 출시했다. 100만원 한도로 연체 이력을 따지지 않고 신청당일 즉시 빌려준다. 이자는 연 15.9%다. 지난 22일 접수에 들어갔는데 3일만에 2만5144건이 접수되면서 한달 물량을 다 채웠다.

문제는 100만원으론 사채 예방이 힘들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민간영역의 서비스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간영역에서 사채를 예방하는 분야는 대부업이다. 통상 대부업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하면 사채를 이용하기 때문에 대부업을 사채의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한다. 안타깝게도 대부업 역시 고금리로 국민들에게 긍정적 이미지는 아니지만 한해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제도권 서비스다. 하지만 최근들어 대부업이 수익성 악화로 신용대출을 중단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에따라 관련업계에선 대부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규제를 일정부분 풀어줘야 사채로 가는 초저신용자를 막을 수 있다고 고언한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신용자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가 많아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에서도 대출진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불법사금융이 아닌 제도권안, 법의 테두리에서 대출 등이 가능한 대부업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도 “실제로 금리인상 등에 영향을 받아 대부업체 수요자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공급은 한정돼 있다"며 "대출 거절자들이 저축은행 다음으로 오는 곳이 여긴데 여기서 불가능하면 이들은 암시장으로 빠져 고통을 받을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법정최고금리 조정, 조달금리 환경 등 규제를 일정부분 풀어준다면 저신용자들의 사채 이용을 막을 수 있고 대부업도 숨쉴 여력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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