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못 버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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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못 버티겠습니다"
  • 김양균 기자
  • 승인 2016.1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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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카페 과당경쟁... 운영자들 ‘매출 곤두박질’ 비상, 야반도주 사례까지...

“유학비를 벌기 위해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커피가 좋았습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도 멋있어 보였습니다. 알바 하다가 결국 카페 창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 어렵사리 커피전문점을 차렸습니다. 잘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던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판단 착오였습니다. 온종일 일해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 왜 유학을 가지 않았는지... 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커피전문점 창업자 이수민씨)       

카페 창업자들에게 혹독한 겨울이 닥치고 있다. 불경기로 매출은 줄어드는데,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큰 마음 먹고 뛰어들었지만 관리비조차 내지 못하고 이른바 ‘야반도주’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최근 문을 닫는 점포가 한, 둘이 아니다”라며 “강남의 상당수 건물주는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30대~40대들이 카페 창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불황으로 폐업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커피전문점 상황이 이처럼 레드오션(Red Ocean)으로 변했는데도 커피전문점 창업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 2만8,000여 곳이었던 비알콜음료점업은 5년 만에 5만6,000여 곳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최근 국세청 조사에서도 올해 가장 많이 창업한 분야는 커피전문점으로 밝혀졌다.  

국내 커피전문점 규모는 매출액 기준 2조5,000억 원으로, 이는 전체 커피시장 매출액(5조4,000억 원)의 47%에 달한다. 

이렇듯 ‘돈 되는’ 카페 창업에 너도나도 달려드는 가운데, 30대~40대의 ‘젊은 사장’들도 이 반열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5명의 커피전문점 대표들은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커피가 좋아서 혹은 돈을 벌고 싶어 카페를 시작했다는 이들은, 그러나 최근의 경기하락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연말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권리금 폭탄돌리기... 빽다방 공세 직격탄

“권리금이 오를 대로 오른 점포를 인수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퇴직금을 탈탈 털어붓거나 빚을 내서 매장을 차린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문을 닫습니다. 수건돌리기에서 폭탄을 맞는 셈입니다.”

김선영(43·가명·여)씨의 말이다. 김 씨는 8년여 동안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상가 권리금을 가져가는 것은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했다. ‘수건돌리기’에 비유되는 상가 권리금의 끝은 누군가의 파산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를 속칭 ‘물린다’고 한다. 권리금을 노리고 개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행태의 폐해다. 이는 소상공인들 간의 불신과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기존 매장 사업자가 새로운 점포 주인에게 요구하는 영업 권리금과 시설권리금, 건물주가 제시하는 바닥 권리금을 ‘상가 권리금’으로 통칭해 부른다. 권리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출이 높은 매장의 경우 권리금은 보증금을 상회하기도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폭탄돌리기’에 비유되는 상가 권리금의 끝은 누군가의 파산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러한 행태를 마냥 비난할 수만도 없다. 현실적으로 가게를 팔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권리금을 높이고 ‘치고 빠지는’ 행태를 두고 한 자영업자는 “상대만 바뀌는 토너먼트 싸움”으로 빗댔다. 

반복되는 개·폐업은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분당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을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도 “소상공인들끼리 서로의 생계에 칼을 겨누는 일”이라고 말했다. 

천정부지로 오른 상가 권리금과 임대료는 자영업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한 개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은 정해져 있는데 고정비만 늘어나는 구조다. 

김 씨는 “돈을 쉽게 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속상하다. “가게 문을 닫고 싶어도 권리금 때문에 주저앉았다”는 그는 “남이 죽어야 내가 살기 때문에 경쟁 매장에 대한 험담이 오간다”며 불황으로 흉흉해진 분위기를 전했다. 

카페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요소는 또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백종원씨의 ‘빽다방’이다. 백 씨가 대표로 있는 ‘더본코리아’의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빽다방은 백 씨의 인지도와 1,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공격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를 본뜬 저가의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속속 들어서는 상황. 저가 프랜차이즈 업체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한 상인은 기자에게 이들 업체가 “임대료 및 권리금 인상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이광수(36·가명)씨의 커피전문점도 인근에 빽다방이 들어서면서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이 씨는 “저가커피는 ‘커피는 싸다’는 인식을 심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좋은 커피를 만든다’는 생각은 사치다”고 푸념했다. 

경쟁을 위해 가격을 낮추면 품질이 떨어지고 이는 곧 고객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그는 최근 사회관계망(SNS)에 열심이다. 매장을 알리기 위해서다.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은혜(31·가명·여)씨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 유 씨는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커피전문점을 정부가 조절해야 한다”며 “카드수수료의 차등 적용 등 소상공인 생존권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들간의 연대가 상황 타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은석(34·가명)씨는 “가격과 메뉴 등의 경쟁은 소모적이다”며 “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대를 통한 ‘경쟁하지 않는 구조’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객을 서로 뺏는 시스템을 만들지 말자는 제안이다. 김 씨는 “승자독식보다 ‘공존의 인식’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상인들은 ‘빽다방’ 등의 저가 프랜차이즈 업체가 해당 상권의 임대료 및 권리금 인상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절약도 소용없어… 지속가능 여부 의문
“유명 바리스타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의 연봉은 3,000만~4,000만 원 사이입니다. 이러니 좋은 종업원 채용하기도 겁납니다. 자영업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두고 암암리에 이런 말이 오갑니다. ‘간이사업자로 개업을 한 후 빨리 폐업해 권리금을 챙기라’. 자영업자 생태계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반증하는 말이지요.”

유 씨는 작년 겨울, 매장에서 온수기를 떼어버렸다. 겨울에도 온풍기를 꺼둔다. 고객들의 휴대전화 충전 요구도 거절하고 있다. 아예 콘센트를 막아버렸다.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최근 이처럼 아껴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유 씨는 과외 등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명문대 졸업 후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유진웅(30·가명)씨도 창업 초반 우 씨처럼 아꼈지만, 현재는 포기 상태다. 스트레스가 운영에 해가 된다고 판단해서다. 이랬던 그도 최근 동의를 구해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매출 감소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우 씨는 “장부를 보기 겁난다”고 말했다.  

“지인이 매장에 오면 ‘서비스’를 많이 내줍니다. 내심 자주 왔으면 해서지요. 그러나 이런 내색을 비치면 지인들이 싫어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창업 후 변했다’는 말을 듣고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수민 씨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할 때 작은 선물을 함께 건넨다. 넉넉한 대우를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서다. “작은 기업도 연봉은 2,000만 원 이상인데, 시급 7,000원밖에 주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10여 년 전 나의 월급과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올해 이 씨 본인의 인건비는 이마저도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는 이 일이 지속가능한 직업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젊은 카페 창업자들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 겸업, 박사과정, 배우... 자영업자가 된 사연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다.’ 천명관 작가는 단편집 ‘칠면조와 달리는 노동자’에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근 상당수 소상공인들의 상황이 이와 같다. 

저마다 창업에 뛰어든 상황들은 달랐지만, 기자가 만난 카페 창업자 가운데는 과당경쟁 속에서 힘겹게 버티는 운영자도 있었고 또 다른 꿈을 꾸는 운영자도 있었다.

이광수씨는 대학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 한동안 밴드 생활도 했다. 공연을 통해 버는 돈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웠다. 그는 카페가 음악과 병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카페를 창업했다. 

부천에 자리를 잡고 카페를 운영한지 3년째. 현재 이 씨는 가게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결혼 후 가장의 책임감이 컸다”는 이씨는 “음악도 좋지만 내 사업을 한다는 성취감도 크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김은석씨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사업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돈을 모아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현재 김 씨는 커피공장과 두 개의 커피전문점을 운영 중이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커피 생산 농가와 지분을 나눠 법인을 세웠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김 씨는 스타벅스처럼 브랜드 가치를 지닌 기업을 일구는 게 목표다. 

생화학을 전공한 유진웅씨는 박사과정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지인의 권유로 커피학원을 다니며 흥미가 생겼다. 각종 자격증을 따고 커피강사로 일하기도 했다. 

유 씨는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며 “돈을 벌어 하루빨리 자리 잡길 바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3년 전 아버지의 퇴직금을 빌려 커피전문점을 오픈할 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이 컸다. 최근 불황으로 인근 카페들이 줄줄이 문을 닫자, 그도 덜컥 겁이 났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작정”이라는 유 씨는 “매출을 늘릴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은혜 씨는 여행지에서의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경우다. 해외취업을 준비하던 와중에 우연히 들른 한 카페에 마음이 뺏겼다. 

“취미로 즐기던 커피를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는 유 씨는 귀국 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커피전문점을 찾아다녔다. 사정하다시피 해 커피 맛의 비결을 배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창업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이수민씨는 지인과 함께 8년여째 카페를 운영 중이다. 무대연출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한동안 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서른 넘어 유학을 결정할 당시만 해도 ‘커피’와 ‘창업’ 등은 그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였다. 유학비용을 보태고자 시작한 카페 아르바이트가 인생을 바꿨다. 이 씨의 손재주를 눈여겨 본 동료가 커피를 배워보지 않겠느냐 권했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창업까지 이어진 경우였다. 

<취재 후기>
기사를 마무리하던 와중에 두 명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근시일 내에 가게를 접기로 했다’는 문자였다. 그러면서 실명이 게재하지 않길 부탁했다. 

당초 젊은 소상공인들의 도전에 초점을 맞춰 취재를 시작했지만, 이들의 ‘도전’은 낙관 및 긍정과는 방향이 멀어 보였다. 불황의 그림자는 생각보다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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