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7> 세종 "의원은 수의학도 공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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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37> 세종 "의원은 수의학도 공부하라"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6.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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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수의학(獸醫學) 우마양저염역병치료방 - 한국학중앙연구원

“예조에서 아뢰었다. ‘우마방서(牛馬方書)를 전의감 의원으로 하여금 모두 익히게 하고, 사복시의 마방(馬方)을 혁파하고 습독(習讀)하던 권지직장(權知直長)은 각 관사(官司)의 권지(權知)로 나누어 소속시키소서.’ 이에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세종 9년 2월 6일>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관서이고, 전의감(典醫監)은 왕실 의료행정기관이다. 전의감의 업무는 임금의 하사 의약품 관장, 궁중에 의약품 공급, 의학 교육과 의원 선발 등이다. 또 관료의 진찰, 약의 제조, 약재 재배도 했다. 전의감에는 의학서적에 정통한 문신을 키우기 위한 관직인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을 두었다. 인원은 세종 때 15명에서 세조 때 30명으로 늘었다. 이들 중 성적이 좋은 사람은 현관에 임용됐다.

그런데 세종은 전의감 의원들에게 수의학 전문서인 우마방서를 공부하게 한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원에게 동물을 다루는 수의학도 익히게 한 것이다. 세종이 학습서로 삼게 한 우마방서는 정종 1년(1399)에 방사량이 쓴 신편집성마의방우의방(新編集成馬醫方牛醫方)으로 짐작된다. 고려의 수의학 지식과 송나라, 원나라에 행해진 소와 말의 치료법을 집대성한 책이다.

전통시대에 말과 소는 국가경쟁력이었다. 말은 전투력의 기준이고, 소는 농업생산력의 바탕이다. 군마(軍馬)와 식용, 농업과 연관된 말과 소는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백제는 마부(馬部)를 독립관서로 두었고, 고려는 사복시(司僕寺)를 두어 마정(馬政)을 담당하게 했다. 고려의 전통을 이은 조선도 사복시에서 말에 관한 사무를 관장했다. 또 병든 말을 치료하는 마의(馬醫)를 두었다. 마의는 말의 혈 자리에 침을 놓고, 변증에 따라 한약을 처방했다.

세종 때 마의의 중요성은 명나라와의 말 교역으로 더욱 커졌다. 조선은 여러 차례 명나라에 말을 수출했다. 오랜 기간 여행 끝에 요동에 도착한 말은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폐사하거나 삐쩍 마르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에 명나라는 질이 떨어지는 말의 수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말의 생장과 질병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마의는 사복시에 10명이 있었다. 이들은 마의서(馬醫書)의 하나인 안기집(安驥集) 시험을 통해 임용됐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마의 제도가 체계화 되지 않았다.

이에 태종은 13년(1413) 8월 6일 백성의 치료를 담당한 혜민국의 의원 4명을 사복시로 전보 발령해 말의 특성 연구와 질병 치료를 하게 한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가 없자 세종은 9년에 대궐에서 근무하는 전의감 의원에게 우마의방서(牛馬醫方書)를 공부시켜, 수의사로도 활동하게 한다.

그런데 전의감 의원 몇 명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세종 13년(1431) 6월 22일 사복시의 상급기관인 병조에서 보고를 한다. “사복시의 마부 등에게 의방(醫方)을 가르치지 않기에 약을 쓰고 침을 놓는 것을 모두 추측으로 합니다.” 이 보고를 계기로 젊고 머리 좋은 마부에게 마의방의 약명 및 치료술을 공부시키고, 능력 있는 자는 마의로 임용했다. 

또 말과 소의 병을 쉽게 이해하도록 출간작업도 했다. 수의학 책을 내 치료 길을 넓히려고 했다. 세종의 뜻을 받든 아들 세조는 서거정에게 마의서를 편찬하게 한다. 마정(馬政)에 관심 많은 세조가 말을 키우고 다스리는 법을 여러 신하와 군사에게 물었다. 모두가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를 서거정에게 정리하게 했다. 중종은 말 소 양 돼지의 전염병 처방인 우마양저염역치료방언해(牛馬羊猪染疫治療方諺解)를 한글과 이두로 번역해 보급했다.

조선 초기 체계성이 떨어졌던 마의는 성종 때 사복시에 종9품의 잡직으로 10명이 배치되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 때까지는 혜민국, 전의감 의원도 필요에 따라 말의 질병을 같이 연구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마의제도가 더욱 안정됐다. 영조 때의 속대전에 의하면 정3품의 마의 3명, 이마(理馬) 4명이 증설되었다. 

태종, 세종 시대에 의원이 말의 치료법을 연구한 것은 한방의 치료 원리 덕분으로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자연스러우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질병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 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침이나 약초로 도움 받을 수 있다. 한의학은 자연에 순응하는 치료법이다. 이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부작용은 적고, 치료 가능성은 높음을 의미한다. 사람이나 말이나 크게 보면 자연의 한 구성원이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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