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7> 조선 왕들의 식치와 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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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과 왕실의학] <47> 조선 왕들의 식치와 미음
  • 최주리 한의사
  • 승인 2018.08.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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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이다. 세종시대의 왕실 의학을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최주리 이사장이 살갑게 풀어쓴다. 세종 시대의 역사와 왕실문화는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이 자문했다. <편집자 주>

“임금이 옷을 갈아입고, 머리 풀고, 발 벗고, 부르짖으며 통곡했다. 상왕이 거적자리에 나아가 미음(糜粥)을 전했다. 상왕이 눈물을 흘리며 권하였다. 이 때 임금이 음식을 끊은 지 이미 수일이었다.” <세종 2년 7월 1일>

ⓒ쿡쿡TV. 조선왕실의 식치(食治)는 죽, 미음, 면, 탕, 즙, 차 등이 있었다.

원경왕후가 승하하자 세종이 슬퍼하는 실록의 기록이다. 세종은 어머니가 위독하자 며칠 동안 곡기를 끊은 채 간호했다. 이에 상왕인 태종이 아들의 건강을 염려해 미음 들기를 권유한 것이다. 세종은 매일 통곡하며 음식을 멀리했다. 태종은 열흘 뒤에도 아들을 염려해 미음을 보낸다. 

미음은 식치(食治) 음식이다. 식치는 음식으로 건강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다. 세종시대의 학자인 심의는 의약보다 식치가 우선임을 주장했다. 그는 건강 유지 방법으로 음식절제를 생각했다. 이 무렵의 어의인 전순의는 식료찬요 서문에서 ‘식품으로 치료되지 않으면 약을 쓴다. 치료는 당연히 오곡(五穀), 오육(五肉), 오과(五果), 오과(五菜)로 해야 한다. 어찌 마른풀과 죽은 나무뿌리에 연연할 수 있겠는가’라며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선왕실의 식치(食治)는 죽, 미음, 면, 탕, 즙, 차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죽과 미음이다. 질병이나 슬픔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하면 위장 기능이 떨어진다. 이때 죽이나 미음은 훌륭한 보양식, 치료식이 된다. 특히 미음은 소화가 잘 돼 국상을 치르는 왕에게 수시로 올려졌다. 어머니를 여윈 슬픔에 수라를 들지 못하는 세종은 미음으로 기력을 회복했다. 

세종은 후대의 왕이나 왕자가 상례로 몸이 쇠약해지는 것도 우려했다. 극한 슬픔이나 전례에 따라 쓰러지기 직전까지 음식을 거부할 가능성을 걱정한 것이다. 이에 임금은 소헌왕후 승하를 계기로 왕자들의 음식 섭취 절차를 마련했다. 소헌왕후 승하 첫날과 다음날은 담죽(淡粥)을 마시고, 승하 3일과 4일째는 죽(粥)을 먹고, 5일부터는 밥을 먹게 했다. 담죽(淡粥)은 율무, 마, 쌀로 끓인 묽은 죽으로 오늘날의 미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군주 중 대표적인 효자인 인종은 부왕이 세상을 등지자 6일 동안 곡기를 완전히 끊었다. 주위에서 미음이라도 입에 대기를 간청했으나 물외에는 마시지 않았다. 7일째부터는 죽으로 버티면서 5개월 동안 통곡을 계속했다. 결국 인종은 지나친 비탄과 영양부족으로 허약해져 30세에 운명한다. 

쇠약한 사람에게 아주 좋은 미음은 쌀이 주재료다. 멥쌀이 일반적인 가운데 찹쌀, 메밀, 콩, 소맥, 율무, 인삼, 홍합 등 다양하게 응용되었다. 왕실의 기록에는 미음의 종류로 인삼속미음(人蔘粟米飮), 목미음(木米飮), 갱미음(粳米飮), 청량미음(靑梁米飮), 청미음(淸米飮), 직미음(稷米飮), 속미음(粟米飮) 등 다양하게 보인다. 숙종은 인삼율미음을 즐겼고, 영조는 쌀에다 도라지를 넣은 길경미음을 찾았다.

미음의 효능은 원기회복이다. 빠르게 기력을 회복시키는 음식이다. 오랜 질환이나 급성 감기, 탈진, 탈수 등 모든 질환으로 인한 허약한 몸에 적용된다. 소화력을 감안하면 오래 끓이는 게 좋다. 쌀 외의 재료에 따라 약효는 다르다. 소맥을 넣은 미음은 갈증을 멎게 하고, 숙면을 취하게 한다. 또 소변줄기를 시원하게 한다. 

전통시대에 당뇨인 소갈병 식치로 활용했다. 당뇨로 고생한 세종도 소맥 미음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주치의인 전순의가 소갈병 식치법으로 소맥을 제시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본초강목에서도 소맥에 대해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은 달다. 갈증으로 인한 목마름을 멎게 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한다’고 설명했다.

<글쓴이 최주리>
왕실의 전통의학과 사상의학을 연구하는 한의사로 대한황실문화원 황실의학 전문위원이다. 창덕궁한의원 원장으로 한국한의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몸을 보(保)하고, 체중을 감(減)한다’는 한의관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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