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화려한 유혹’ 정진영 “환자들 모인 병원 속 이야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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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화려한 유혹’ 정진영 “환자들 모인 병원 속 이야기 같았다”
  • 조광형 기자
  • 승인 2016.06.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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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장장 50회를 달려왔다. 긴 호흡이지만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극한으로 치닫는 감정과 이야기로 드라마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역시 그러할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극본 손영목 차이영, 연출 김상협 김희원)에서 배우 정진영은 자수성가한 정치가 강석현을 연기하며 지금까지 작품 가운데 최고의 몰입도와 폭발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정진영의 강석현은 냉혈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최근 뉴데일리는 정진영과의 인터뷰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가졌다.

“작품이 끝나면서 기분이 묘해지네요. ‘왕의 남자’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캐릭터에서 일상으로의 모습으로 벗어나는 데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화려한 유혹’ 촬영이 끝나고 여행도 잘 다녀왔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다시 뇌 속에 감정이 남아있는 기분이 들어요. 인터뷰하기 시작한 날 밤부터 왠지 우울하더라고요. 인간 정진영과 강석현의 감정이 충돌을 일으키는 기분이었죠. ‘왕의 남자’ 때는 더러운 감정과 정서적 상흔이 깊어서 굉장히 빠져나오기 어려웠어요. 이번에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요. 캐릭터가 ‘왕의 남자’에서처럼 분열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낫겠죠. ‘왕의 남자’ 때는 분열을 느낀 상태에서 죽었고, 이번에는 반성을 하고 죽었으니까요. 작품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왕의 남자’의 특정 부분이나 음악을 들으면 그 때 감정이 확 살아나요. 그런 것처럼 요즘은 ‘은수’라는 이름만 되뇌어도 눈물이 팍 나요.”

석현은 감정의 밀도가 굉장히 짙은 캐릭터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자수성가를 이뤄냈다.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며 대부분의 권력을 쥐어 본 적 있는 악착같이 성공한 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 비서와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녀가 떠난 후 평생 자신의 못 이룬 사랑을 그리워한다. 겉으로는 다 가진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원했던 것 하나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른 후 그녀를 닮은 신은수(최강희 분)가 석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노년에야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이 또 한 번 찾아온 것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으로부터 멜로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춘향전’의 로맨틱한 변학도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깊고 진하게 돼서 놀랐죠. 작품 들어가기 전 저의 운명을 대충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제 마음을 다 드러낼 줄은 몰랐어요. 석현이 드라이한 인물일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멜로 연기가 힘들지는 않았어요. 최강희 씨가 은수로 보였고, 은수에 대한 석현의 진심이 느껴졌거든요. 연기를 하며 그 상황대로 느끼면 표현이 되더라고요. 멜로는 여과 없이, 치장 없이 순백의 감정 그 자체를 전하는 특질이 있잖아요. 설정 자체는 발칙하죠. 부담스럽기도 했고 반신반의 했지만 대본대로 느껴 가며 연기했어요.”

“강석현을 처음에는 멜로로 접근하지 않았어요. 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는 석현의 아픔과 과거사로 빚어지는 그의 양면성이 매력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한 점을 연기자로서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이렇게 멜로가 강해지리라고는 정말 생각 못했어요. 사랑을 교호하지 않고 외사랑을 했지만, 최강희 씨에게서 은수를 바로 느꼈기 때문에 연기하기 힘들지 않았어요. 극중 혼나는 장면에서는 절로 눈물이 날 정도였죠.”

‘화려한 유혹’에서 석현과 은수의 나이차는 무려 35년이다. 자칫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설정임에도 정진영은 강석현의 애달픈 사랑을 납득 가능하도록 연기해냈다. 자신 때문에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한 여자에 대한 부채감은, 은수에 대한 호기심에서 관심으로 발전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줄곧 괴팍함으로 자신을 무장하지만 은수 앞에서는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쏟아 붓는다. ‘화려한 유혹’은 석현의 이야기로만 봐도 알 수 있듯, 내상을 입은 인물들이 펼치는 비극을 그렸다.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하면서 ‘통속적인 이야기지만 전혀 다르게 풀어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화려한 유혹’에서는 모든 사람이 선과 악을 조금씩 가지고 있죠. 제 대사 가운데 ‘모든 이가 선하지만 조금씩은 악한 존재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빗대는 말이에요. 연대기적 드라마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나타내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신(scene)의 드라마’이기도 하죠. 그래서 드라마에서 대사 없이 지켜보는 시선의 신들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이 다른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었죠.”

 

 

“인간도 그렇고 모든 생명체가 이기적이라 생각해요. 책도 ‘이기적 유전자’는 있지만 ‘이타적 유전자’는 없잖아요. ‘화려한 유혹’은 독한 드라마에요. 인간의 표독함이 곳곳에 도사려있는 드라마죠. 배신하고, 이용하고, 또 배신하고. 감독님은 이 안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중심으로 그렸어요. 모두들 ‘내 상처가 더 크다’고 대결하는 것 같았어요. 환자들이 모인 병원 속 이야기인 것만 같았죠. 상대의 상처를 내가 인정하는 순간 화해가 되는 것인데, 형우(주상욱 분)와 석현은 그걸 결국 해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러한 성격이 우리 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건강함이었다고 봐요. 석현이라는 인물이 말년에나마 부끄러움을 알고 죽었다는 건 참 다행이에요.”

사실 정진영은 ‘화려한 유혹’의 출연을 망설이기도 했다. “대본 처음 부분에 스테레오 타입의 악인이 써 있길래 뻔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통속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그릴 것이라고 설득했죠. 5, 6화 대본을 보니 감독님 말대로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안 했으면 크게 아쉬울 뻔 했어요.”라는 말에서 그의 캐릭터 선택 척도를 짐작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석현이 은수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후 치매를 앓고서 죽는 다난한 과정을, 그 어떤 배우도 복잡함을 선호하는 정진영만큼 열정적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배우가 있고 캐릭터가 있으면 그 사이 ‘장벽’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벽을 무너뜨리면 캐릭터로 가고, 안 무너뜨리면 튕겨져 나오는 거죠. 제가 선호하는 캐릭터는 표면적으로 하나로 규정지어지는 캐릭터 보다는 양면을 지닌 인물이에요. 그러한 점에서 아픔도 있으면서 악하기도 한 석현은 저에게 매력적이었고요. 배우는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걸 캐치해내는 작업이 재미있어요. 저는 어려운 작업 하는 걸 좋아해요. 자극이 되고 매너리즘에 안 빠져드는 것 같으면서도 새 과제를 얻는 것 같거든요. 어려운 일을 해야 자기를 발전시키고 단련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쉬워 보이는 일도 되도록 어렵게 하려 해요. 저를 포함해 사람들은 어떠한 일이 익숙해지고 쉬워지기 마련인데, 그걸 경계해야죠.”

캐릭터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그러한 점에 비중을 많이 둔 것 같았다. 이전까지 대게의 작품에서 그는 판.검사, 의사, 교수, 형사, 스님, 왕까지 번듯한 직업에 속하며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주변 인물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시소의 받침대와 같은 역할을 많이 했다. 그 중 궤를 달리한 작품으로는 영화 ‘왕의 남자’, 드라마 ‘브레인’을 들 수 있다. 이제는 여기에 ‘화려한 유혹’이 더해졌다.

“‘화려한 유혹’으로 예상치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얻은 것은 분명하죠.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멜로 연기를 새롭게 경험했고요. 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이후에도 똑같이 오리라곤 생각지 않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하던 대로 다른 작업을 맞이해야죠. 다음에는 어떻게 연기를 하게 될지가 저도 궁금해요. 자꾸 해보면 수가 늘겠죠.”

[2016.03.22 00: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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