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혁신?... 대한항공 "MS오피스 말고 구글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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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혁신?... 대한항공 "MS오피스 말고 구글 써라"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2.07.27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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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워드 프로그램 일방 변경에 직원 반발
'MS오피스'→'구글스프레드 시트'로 변경 지시
내부불만 확산... "다른 곳에선 모두 MS 쓰는데"
"외부교신 불편... 부서당 1~2명만 MS 가능"
"사내 프로그램 모두 MS, 구글로는 읽히지 않아"
본질은 '불통'...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개선 필요
사 측 "좋은 뱡향으로 가기 위한 결정... 이해 부탁"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이 사무자동화(OA·office automation)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MS오피스'에서 '구글스프레드 시트'로 변경하면서 내부 직원 반발이 확산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대한항공 일부 직원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관련 글을 올리면서, 회사 내부의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를 지적했다. 직원들은 "업계 상황도 모르는 갑질"이라며 회사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일방 변경 방침을 강하게 비판했다. 회사 측은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직원들의 이해를 구한다"고 답했다.

이런 논란은 블라인드 앱에 올라온 한 편의 게시물에서 비롯됐다. 글쓴이는 '대한항공은 MS office 못 씁니다'라는 제목이 달린 게시글을 통해 '대한항공 경영진이 비용 절감을 위해 MS오피스 사용을 금지시키고, 업무용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변경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동 게시물은 스마트폰 SNS 프로그램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글쓴이는 "(사상) 최대 영업 실적인데, 비용 절감한답시고, 워드, 엑셀, 엑세스, 파워포인트 전부 못 쓴다. 구글스프레드 시트로 하라고 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데이터 2만줄만 넘어가도 다 깨지고, 엑셀의 피벗 당연히 못따라오고 다 깨지고, 업체랑 공공기관이랑 일할 때 다 깨져서 jpg 캡쳐해서 본다"고 주장했다. 

사진=블라인드 캡쳐
사진=블라인드 캡쳐

'MS오피스'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쓰는 사무용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엑셀과 파워포인트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보편성 내지 범용성 측면에서 대체가 쉽지 않을 만큼 직장인들에게 익숙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기업이 그 임직원에게 위 프로그램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업무 수행에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대한항공 직원 역시 이런 점을 짚었다. 게시자는 "부서에서 1~2개 (MS오피스 구입을) 신청해서 그사람 PC를 공용으로 돌려쓴다. 그 와중에 엑셀 파일은 열리지도 않는데, (회사는) 비인가 제품 삭제 안한 직원 인터넷을 끊겠다고 공지했다"고 썼다. 

게시자는 "세상 모든 사람이 구글스프레드 시트를 쓰고 있으면 모를까, MS오피스를 아예 못 쓰니 업무 전달과 진행이 너무 힘들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정작 사내 시스템 대부분은 아직 MS오피스 기반으로 자료를 받고 작성을 하고 업로드를 해야 한다. 구글로는 아예 읽히지도 않은 경우가 많다"며 "회사에서 구체적 대비 없이 그냥 밀어붙여 이 사단이 났다"고 적었다.  

위 게시글에는 "중소기업이냐", "그냥 종이로 써서 팩스로 보내라", "팀장부터 계속 엑셀파일로 보낸다", "제 정신인가" 등 대한항공 경영진의 행태를 비판하는 댓글이 잇따르고 있다. 

교차 취재 결과 대한항공 측이 사무 프로그램을 MS오피스에서 구글스프레드 시트로 변경하라고 고지한 기간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다. 글쓴이 주장이 맞는다면, 경영진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 변경 지시는 현실을 외면한 일방통행식 결정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사건의 본질은 경영진의 '불통'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시를 내리기에 앞서 한 번만이라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봤다면 나오기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SK를 비롯한 일부 대기업이 수평적 리더십 확산을 위해 공유좌석제 등을 시행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회사 측의 구시대적 행태는 더욱 도드라진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일하는 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최근 (MS오피스에서) 구글스프레드 시트쪽으로 옮겨갔다. 필요한 사람은 외부와 파일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부서에 1~2명이 (MS오피스)를 쓰게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MS오피스 사용 직원들의 인터넷을 끊겠다고 한 것은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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