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50兆 증발 루나에 발칵... 뜨거운 감자된 '가상자산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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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50兆 증발 루나에 발칵... 뜨거운 감자된 '가상자산 규제'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2.07.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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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테라 폭락으로 피해자 원성 높아
野 "유사수신으로 묶어야" 개정안 발의
與 "자율적 규제로 성장기회 열어야 할 것"
업계 "모든 코인 획일적 규제 안될 일"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연합뉴스

최근 루나·테라 코인 폭락으로 약 50조원이 공중분해되자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야권은 강도높은 규제 방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여권과 업계는 지나친 규제로 미래 성장 가능성을 저해해선 안 된다고 맞서는 모습이다. 

1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가상자산 예치를 유사수신행위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돼 가상자산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유사수신행위법 개정안'은 "예치한 가상자산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가상자산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금전이나 가상자산을 받는 행위를 유사수신행위 중 하나로 규정해 금지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무소속 양정숙 의원 역시 지난달 25일 유사수신행위에 금전뿐만 아니라 가상자산을 조달하는 것을 포함하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양정숙 의원은 "루나·테라 사태에도 책임자 처벌을 묻지 못하는 입법공백을 보완하고 더 이상 이런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유사수신행위'는 비제도권 금융업체들이 인가·허가를 받지 않거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인에게 일정기간 동안 장래의 원금반환과 수익금 등을 초과 지급할 것을 확정적으로 의사표시해 상대를 기망해 자금을 편취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는 개인이나 회사가 인허가 취득이나 신고를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현행법상 금지돼 있다.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의하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55조2,000억원, 일평균 거래규모는 11조3,000억원에 달했다. 가상자산 사업자를 이용하는 국내 이용자는 전체 인구의 약 30%인 1,525만명으로 집계됐다. 현재 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등 4개 거래소가 보유한 원화예치금은 총 7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야권에서 가상자산을 유사수신행위로 묶어 강력 규제하려는 이유는 최근 루나·테라 사태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이 손실로 고통받고 있음에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하다"고 날을 세웠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최근 인플레이션에 따른 급격한 금리 인상 추세로 주식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폭락하는 등 자본시장이 동요치고 있다"면서 "그 와중에 특히 가상자산이 급락을 거듭해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2020년 100만명 수준이던 투자자가 2021년 초부터 급증해서 600만명을 넘어섰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2030세대"라면서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든 청년들이 수익은 고사하고 엄청난 손실로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50조원 증발... 루나·테라 사태란?

지난 5월 11일 약 19달러 수준이던 루나(LUNA)가 불과 하루만에 1.16달러로 93.1% 폭락했다. 루나(LUNA)와 테라(UST)는 올해 5월 초까지만 해도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가상자산 8위를 기록했었다. 국내거래소에서 10만원을 호가했던 루나는 단 6일 만에 그 가치가 1원 미만으로 떨어져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테라는 고점 대비 57%, 루나는 고점 대비 무려 99%가 폭락해 약 5개월 사이 50조원이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권도형과 신현성이 설립한 테라폼랩스가 개발한 루나와 테라는 이른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Algorithmic Stable Coin)' 방식이다. 테라폼랩스 측은 별도 담보물 없이 공급과 수요를 조절해 가격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루나는 시장가격과 무관하게 1테라를 1달러로 매입·매각할 수 있고, 루나를 테라로 바꾸면 루나는 소각되고, 테라가 신규 발행되면서 거래량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테라의 가치가 1달러보다 높아지면 투자자들은 먼저 루나를 산 뒤 이를 테라로 바꿔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테라의 시세가 1달러보다 낮아지면 테라를 사서 이를 루나로 바꾸면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루나·테라 가치가 동시에 떨어질 경우, 루나의 투매가 곧바로 테라의 가치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5월 9일 루나·테라의 대량 매도가 발생하면서 이날 테라의 가치는 0.985달러로 떨어져 1달러선이 붕괴됐다. 다음날인 10일 테라는 15% 하락한 약 0.8달러를 기록한다. 동시에 루나도 53% 하락하며 29달러를 기록한다. 

11일에는 투자자 불안이 가중되면서 루나는 92% 하락한 2.5달러. 테라는 0.4달러로 시세가 급락한다. 12일, 루나와 테라의 시세는 99.99%까지 폭락했다. 여기에 루나·테라 가격 방어를 위해 테라폼랩스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매도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비트코인이 3만달러 선까지 무너졌다. 

권도형이 만든 LFG(Luna Foundation Guard)는 최근 재단이 가진 자산 내용을 공개했는데 5월 7일에 보유했던 8만394개의 비트코인 거의 전부를 테라 가격방어에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열흘 만에 현재 시세 기준 약 3조원어치의 비트코인이 사라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테라의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테라를 예치하면 20% 이자를 테라로 주는 앵커프로토콜(anchor protocol)을 만들어뒀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실물자산에 기반하지 않은 디지털 화폐 내지 자산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루나·테라 사태로 인해 피해를 본 국내 투자자는 약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테라·루나 피해자 모임'은 루나 개발사인 테라폼랩스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 남부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사진=시장경제 DB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사진=시장경제 DB

 

"빈대 잡다 초가집 태워선 안돼" 신중론 제기

여권은 가상자산을 뭉뚱그려 규제하기보다는 종류별로 특성에 맞는 법적 규율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 윤석열 정부의 기조 역시 규제보다는 혁신에 무게를 두고 있고,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여러 경로를 통해 '자율'에 방점을 두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13일 '가상자산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보호'란 주제로 열린 국민의힘 당정간담회에 참석해 "루나·테라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가상자산은 '초국경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면서 "합리적인 규제 체계의 마련도 중요하지만 가상자산 시장의 복잡성·예측 불가성 등을 고려할 때 민간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시장 자율규제의 확립이 보다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가상자산 시장이 민간의 자율성·창의성을 기반으로 더욱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장 윤창현 의원 역시 가상자산을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업계가 자율적인 규율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의원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루나·테라 사태에서 보듯 같은 코인에 대해서 어떤 거래소는 상장을 허용하고 또 어떤 거래소는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면서 "거래소들이 손해와 불편이 있다해도 신뢰할 만한 공통 기준과 규율을 만들어 투명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시장 자체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나 사태와 관련해서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공매도 세력에 의해서 테라·루나 프로젝트가 망가진 것으로 본다"고 분석하면서 "이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함부로 달러의 대체품을 만들지 말라는 것으로, 마크 저커버그의 '리브라 프로젝트'가 미 의회의 견제를 받아 실행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 전반을 규율하고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나친 규제가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향후 유관기관 보고 체계, 자금세탁방지와 투자자보호 가이드라인 등 필수 조건을 갖췄다면 샌드박스 형태라도 사업기회를 열어줘야 할 것"이라면서 "일례로 가상자산 실물결제 서비스는 국내 기업이 최초로 개발한 사업모델인데 당국의 규제로 발이 묶여 있는 사이 페이팔, 비자 등 글로벌 결제기업들이 맹추격해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코인 시장은 실제 '투전판'에 가까운 도박성 코인에서부터 안정적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수 있는 코인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이를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구획하고 규제하면 큰 성장기회를 놓칠 수 있다"면서 "증권법이든 자본시장법이든 디지털자산은 속성상 양쪽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규제 공백이 필연적이므로 주요 국내외 사례를 두루 참조해 탄력적인 '네가티브 리스트' 규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 시민사회 관계자는 "아직까지 코인시장은 상장된 증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안정성과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시장의 자율도 필요하지만 책임있는 당국자가 투자자들에게 예상되는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고 투자자 책임의 원칙을 사전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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