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신한금융, 은행 창업기념일 7월 7일 챙기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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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신한금융, 은행 창업기념일 7월 7일 챙기는 까닭은?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2.06.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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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0돌... 교포사회 성장통 속 민간은행 재탄생
'금융보국' 창업 이념, 1982년 7월 7일 설립
조흥은행 합병 후 ‘제2의 신화’... 대형은행 '우뚝'
신한은행, 신한금융그룹 본사 전경. 사진=시장경제 DB
신한은행, 신한금융그룹 본사 전경. 사진=시장경제 DB

“금융으로 나라를 이롭게 한다”

‘금융보국(金融報國) 나라를 위한 은행’을 기치로 태어난 신한은행이 올해 4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코로나 장기화로 미뤄온 기념행사도 재개한다. 

최근 창립기념일을 두고 신한은행의 발자취에 새삼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당초 신한은행은 조흥은행 합병일인 4월 1일을 챙겨왔다. 하지만 근래에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982년 당시 설립일인 7월 7일을 창립 40주년 기념일로 지정했다. 은행 창립 초심의 가치를 되새기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본지는 신한은행 40주년 창립기념일에 대한 전통과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성장 과정을 정리해봤다. <편집자 주>
 

신한은행 모태(母胎)는 협동조합

신한은 새로울 신(新) 나라 한(韓)으로 ‘대한민국 금융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은행’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교포사회의 금융 개척자, 우리나라 금융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손꼽히는 고(告) 이희건 회장에 의해 탄생됐다. 

이희건 회장이 신한은행을 설립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한국이 일본에 강점됐던 시기에 한국만의 은행을 설립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당시에는 상업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등 일본이 모든 산업을 점령하고 있었기에 한국인이 은행을 경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생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한 것이 신용조합이었다. 1951년 ‘협동조합에 의한 금융사업법(信用金庫法)’이 제정되면서 이희건 회장은 뜻이 맞는 재일교포·소상공인과 함께 1955년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했다.

1968년에는 사옥도 세웠다. 이후 총 예금고 100억엔을 달성하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가장 실적이 좋은 신용조합으로 자리 잡았다. 1993년에는 보통은행으로 전환하기 위해 관서지방 5개 흥은과 합병해 ‘관서흥은’(關西興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고(告) 이희건 회장은 한국교민은행을 만들고자 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에 투자하는 재일동포 기업인의 자금 지원을 위해 국내에 교민은행을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정부에 교민은행 설립 허가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기침체 등 국내 경기가 어려워지자 정부는 금융산업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신설 은행 설립을 적극 검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정부 방향과 맞물려 마침내 1981년 4월 교민은행 설립이 허가를 받게 됐다. 

당시 이희건 회장은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미국·중동계보다도 재일동포 자금이 모국 경제개발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이 최초 설립된 무렵은 일본에서 자본 반출이 쉽지 않던 시기였다. 자본 규모가 크지 않았던 신한은행은 한국 경제가 어렵던 시절 재일교포의 100% 자금을 모아 깃발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자본금 250억원, 지점 3개, 총 279명의 창립 멤버, 하루 방문 고객수 1만7500명, 수신계좌 5017좌, 총예금액 357억원으로 출범했다. 1981년 7월 20일 교민은행 설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열렸다. 9월 14일 창립총회에서는 이희건 회장이 대표이사로 추대됐다. 다음날인 9월 15일에는 신한금융개발을, 1982년 7월 7일에는 신한은행을 창립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과거 신한은행을 언급하며 “고(告) 이희건 회장은 경제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주들의 힘을 결집해 유상증자를 성공시키고 은행의 조직, 시스템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불어넣었다”고 평가한다. 

 

조흥은행 합병 후 ‘제2의 신화’ 탄생

국내 금융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조흥은행 합병 이후다. “신한은행이 한국의 은행사(史)를 다시 썼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이 때부터다. 신한은행은 IMF 외환위기 당시 기업대출로 인해 좌초된 2006년 4월 조흥은행을 파격적으로 인수했다. 이때 신한은행의 종자돈은 겨우 250억원이었다. 당시 서울은행과 한빛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평균 자본금이 904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라 할 수 있다. 

소규모였던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인수한 배경을 두고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조흥은행이 비록 부실로 쓰러졌어도 대한민국 넘버원 은행이라는 점을 높이샀고 법인을 존속해 역사를 계승하고자 함이 컸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조흥은행을 존속법인으로 남겨놓고, 기존 신한은행 법인을 지우는 방식의 통합을 이뤘다. 조흥은행과의 합병은 장기적 관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어려울 때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IMF 외환위기로 전체 금융시장이 혼란스러웠던 당시 신한은행은 서울은행, 한빛은행, 제일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에도 안정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조흥은행 외에도 부실채권에 허덕이던 제일투금(당시 제일종합금융)의 증자를 포기해 폐쇄시키고 대신 퇴출된 동화은행(同和銀行)을 인수했다.

조흥은행 인수 이후 신한은행은 안정된 지배구조 아래 영업 중심 경영, 적절한 직원 보상, 철저한 리스크 관리, 새로운 서비스 도입 등으로 은행업 혁신의 모범이 되며 빠르게 성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한은행은 자산 164조원, 지점수 946개, 직원 1만1,000명의 한국은행 2위의 지위로 올라섰다. 신한은행 설립 24년 만의 일이었다. 

신한은행 측은 “IMF 금융위기를 맞고 막 경제가 성장하려던 시기를 돌아보면 리스크 최소화가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직급별 인력 구성 합리화를 조직의 기본 원칙으로 삼으면서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거나 영업 중심의 조직을 구성하고 하부 조직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도록 해 신속한 업무를 추진하도록 노력한 것도 성장의 비결”이라고 부연했다. 

신한은행은 인수 통합 뱅킹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자체적인 독보적인 금융업 행보를 이어갔다. 특히 이동 365 자동화기기를 명동점에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은행 업무가 밖에서도 가능하다는 개념을 최초로 시장에 심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점망 확대로 이어졌다. 신개념 영업은 신한은행의 신용에 있어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은행의 기초 면에선 합병보다도 상호 보완 효과가 컸다는 설명이다.

신한금융그룹 본사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신한금융그룹 본사 전경. 사진=시장경제DB

 

베트남 첫 진출 은행 선례(先例)

신한은행이 급격하게 성장한 또 다른 배경으로는 해외시장 진출이 꼽힌다. 신한은행은 1993년 국내 금융사 중 가장 먼저 베트남에 진출했다. 2001년 신한금융지주 출범 후 베트남 내 자회사 통합정책으로 2009년 지금의 신한베트남은행이 탄생했다. 

당시 빠르게 성장하는 베트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HSBC, ANZ, SC, HLB 등 유수의 외국계 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신한은행은 그룹의 지원을 받으며 △기업·리테일 △현지인 대상 영업 △현지 통화와 달러 환전 △남부와 북부의 균형 성장 등을 통해 조직 안정화에 집중했다.

2017년 이후 신한은행은 그룹 전략에 발맞춰 고(高)자산 고객을 대상으로 한 PWM((Private Wealth Management), IB(Invest Bank), 주요 계열사 동반 진출 등 사업을 다각화해 성장 모멘텀을 키웠다. 지금까지 디지털·현지화 등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완성한 배경으로 신한은행과 그룹의 호흡이 막강한 시너지를 발휘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베트남 현지에는 신한은행, 신한카드, 신한금융투자, 신한라이프, 신한DS 등 핵심 계열사가 모두 진출해 있다. 각각 리테일, 기업금융, IB, WM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지 고객을 대상으로 전략적 영업을 추진하고 있다.

신한은행을 주축으로 한 신한금융그룹은 무서운 속도로 사업 다각화를 시작했다. 특히 2017년 조용병 회장이 취임 후 7월부터는 기존 은행과 증권 중심의 CIB(기업금융 기반 투자은행) 부문을 생명·캐피털까지 포괄하는 GIB(group&global investment banking)로 확대 개편했다. 같은 해 신한리츠운용도 설립했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사진=신한금융그룹 제공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사진=신한금융그룹 제공

신한은행에 행원으로 입사해 33년 만에 은행장까지 오른 '정통 신한맨' 조용병 회장은 2018년 보험 사업에도 손을 뻗는다.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 인수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신한자산신탁의 기존 최대주주로부터 회사 지분 100%를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후 2019년 5월 지분 60%를 우선 인수했고, 지난달 지분 40%를 최종 인수했다. 신한자산신탁을 기반으로 부동산 관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아울러 ANZ은행의 베트남 소매금융 부문, 벤처캐피털 네오플럭스, 부동산 신탁사인 아시아신탁 인수 등으로 비은행 사업에 적극 진출하기 시작했다. 

리딩금융 꿈의 질주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 신한금융은 최근 오랜 숙원 사업인 손해보험사를 편입하면서 16번째 자회사를 품에 안았다. 신한금융은 지난 9일 열린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BNPP카디프손보의 자회사 편입을 최종 승인 받은 후 자회사 공식 출범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에 특화된 손해보험사로 키워 비은행 부문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원신한 관점의 그룹사 협업을 바탕으로 생활 밀착형 보험 상품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며 카디프손보의 자회사 편입은 그룹의 비은행부문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성공적인 M&A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신한금융은 더욱 강화된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일류 금융그룹으로의 발전을 가속화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한은행은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창립 몇 주년'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대신 '통합 몇 주년'이라고 표현한다. 신한은행은 조흥은행 외에도 동화·강원·충북은행 등 여러 은행을 인수 합병하며 성장했다. 창립 연도와 얽힌 문제가 종종 언급되는 이유다. 그러나 신한은행이 성장가도를 달려 올해 1분기 기준 863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만큼 내부에선 관련 문제를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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