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수첩] 차라리 병든 닭을 먹어야 하나
상태바
[현장수첩] 차라리 병든 닭을 먹어야 하나
  • 김흥수 기자
  • 승인 2017.08.23 15: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김영록 장관이 최근 세종정부청사에서 살충제 계란 관련 공식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부는 성인 기준으로 살충제 계란을 하루에 126개까지 먹어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농림수산식품부

10여년 전 공해로 찌든 도시가 싫다며 충청도 제천으로 무작정 귀농을 실행해 몇 번의 실패를 이겨내고 지금은 흙냄새가 구수하게 어울리는 농부로 변신한 선배가 있다. 

지난 해 늦가을 제천에 업무차 내려 갔다가 선배의 집에 들러 농사 짓고 있는 배추밭을 둘러 볼 기회를 얻게 됐다. 때마침 김장 담을 배추를 손수 재배하고 있었는데 배추 밭의 거의 모든 배추들이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었다.

선배는 친환경 농사를 짓다 보니 배추벌레들만 살 찌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벌레 먹은 배추가 안전한 먹거리 증표라는 논리를 설파했었다.

올해 초 조류독감 파동으로 국내에서 사육하고 있는 닭의 대부분을 살처분 하면서 벌어진 닭-계란 파동은 최근 들어 살충제까지 검출되면서 국민들의 식탁 안전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계란의 유통과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정부당국의 혼선으로 대한민국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계란이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계란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바퀴벌레나 벼룩 등의 해충을 박멸할 때 사용하는 맹독성 화학물질이다. 비펜트린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발암물질로 파리, 벼룩 불개미 등의 살충제로 사용된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계란을 생산한 농가에서는 닭의 이나 진드기를 박멸하기 위해 이와 같은 살충제를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한 농가에서는 정부 당국자의 권유로 살충제를 사용했다는 충격적인 증언까지 나왔다.

지난 22일에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닭고기에서 기준치의 무려 6배가 넘는 구충제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지금껏 국민 먹거리로 사랑을 받아 온 닭과 계란은 졸지에 독극물을 전달하는 혐오식품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기관인 식약처는 인체에 해를 가할 만큼의 독성은 아니니 소량의 섭취는 무관하다는 망언으로 온 국민의 화를 돋우고 있다.

국민들의 먹거리 안전을 위해 도입한 '친환경 인증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계란에서 무더기로 살충제 계란이 발견되면서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3無(무능, 무책임, 무기력)는 여전함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국민들의 입에서 ‘국내 최고의 발암원인 제공처는 식약처'라는 조롱이 나오는데도 식약처는 우왕좌왕만 할 뿐 아무런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가을, 벌레먹은 배추가 건강하다던 선배의 농담 아닌 농담이 문뜩 떠올랐다. 인체에 무해한 닭고기를 먹으려면 차라리 병든 닭을 먹는게 낫다는 세간의 비아냥이 씁쓸할 따름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