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칠 줄 모르는 하림의 '경쟁사 끌어내리기'
상태바
[기자수첩] 지칠 줄 모르는 하림의 '경쟁사 끌어내리기'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2.05.19 18: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림, '더미식 밥' 출시하며 '첨가물 제로' 내세워
CJ·오뚜기 즉석밥 안전하지 않은 것 처럼 홍보
김홍국 회장 "찝찝함, 죄책감" 부적절 발언
경쟁사 끌어내려 이득보려는 네거티브 전략
이미지 나빠져 기업 평판에 악영향 미칠 수도
김홍국 하림 회장. 사진=시장경제DB
김홍국 하림 회장. 사진=시장경제DB

식품 기업 하림의 '첨가물 뺀 즉석밥'으로 인해 업계가 시끄럽다. 식품업계의 아킬레스건인 식품첨가물이 또 다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CJ제일제당과 오뚜기뿐 아니라 다른 식품업체들까지 하림을 비판한다.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안전성을 인정받은 첨가물에 대해 문제가 있는 것처럼 표현해 소비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하림이 식품첨가물을 이용해 멀쩡한 기존 즉석밥을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네거티브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림산업은 지난 16일 즉석밥 ‘더 미식밥’ 출시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CJ제일제당의 '햇반'과 오뚜기의 '오뚜기 맛있는 밥'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0.1%의 첨가물도 없이 쌀 100%로만 지은 즉석밥이라고 소개했다. 자사 즉석밥은 식품첨가물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프레젠테이션(PT) 화면에 경쟁사 제품 사진을 띄우기도 했다. 

심지어 김홍국 하림 회장은 "적잖은 사람들이 집에서 식구들에게 즉석밥을 내놓을 때 착잡해 한다고 들었다"며 "즉석밥에 뭔가를 첨가했을 것 같은 찝찝함, 어린 자녀들에게는 인스턴트 식품을 준다는 죄책감까지 느낀다고 한다"고 발언했다.

하림의 남의 제품 깎아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림은 지난해 즉석밥 '하림 순밥'을 출시할 때도 자신들의 제품에는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경쟁사 제품에 들어 있는 미강추출물과 산도조절제가 몸에 해로운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1년 전에도 똑같은 마케팅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지난해 라면 시장에 진출할 때도 그랬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장인라면' 출시 기자회견 자리에서 "막내딸이 라면을 먹으면 아토피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 이유가 라면 가루스프에 인공 재료가 많이 들어가서였다. (장인라면은) 막내 딸이 먹어봤지만 아토피 증상이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자사 라면에 MSG(L-글루타민산나트륨)가 함유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으나, MSG가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다.

식품첨가물 무첨가 마케팅은 1990년대 한 식품업체가 'MSG(L-글루타민산나트륨)'가 들어있지 않은 조미료를 들고 나오며 시작됐다. 조미료 시장에서 절대 강자였던 미원이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MSG가 몸에 해롭다는 의학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당시 미원을 사용하는 음식점은 물론, 주부들도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식품첨가물은 가공식품의 맛과 향을 좋게 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돕는다. 다만 가급적 소비자들은 첨가물이 없는 식품을 선호한다. 이런 소비자의 요구에 발맞춰 첨가물을 빼려는 식품업체들의 노력은 칭찬해 마땅하다. 하지만 경쟁사를 끌어내려 이익을 얻으려는 네거티브 전략은 공멸을 초래할 수 있다.

2011년 화제가 됐던 카세인나트륨 파동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남양유업은 '카제인나트륨(기름과 물이 섞이게 하는 유화제로 쓰임)을 넣은 커피, 더 이상 안 된다!'라고 광고해 네거티브 마케팅 논란이 일었다. 당시 대다수 커피믹스 제품에 식품첨가물인 카세인나트륨이 들어 있었다. 

남양유업의 네거티브 마케팅은 어느 정도 실효를 거뒀다. 출시한 제품은 1년만에 시장점유율을 12.5%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카세인나트륨이 몸에 안좋은 성분이란 점이 알려짐과 동시에 소비자 불신이 커지면서 커피믹스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네거티브 마케팅은 후발주자가 선두주자에 도전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후발 주자가 자신의 제품을 설명하면서 좋다고 아무리 홍보해도 소비자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선두주자 제품의 문제점을 부각하면서 자사 제품을 내세울 때의 반응은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하림이 최근 진출한 즉석밥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즉석밥 시장 업체별 점유율은 CJ제일제당 '햇반'이 전체의 약 70%를, 오뚜기 '맛있는 오뚜기밥'이 약 28%를 차지한다. 두 제품이 전체 시장의 98%를 점유하고 있다. 

하림은 첨가제 냄새 때문에 즉석밥을 꺼리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5년간의 연구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실제 하림의 '더 미식밥'을 먹어보니 냄새도 나지 않았고, 밥알의 식감도 살아 있었다. 경쟁사를 깎아 내리지 않아도 될 만큼, 맛과 품질 모두 우수했다. 

하림의 즉석밥 관련 발언이 부각되면서 정작 신제품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전해지지 않은 느낌이다. 불과 1년 전 론칭한 '순밥'이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실상 단종된 것을 생각한다면 당시와는 다른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하림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경쟁사 비방에만 열을 올린다면 되레 이미지만 나빠져 기업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안감만 부추기는 회장의 말 한마디로 5년간 즉석밥 연구에 혼신을 다한 직원들의 노력이 한 순간에 무너질까 우려스럽다. 가정간편식(HMR) 라인업을 확대해 명실상부 종합식품기업으로 위상을 굳히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비방'보다는 '배려'하는 미덕을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