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방역관리요원' 된 전직 은행지점장... "인생 2막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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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방역관리요원' 된 전직 은행지점장... "인생 2막 쉽지 않네"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2.05.1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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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30년 근무, DT에 밀려 희망퇴직
50대 나이에 뛰어든 새 일자리 찾기 '분투'
"꿈의 직장 옛말... 은행 경력 아무 소용 없어"
“재기 지원 위한 다양한 자격증 교육 필요”
퇴직한 은행원 A씨 출근하는 모습과 상점가 풍경. 사진=시장경제DB
퇴직한 은행원 A씨가 상점가로 출근하는 모습. 사진=시장경제 DB

디지털 시대다. 은행권 채용 풍토는 공채보다 IT 전문 인력을 중심으로 뽑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기존 점포는 대거 폐쇄되고 대신 디지털 특화점포·편의점 점포라는 이름의 생소한 지점들이 생겨났다. 사람 모습을 한 인공지능(AI) 은행원이 고객을 맞이하는 이색 풍경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진 모습이다. ‘꿈의 직장’, ‘고액 연봉’이라는 타이틀로 자부심을 느끼던 은행원들은 디지털 전환에 밀려 하나둘 희망퇴직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마치 쫓기듯 떠난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취재진은 13일 오전 10시, 일렬로 늘어선 복잡한 상점들 사이로 초록색 조끼를 입고 걸어가는 전직 은행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류 가방보다 햇빛가리개용 모자가 필수”

깔끔한 양복차림에서 편안한 일상복으로 출근 복장이 바뀐 A씨(55세). 요즘은 서류 가방보다는 텀블러, 보조배터리, 햇빛가리개용 모자, 팔토시, 소독제 등 각종 필요용품이 담긴 백팩이 더 익숙해졌다. 

은행을 떠난 A씨는 방역관리요원이 됐다. 그가 가방에 챙겨 담은 용품들은 업무에 있어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특히 소독제와 햇빛가리개용 모자는 필수처럼 여겨진다. 날씨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줄곧 밖에서 활동해야 하는 그에게 챙이 넒은 모자는 우산과 같다. “실외에서 주로 서있다 보니 텀블러에 물을 챙겨 담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됐어요.” A씨는 멋쩍은 듯 애써 웃음을 짓는다. 

A씨는 이제 개인차량으로 출근하지 않는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집에서 새 직장까지 1시간 남짓 걸려 오전 9시까지 출근하면 저녁 6시까지 관내 구역을 다니며 100개 이상 상점들을 방문한다. 주 업무는 상점가 손잡이를 소독하는 일이다. 길바닥을 관리하거나 때때로 상가 사람들의 소소한 다툼을 막기도 한다. 민원처리 같은 다른 부수적인 일도 A씨의 담당이다. 

수많은 상점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기에 계속 걸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크게 어려운 일은 없다는 A씨. 과거에는 은행 명예지점장을 할 정도로 명성을 날렸던 그다. 줄곧 한 자리에서 고객 대출 서류를 보며 계산만 했기에 운동을 따로 할 시간이 없었다는 그는 “현재 활동들이 오히려 운동 된다”며 껄껄 웃는다.  

하지만 어쩔 때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A씨는 “그래도 예전 은행원이었을 때보다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편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은행원이었을 때보다 월급이 많지 않기에 사실 생활면에서는 주머니가 쪼들린다며 씁쓸하게 털어놓는다. 

A씨가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손잡이를 소독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A씨가 상점을 돌아다니면서 손잡이를 소독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은행 근무 30년... 퇴직 결정 쉽지 않았죠”

A씨가 방역관리요원으로 ‘인생 2막’을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주인공은 구청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 성격의 6개월짜리 단기 일자리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그가 희망퇴직을 결정했던 지난해 1월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은행 희망퇴직은 정년(61세)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 대부분의 은행원들은 임금피크제에 진입하는 55세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있다.

A씨는 “희망퇴직을 했을 때에는 미련 없이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고달프네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은행원이 됐다. 4대 대형은행 중 한 곳이었다. 일반 창구 직원에서부터 시작해 지점장이 되기까지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특유의 넉살 좋고 상냥한 성격 탓에 고객들로부터 친절한 은행원이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성실하게 근무한 덕분에 ‘실적기여 우수 직원 은행장 상’을 받는 등 사내에서도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받았다. 영업실적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꽤 괜찮은 직업이라 여기며 자부심을 가졌다. 착실하게 번 돈으로 자녀 학비까지 대며 가장 노릇도 충실하게 했다. 하지만 디지털을 중심으로 바뀐 시대는 구식 은행원에게 냉담하기만 했다. 

그의 자녀는 올해 대학생이 됐다. 이 와중에 A씨는 등 떠밀리듯 은행을 떠나야만 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서는 은행 희망퇴직 이슈가 단골 뉴스로 등장했다. A씨는 “언론 보도를 보면 은행 퇴직자들이 고액의 퇴직금을 받고 짐 쌌다는 제목의 다소 자극적인 타이틀이 대부분이지, 이들의 고충이나 실제 사연은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씁쓸했어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포구 지역 내 한 지하상점 모습. 사진=시장경제DB
A씨가 방역관리를 위해 찾은 구청 관내 상가 전경. 사진=시장경제DB

 

“생활전선 다시 뛰어들며 냉혹한 현실 직시”

A씨는 희망퇴직금 4억원, 법정퇴직금 1억5,000만원을 받았다. 처음은 통장에 담긴 목돈을 보며 안도했다.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은 며칠 뒤였다. A씨는 “세금 7000만원이 빠져나간 후 나머지 5억3000만원에서 아이들 학자금, 보험, 건강·검사비 전직지원금, 집 대출금 3억3000만원을 상환하고 나니 허탈했죠”라고 나즈막이 말했다.

남은 퇴직금으로 생활을 하기에는 빠듯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결국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잡코리아 등 취업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1년여간 이력서를 내며 문을 두드린 곳은 은행원 경력과 아무 상관이 없는 곳들이었다. 편의점, 베스킨라빈스, 커피전문점, 호텔 운전, 택시기사, 어린이수영셔틀버스 운전기사, 배달기사 등이다. 그러나 대부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외국인 관광객 대상 호텔 운전기사는 면접이 제일 까다로웠다. 토익기본점수(600점 이상)는 기본, 생활영어를 할 수 있어야 통과될 수 있었다. 기본 스펙이 있었기에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어이없이 50대라는 이유로 떨어졌다. 하지만 A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일자리 방역관리요원을 구청에서 공고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그는 실속 있고, 안정된 직업이라 여겨 단박에 지원했다. 

A씨는 “단기근무 형태이고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것이 다소 아쉽지만 이것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저 같은 일반 은행원들은 퇴직 후 비애(悲哀)가 크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현재 은행들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유로 직원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는데 (퇴직한 이들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교육 지원을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구현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이를테면 퇴직을 앞두고 있는 직원들이 전직할 수 있도록 각종 기술자격증을 취득하는 폴리텍 대학을 연계하는 방법이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전기기사나 소방기사 혹은 중장비 자격증, 주택관리사, 조경기사 등 각종 기술을 익히는 다양한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하루 일과를 마감했다. 끝으로 A씨는 “이제는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원은 아니지만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시민의 발이라는 자부심으로 방역관리에 힘쓰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갈 겁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인파로 북적한 퇴근 길, 그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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