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兆 '배드뱅크' 추진 진통... "모럴헤저드·역차별 우려"
상태바
20兆 '배드뱅크' 추진 진통... "모럴헤저드·역차별 우려"
  • 문혜원 기자
  • 승인 2022.04.10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수위, 소상공인 부채 탕감 위해 설립추진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등장...모럴헤저드 우려
은행권, 제도 공감... 출연금 마련엔 ‘울상’
“소상공인 차주 구분하는 세부방안 검토돼야”

차기 정부가 코로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드뱅크(Bad Bank)'카드를 꺼냈지만, 세부 방안을 놓고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배드뱅크란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채무 재조정을 지원하는 특별기금이나 은행을 말한다. 가령, 은행이 소상공인 대출 등 부실채권을 배드뱅크에 매각하면 배드뱅크는 채무자의 상황에 따라 채무를 재조정해 연착륙을 지원한다. 

10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소상공인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배드뱅크’ 설립 추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 4일에는 금융당국이 배드뱅크 설립 방안을 놓고 본격적인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윤석열 대통령당선인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거론한 소상공인 부실채권을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한 ‘배드뱅크’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배드뱅크'를 적극 검토하라고 주문하며 급물살 탔다. 이에 배드뱅크가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의 화두로 떠올랐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당시 경제분과 업무보고에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정부·은행이 공동 출자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를 만들어 주택담보대출에 준하는 장기간에 걸쳐 낮은 금리로 대출을 상환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인수위는 코로나로 경영한계에 봉착한 기업들의 단계적인 정상화 과정을 돕기 위해 '배드뱅크'를 설립할 방침이다. 오는 9월 말 대출 만기 연장 등 코로나 지원책이 종료될 경우 빚을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이 속출할 것에 대비해서다. 현재 인수위와 금융당국에서 출자규모와 지원방식 등을 놓고 긴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연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채무 상환 능력을 따져 선제적으로 자영업자의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배드뱅크의 핵심은 재원 조달이다. 향후 인수위에서 논의를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배드뱅크 설립에 대해 실효성과 지속성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배드뱅크를 마련하기 위한 재원은 2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2020년 초부터 소상공인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해 왔다. 재연장을 거듭해 올해 9월까지 시행 기한이 늘어나 있는 상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이렇게 만기연장과 상환유예가 적용된 대출 잔액은 133조4000억원에 달한다. 대상자로 따지면 55만4000명이다. 

정부와 금융권은 2020년 이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출 만기를 총 네 차례 연장해 오는 9월까지 상환을 미뤘다. 지난 1월 말 기준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원리금은 291조원(116만5000건), 대출잔액은 133조4000억원(70만4000건)에 달한다.

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중 두 차례 이상 코로나 금융지원을 받은 차주는 20%에 해당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반복되는 채무탕감 정책으로 인해 모럴헤저드 우려가 나온다. 배드뱅크 설립을 위해서는 재정지원이 필수적인 만큼 정부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많게는 수십조원 규모의 나랏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당시 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연체 채권을 전액 탕감해줬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6개월 넘게 갚지 못한 1억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신용회복기금으로 3개월 이상 1000만원 이하 신용대출을 조정해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그간 코로나 금융지원으로 인한 실제 리스크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잠재부실 규모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이런 상황 속에서 무조건 배드뱅크부터 거론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소상공인 사이에서는 배드뱅크를 통한 신용불량자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점과 성실한 채무자에 대한 역차별이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 소상공인 관계자는 “배드뱅크 지원자로 선정되면 원리금 탕감과 이자 감면의 혜택을 입을 수 있는 터라 돈을 안 갚아도 된다는 모럴 해저드가 있을 수 있다”면서 “또 성실히 채무를 갚던 채무자들은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배드뱅크에 자체적으로 채무 구조조정과 채권 상각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출연금 등 재원 마련 측면에서 은행권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의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상 금융지원 연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국가적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배드뱅크가 현실화 되면 최근 금융사의 실적 개선 등을 이유로 민간에 더 많은 비용이 전가된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최후의 수단인 배드뱅크부터 논의하기 보다는 현재 금융지원 대상 차주의 상환 여력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