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 대러제재 한 곳도 없어... '글로벌 낙인' 찍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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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사, 대러제재 한 곳도 없어... '글로벌 낙인' 찍힐라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2.03.11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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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해외 게임사에 대러제재 동참 호소
블리자드, 닌텐도, 크래프톤 등 대상기업 실명 언급
크래프톤 등 국내 게임사 '서비스 중단' 결정 머뭇
좁은 내수시장, 매출 해외 의존도 매우 높아
중국 판호 진출 막힌 사이, 러시아 신흥시장 부상
현지 퍼블리싱 계약 파기 시 국제 분쟁 문제도
3N, 스마일게이트 등 "답변 곤란"
사진=마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트위터 캡처
사진=마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트위터 캡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국내 중대형 게임사들이 대러 제재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등 자유주의 진영은 물론이고 스위스와 스웨덴 등 영세 중립국조차 대러 제재와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중대형 게임사들은 러시아에 대한 게임 서비스 중단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액티비전블리자드, 마이크로소프트(MS), 닌텐도, 에픽게임즈, 일렉트로닉아츠(EA) 등 해외 주요 게임사들이 러시아에서의 게임 서비스와 관련 상품 판매 중단을 선언하면서 국내 게임사들의 모호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방 각국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르고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사정을 고려할 때, 자칫 ‘친러기업’으로 낙인이 찍혀 해외 이용자들로부터 보이콧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 러시아 게임 서비스 중단을 공식 결정한 국내 게임사는 없다. 라이엇게임즈가 러시아에서의 서비스 중단을 결정했으나 이는 미국 정부의 조치에 따른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 라이엇게임즈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라이엇게임즈는 지난달 24일부터 미국 행정부 명령에 따라 '리그오브레전드', '발로란트' 등 자사 IP 게임의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 회사는 게임 아이템과 스킨 판매 수익금을 우크라이나 구호 활동에 기부하기로 했다.

앞서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달 2일 SNS를 통해 세계 각국 주요 게임사를 상대로 러시아 제재 동참을 호소했다. 그는 글로벌 주요 게임기업의 실명을 직접 열거하면서 "러시아군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며 "유치원, 고아원, 병원까지 폭탄과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것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현대 국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이 세상에 폭력은 없어져야만 한다. 우리 목소리가 푸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가 올린 게시글에는 블리자드, 닌텐도, 에픽게임즈 등 다국적 기업과 함께 국내 게임사로는 유일하게 크래프톤의 이름이 포함됐다.

크래프톤은 물론이고 NC와 넥슨 넷마블, 스마일게이트, 펄어비스 등 한국을 대표하는 중대형 게임기업은 모두 대 러시아 서비스 중단과 관련 구체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스타 2021에 참가한 크래프톤 부스. 사진=시장경제DB
'지스타 2021'에 참가한 크래프톤 부스. 사진=시장경제DB

 

국내 게임업계 해외 매출 비중 30~80%
신흥시장 부상 러시아... MMORPG 인기  

국내 게임사들이 러시아 서비스 제공 중단을 머뭇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해외 의존도 때문이다. 국내 게임업계는 내수시장이 작아 일찍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대형 게임사들의 실적에서 해외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게는 30% 대에서 많게는 80%를 웃돈다. 해외부문에서도 유럽은 북미, 동남아시아와 함께 국내 게임업계 실적을 뒷받침하는 3대 거점 시장 중 한 곳이다. 국내 게임사들의 해외 누리꾼들의 싸늘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쉽사리 발을 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특히 판호 발급 중단으로 중국 진출이 가로막히면서 러시아는 국내 게임업계가 무시할 수 없는 신흥시장으로 부상했다. 러시아에서 인기를 얻는 장르가 MMORPG라는 점도 국내 게임업계의 고민을 깊게 만드는 요소로 볼 수 있다.

MMORPG는 국산 ‘K-게임’을 상징하는 장르이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의 포트폴리오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게임은 대부분 MMORPG 기반이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앱애니에 따르면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엔씨소프트 '리니지2M'이 러시아 앱스토어 매출 각 2위와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게임사들이 현지 퍼블리싱 기업을 통해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는 점도 글로벌 제재 동참을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스마일게이트, 크래프톤 등은 러시아 메일루(Mail.RU) 그룹과 협업 중이다. 엔씨소프트와 펄어비스는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 현지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 관계자는 "예민한 문제"라며 "공식적으로 드릴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답했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해외) 퍼블리싱 계약의 일방적 파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아직 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EU 등은 러시아에 전방위 제재를 가하고 있다. 웹사이트 카스텔룸 자료를 보면, 세계 각국이 지금까지 단행한 대러시아 제재는 5532건에 달한다. 지난달 2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새로 추가된 제재는 2778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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