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까지 나선 '확률형 아이템' 규제... 제2의 셧다운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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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까지 나선 '확률형 아이템' 규제... 제2의 셧다운제 우려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2.02.2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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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뒤늦은 게임법 개정 추진에 업계 당혹
개정안 강행 시 중소게임사 枯死 위험 현실화
게임 아이템 확률 조작 논란에 필요성 대두
지난해 초 수면위... 메이저 게임사 이용자 이탈
NC 넥슨에 실망... 스마일게이트 등 반사이익
게임업계 자율 정화... 투명성 강화, 잡음 해소
게임 산업 생태계 위협... 셧다운제 악몽 잊었나
발언 중인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발언 중인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대선 후보들이 온라인 게임 아이템 회득 확률 완전 공개와 법제화 등을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확률형 아이템'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온라인 게임 아이템 획득 확률 공개를 게임사 자율에 맡길 것이냐, 정부가 강제적으로 규제할 것이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정부는 게임사가 이용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며 시장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났다는 입장이다. 법령 강행규정으로 획득 확률 완전 공개를 명시해, 게임사들의 이행을 강제하겠다는 것이 정부안의 핵심이다. 게임 아이템 이슈에 있어서만큼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캠프 입장도 정부와 결이 같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미 해결된 이슈를 정부가 뒤늦게 나서 문제삼고 있다며 개정안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업계 전반의 의견 수렴이 미흡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정부가 업계 의견을 무시하고 규제에 초점을 맞춘 법령 개정을 강행한다면, '셧다운제'처럼 게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패착이 될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국회에서 게임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었다. 오지영 법무법인 창과방패 변호사, 박현아 한양대학교 박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두 사람은 아이템 획득 확률 공개와 관련돼, 법제화 등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캡처.

오 변호사는 "일부 게임사들의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사후 대응, 불완전 서비스 판매 등 게임 이용자와 사업자 간 이해가 충돌하는 구체적 사례들을 봐왔다"며 "(정부는) 정보와 힘의 측면에서 상대적 열위에 있는 약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공익적 가치와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박현아 박사는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 규제에 동의하면서도 향후 그 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견해를 냈다. 그는 "(이번 개정안은) 기존 규제의 합리성을 재검토하고 비교적 소홀하게 다뤄졌던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해 제안됐다"며 "검토 결과 법안의 목적에서 밝혔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산업 성장과 기술 발전 속도를 고려해 법률적으로 지나친 제한이나 과도한 의무가 지워지지 않도록 경계해야한다"며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조항이 있는지 확인해 개인, 소규모 게임사에 불합리하지 않도록 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MMORPG '메이플스토리', '리니지' 등 일부 게임 이용자들은 해당 게임 아이템 획득 확률을 게임사가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외 버전과 국내 버전의 획득 확률이 다르다는 주장도 흘러나왔다. 아이템 획득 확률 조작이 문제된 게임은 NC와 넥슨 등 메이저 게임사들이 개발한 MMORPG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가 확산되자 이들 게임사는 뒤늦게 고개를 숙이면서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로스트아크 이미지. 사진=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이미지. 사진=스마일게이트

 

확률조작 논란, 이미 해소된 사안... 실효성 의문  

아이템 확률 조작 규제에 방점이 찍힌 게임법 개정안이 업계의 비판을 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업계의 자율 정화 풍토가 자리를 잡으면서 문제점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획득 확률 조작이 문제된 장르는 MMORPG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리지니와 메이플스토리 아이템 획득 확률 조작 의혹이 불거진 시점은 지난해 초이다. 언론의 뭇매를 맞은 게임업계는 대형 게임사들을 중심으로 자체 정화를 위한 일련의 개선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확률 조작 이슈는 중요성 관점에서 사실상 해소됐다. 각 게임사들은 MMORPG 아이템의 종류와 수량을 모두 공개하고 있으며, 비중이 높은 아이템의 획득 확률 공개에도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임 개발 과정을 공개해 이용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게임 업계에서 아이템 확률 문제는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업계 공통의 지적이다. 사실상 해소된 사안을 문제삼아 정부가 뒷북을 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아이템 획득 확률 조작 논란은 중소게임사들에게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고가 아이템 판매 비중이 적고, 획득 확률 조작 의혹에서 한발 비켜서있던 중소게임사들은 NC, 넥슨 등의 행태에 실망한 이용자들이 옮겨오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등 반사효과를 누렸다. 중견게임사 스마일게이트의 MMORPG 로스트아크가 대표적이다. 적은 돈으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착한 게임'으로 유명세를 탄 로스트아크는 아이템 획득 확률 조작 논란이 불거진 이후 이용자가 급증했다. 

스마일게이트가 2021년 6월 19일 유저간담회 로아온(LOA ON)에서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아바타 상품 판매량이 2021년 1~2월부터 급증했는데, 이 시기는 메이플스토리 등 타 MMORPG의 게임에서 확률 조작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이다. 타 게임 유저가 로아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유저 간담회 장면 캡처
스마일게이트가 2021년 6월 19일 유저간담회 로아온(LOA ON)에서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아바타 상품 판매량이 2021년 1~2월부터 급증했는데, 이 시기는 메이플스토리 등 타 MMORPG 장르에서 확률 조작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점이다. 다른 게임 유저가 로스트아크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스마일게이트 로스트아크 유저 간담회 장면 캡처.

 

게임시장 자율 정화기능 작동... 정부 직접 규제 최소화해야 

시장이 자율적 규제를 통해 이슈를 해소한만큼 법령을 통한 정부의 규제 강화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클 수 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정부가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한다면 대형 게임사들도 매출의 영향을 받겠지만, 운영 게임이 MMORPG 하나뿐인 중소형 게임사들은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게임 산업 경쟁력을 훼손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정부가 2011년 도입한 셧다운제는 전성기에 있던 한국 게임 산업 생태계를 한 순간에 붕괴시킨 실책으로 기억에 남았다. 

'셧다운제'는 아동과 청소년의 게임 중독 현상이 사회문제화되자 도입된 제도이다. 제도가 적용되면서 자정 이후 청소년의 게임 서비스 접속은 차단됐다. 이 제도는 2011년 11월 도입된 뒤 10여년만인 올해 1월 폐지됐다. 청소년 과몰입 방지라는 목적 달성에도 실패했고, 되레 국산 게임 산업 발전을 퇴행시켰다는 비판이 거셌다. 

게임사 관계자는 "정부 규제로 이용자들 신뢰가 회복한다면 개정안을 도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며 "단 제2의 셧다운제가 되지 않도록 게임사, 언론사, 이용자 등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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