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주유소 다 죽어라?"... 알뜰주유소 특혜에 업계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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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주유소 다 죽어라?"... 알뜰주유소 특혜에 업계 '분통'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2.02.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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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주유소 1km 거리제한 완화... 정유사 '부글'
"물가 안정 이유로 시장 왜곡... 형평성 어긋"
특별세액감면율 10% ↑... 알뜰주유소만 특혜
최저가 입찰제... 현 공급사 SK에너지·에쓰오일
"수익성 떨어져"... 알뜰주유소 공급사도 떨떠름
"소비자 편익 올라가지만, 생산자 편익은 낮아져"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알뜰주유소 간 거리 제한 완화 등 정부의 알뜰주유소 확대 움직임에 주유소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실상 특정사업자(알뜰주유소)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일반 자영 주유소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21일 한국주유소협회와 석유유통협회는 정부의 알뜰주유소 간 1km 거리 제한 완화 방침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반대의견을 밝혔다.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이달 말까지 알뜰주유소 간 거리 제한 규정(이격거리)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국제유가가 급등하며 고유가 기조가 이어지자 정부는 알뜰주유소 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앞서 지난해말에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고유가 대책으로 "알뜰주유소 비중이 낮은 도심의 1km인 이격거리를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음달 초에는 알뜰주유소 전환 주유소에 특별세액감면율을 10%포인트 상향하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알뜰주유소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았던 2011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 이후 도입됐다. 일반주유소보다 싸게 기름을 공급해 전체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업계 "정부가 물가안정 이유로 시장왜곡"

주유소업계는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시장을 왜곡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박동위 한국주유소협회 차장은 "현재 알뜰주유소는 주유소와 경쟁을 촉진해 기름값을 낮추기보다 알뜰주유소 사업자가 돈 벌 수 있는 정책으로 가고 있다"며 "업계에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면 로또 맞았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유소업계가 살아남는 곳은 수도권에 있는 대형 직영 주유소들이다. 그럼 나머지 주유소들은 죽으라는 정책밖에 안된다"며 "정부 개정안은 지방이 아니라 도심에 위치한 주유소를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려는 취지인데, 도심 직영주유소는 알뜰주유소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주유소업계는 정부가 특정사업자(알뜰주유소)에만 공급 가격 혜택을 주면서 기존 주유소들은 영업에 타격을 입었다고 토로했다. 전국 주유소는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4대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과 자영점, 알뜰주유소로 나뉜다. 통상 직영점과 자영점은 4대 정유사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다.

이와 달리 알뜰주유소는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정유사를 대상으로 최저가 입찰을 실시해 두 곳을 선정, 가장 저렴한 값에 석유제품을 사들여 이를 알뜰 주유소에 공급하는 구조다. 알뜰주유소가 공급받는 유류 가격은 시중 주유소와 비교해 저렴할 수밖에 없다. 현재는 SK에너지와 에쓰오일이 공급사를 맡고 있고, 운영과 관리는 농협과 한국도로공사 등이 맡고 있다.

정유사들도 불만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 공급사로 선정되면 내수 시장 점유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저가 입찰 구조라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알뜰주유소 정책이 주유소간 경쟁 촉발 정책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격경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주유소 운영난이 심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서울 금천구 알뜰 명보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서울 금천구 알뜰 명보 주유소. 사진=연합뉴스

 

"수익성 떨어져"... 공급사 SK에너지·에쓰오일도 떨떠름 

이런 구조로 인해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해마다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알뜰 주유소 도입 전 3~4% 수준이던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8년 1.8%, 2019년 2.5%까지 떨어졌다. 사실상 정부의 알뜰주유소 지원으로 인해 기존 주유소들 이익은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매년 전국적으로 주유소 150여곳이 폐업했지만, 알뜰주유소는 꾸준히 성장해 전체 주유소(1만1154개)의 11.4%인 1268곳으로 늘었다. 알뜰주유소가 늘어난다는 것은 알뜰주유소 장사가 잘된다는 반증이다.

알뜰주유소의 정책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주변 주유소와 경쟁을 통해 리터당 100원 이상 기름값을 낮추는 것이 목표였지만, 알뜰주유소와 일반 자영 주유소와의 보통 휘발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40원 안팎에 불과하다. 석유공사의 주유소 상표별 평균 판매가격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알뜰주유소의 보통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ℓ당 1701.23원으로 전체 정유사 상표 주유소 가격인 1738.25원보다 37.02원 저렴했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자영주유소는 ℓ당 30원만의 손익을 감수한게 아니라 알뜰주유소 폭리까지 감수하고 있어 더 억울하다"며 "주유소 입장에선 물량은 많고, 영업이익율은 한자릿수로 현저히 낮아 ℓ당 10원만 저렴해져도 타격이 크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유소업계 관계자도 "알뜰주유소는 자영주유소가 정유사에서 가져오는 기름값 원가보다 훨씬 싸게 가져오니 (알뜰주유소와)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가격만 계속 낮추면 장기적으로 박리다매하는 대형 주유소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대형주유소들이 다시 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도권에는 정유사 직영주유소가 많아 소비자가 체감하기도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김상환 석유유통협회 팀장은 "알뜰주유소가 대도시권에는 거의 없어 이격거리 제한 완화가 필요한 건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시행 10년이 넘었지만 알뜰주유소 관련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논란이 가장 큰 부분은 정부가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에게만 일반주유소가 못받는 특혜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알뜰주유소 사업자들은 시설개선 비용은 최대 3000만원, 주유소 운영자금은 저리로 대출해주는 등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박동위 주유소협회 차장은 "현재 알뜰주유소는 주유소와 경쟁을 촉진해 기름값을 낮추기보다 알뜰주유소 사업자가 돈 벌 수 있는 정책으로 가고 있다"며 "알뜰주유소 전환하게 되면 로또 맞았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 차원에서 정부에 반대 의견을 전달할 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격 인하에만 몰두하기보다 주유소 시장 발전을 위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형건 강원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유류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 편익은 올라갈 수 있지만, 생산자 편익은 낮아진다"며 "사실상 정부가 특정사업자(알뜰주유소)에만 특혜를 주는 것은 일반 자영 주유소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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