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영업자에 '카드 단체협상권' 부여, 해보긴 했나
상태바
[기자수첩] 자영업자에 '카드 단체협상권' 부여, 해보긴 했나
  • 김흥수 기자
  • 승인 2022.01.15 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년 주기로 수수료 논쟁... 사회적 낭비 초래
협상권 미부여로 영세 카드가맹점 노예화
영세가맹점 위한다며 매년 수조원 혈세 낭비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는 당정협의를 통해 카드 수수료율 적격비용 산정 결과를 발표했다. 금융위원장과 여당 정무위 간사는 영세 자영업자에게 선심이라도 쓰듯 카드수수료 인하 혜택을 받는 가맹점이 96%에 달하고 6900억원에 달하는 카드수수료 경감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카드 수수료 산정 결과를 받아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단체협상권이 빠진 수수료 인하가 못 마땅하다는 반응이다. 수수료 산정 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카드 수수료 문제와 관련해 "주면 주는 대로 먹고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는 노예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자조 섞인 한숨만 가득이다.

신용카드업계는 3년을 주기로 카드 수수료 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소비자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둥, 역마진이 발생하는 둥 호들갑을 떨며 수수료 인하를 가로막는다. 가맹점 또한 매 3년마다 대규모 집회를 기획하고 길거리에 나와 ‘아스팔트 농사’를 짓는다.

수수료 인하 논쟁이 벌어질 때면 카드사와 정부는 이구동성으로 소비자 혜택을 들고 나온다. 거칠게 표현하면 ‘빚을 권하는 비용’이고 부드럽게 표현하면 ‘마케팅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카드사는 소비자 혜택을 앞세우며 매년 수십조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카드사가 쏟아 붓는 마케팅 비용의 대부분은 재벌‧대기업에 편중된다.

소비자가 혜택을 받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재벌‧대기업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비용이다. 주유 할인, 통신비 할인, 대형마트‧백화점 할인, 무이자할부 등등의 혜택이 대부분 재벌‧대기업을 위한 비용 일색으로 매년 수조원에 달한다. 그리고 카드사는 이러한 비용을 카드수수료를 통해 가맹점으로부터 조달한다.

카드사가 지출하는 마케팅 비용은 타 카드사를 견제하기 위한 그들만의 경쟁일 뿐이다. 타 카드사와의 차별화를 꾀하며 시장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매년 수조원의 마케팅비를 쏟아 붓는다. ‘소비자 지갑에서 살아남는 단 한 장의 카드’가 되기 위한 과당경쟁에 따른 비용일 뿐이다. 이러한 비용을 자영업자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 

카드사들이 소비자에게 퍼주는 포인트나 할인 혜택의 중심에는 전월 사용 실적이라는 괴물이 있다. 소비자가 일정액의 전월 사용 실적을 달성해야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여기서 되짚어보자. 전월 사용 실적을 ‘골목상권 전월 사용 실적’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카드사는 소비자 혜택을 무기로 소비자의 소비동선을 재벌‧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 커피숍, 프랜차이즈 식당 등등에 편중시켰다. 이를 바꿔 영세가맹점 단체에게 단체협상권을 부여해 카드사가 대기업에 퍼주는 할인 혜택을 골목상권 상인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을 고민해볼만 하다. 

카드가맹점 단체에게 수수료 협상권을 부여하면 가맹점은 자기결정권을 갖게 되고 이는 소비자들의 소비동선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협상권은 단순하게 수수료율을 산정하는 문제가 아닌 소비자의 소비동선을 움직일 수 있다는 시각을 갖고 들여다 봐야 하는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은 노예 제도를 부정하고 있다. 특히 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 자체가 노예제도의 부정에 따르는 부수적인 조항으로 해석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들어선 이들이 문재인 정부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주체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일이다. 

정부는 카드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제로페이를 들고 나왔다. 제로페이에 연계된 지역화폐는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분도 포함하고 있다. 올해 지역화폐에 쏟아 부어야 하는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1조6000억원이다. 카드사의 과당경쟁과 가맹점단체의 협상권 부재는 혈세낭비와 함께 300만 자영업자들을 카드사의 노예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카드 수수료 재산정 문제가 시끄럽던 2018년 가을, 청와대 자영업비서관과 수수료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가맹점단체 협상권에 대해 물었다. 자영업비서관은 가맹점단체들의 협상력 부재를 이유로 들며 "아직 시기상조이고 국가가 계속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리 속에서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