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외면한 현대重 통상임금 판결... "K조선 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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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외면한 현대重 통상임금 판결... "K조선 위태"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1.12.2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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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사측 손 들어준 항소심 판결 파기
파기심 판결 따라 회사 지급액 최대 7000억
재판부 시각 따라 극과극 판단... 혼란 가중 비판
현대重·기아차 사건, 사측 '신의칙 법리' 좁게 해석
GM대우·쌍용차 사건, '신의칙 법리' 적극 해석
전문가 "한국 조선업 경쟁력은 가성비... 노조, 현실 직시해야"
대법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대법원 전경. 사진=시장경제DB

현대중공업 근로자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낸지 9년 만에 원고인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재계 전체가 공포에 떨고 있다. 현대중공업 근로자가 9년 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지난 16일 법원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비슷한 시기 나온 GM대우 통상임금 소송에선 사측이 승소해 현장 혼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현대중공업 근로자 10명이 이 회사 소속 전체 근로자를 대표해 한국조선해양(변경 전 현대중공업)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의 쟁점은 상여금의 통상임금 인정 여부였다.

이번 소송은 2012년 현대중공업 일부 근로자들이 상여금의 통상임금 산입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통상임금은 회사가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법정수당과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된다. 만약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본값이 늘어나 그만큼 회사의 부담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근로자들은 그해 12월 회사를 상대로 임금 청구 소송을 냈다. 회사가 짝수월마다 지급한 정기상여금 600%와 연말 상여금 100%, 설과 추석에 각각 지급한 상여금 50% 등 총 800%의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줄 것과 소 제기 시점 기준 직전 3년치 임금 소급분의 지급을 구했다. 

사측은 근로자들의 청구에 대해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 청구 기각을 요구했다. '근로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이면 기업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거나 그 청구의 인용이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청구를 기각 내지 제한할 수 있다'는 판례를 근거로 한 항변이다.

파기환송심이 근로자 측 요구를 전부 인용한다면, 회사 측이 지급해야 할 금액은 최대 7000억원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변수'된 '신의칙' 법리... 심급따라 뚜렷한 시각차 

이 사건 1심은 2015년 2월 나왔다. 재판부는 근로자 측 청구를 전부 인용해, 상여금 800% 전부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다만 3년치 임금 소급분에 대해서는 최소기준인 근로기준법을 적용토록 해 사측의 부담을 일부 덜어줬다.

16년 1월 선고된 항소심은 다른 입장을 취했다. 재판부는 원고 청구 중 '명절 상여금'의 고정성을 인정치 않아, 통상임금 산입 상여금 중 100%를 감액했다. 3년치 소급 임금 청구에 대해서는, 사측이 앞세운 신의칙 법리를 채택해 사측의 지급 의무를 부정했다. 

대법원이 원심(항소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저울추는 다시 근로자측으로 기울었다. 파기환송심은 상고심의 판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근로자 측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상고심은 항소심과 달리 신의칙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기업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경영상태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거나 향후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선 안 된다'는 것이 상고심 판시 이유였다. 

앞서 대법원은 기아차 근로자들이 낸 통상임금 청구 사건에서도 같은 법리를 인용해, 회사 측 항변을 배척했다. 

반면 사측의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여 근로자들의 청구를 제한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힌국GM과 쌍용차 근로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청구 사건에서 '기업의 중대한 경영한 어려움'을 인정해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사측의 경영 상태를 고려하면 노동자들의 요구는 민법 제2조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설시했다. 

산업계와 재계는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상고심 판결에 큰 우려를 나타냈다.
 

대법, 사측 '신의칙 법리' 좁게 해석... 재계 "현실에 맞지 않는 판결"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법원 판결 직후 즉각 입장문을 냈다. 연합회는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결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기업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현대중공업은 올 3분기까지 누적 3200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신의성실 원칙을 적용하지 않아 통상임금 관련 소모적 논쟁과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대법원은 사용자가 경영 상태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기존 신의칙 판단 기준을 더욱 좁게 해석하며 부정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대법원은 해외의 경제상황 변화와 이에 따른 영향을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오늘날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코로나 등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변화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조선업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을 경고했다. 연세대 신현한 교수(경영학과)는 "한국 조선업은 일본, 중국 사이에서 매우 특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보다는 저렴하면서 질 좋은 배를 만들 수 있고, 중국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하자 없는 안전한 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바로 K조선의 경쟁력"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면서 "고객(선사) 입장에서 한국은 가성비 좋은 상품(배)을 판매하는 곳이다. 문제는 통상임금처럼 수천억원 대 인건비 상승요인이 발생하면 '원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중국 조선업에 비해 가격이 오르면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우위를 점했던 가성비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라며, "K조선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노조와 우리 모두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조선해양의 올해 2분기 영업손실은 8973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에 대비 큰 폭의 적자로 돌아섰다.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 자회사가 지난 4~6월 3개월 동안 수천억원 대 적자를 기록한 여파가 컸다. 적자 주요 원인은 철판 가격 상승이다. K조선의 경우 저렴하면서 질 좋은 '가성비'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원재료값이나 인건비 상승에 민감하다. 조금만 비용이 올라도 쉽게 적자로 전환되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판결문을 신중하게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사측 관계자는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만, 당사 입장과 차이가 있어 판결문을 받으면 면밀히 검토해 파기환송심에서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재상고 여부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당사 부담 금액 역시 파기환송심 재판 결과를 봐야 정확한 산정이 가능하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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