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pick] 정부 무대책 10년... '삼성 요소 공장' 철수가 뼈아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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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정부 무대책 10년... '삼성 요소 공장' 철수가 뼈아픈 이유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1.11.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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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창업주 이병철, 한국비료서 국내 첫 생산
정부 무관심 속 중국産에 밀려 기업들 사업 철수
삼성정밀화학, 적자 감수하며 2011년까지 생산
'요소수' 생산 시작도 삼성이 먼저... '유록스' 출시
롯데정밀화학으로 간판 바꿔단 이후에도 생산 계속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중국의 수출제한 조치로 촉발된 요소수 부족 사태가 국내 기업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계기로 진정국면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과 롯데 화학계열사 등은 미주와 유럽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 동원해 중국이 아닌 제3국에서 요소와 요소수를 들여오는 성과를 올렸다. 뒷북 대응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정부도 베트남 등 우회로를 통한 요소수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다.   

경유차량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수는 요소가 없으면 제조가 불가능하다. 갑작스런 요소수 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국내 기업들이 요소 생산에 나서지 않는 이유에 관심이 집중됐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국내 기업이 요소 생산을 멀리하는 까닭은 수익성 때문이다. 요소수 핵심 원료인 요소는 과거 국내에서도 생산됐다. 

회의를 주재하는 故 이병철 선대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회의를 주재하는 故 이병철 선대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지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요소 산업의 역사는 1960년대로 올라간다. 국내 최초로 요소를 생산한 기업은 '한국비료'로 1964년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설립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자서전인 '호암자전'에 "비료용 요소의 자급자족이야말로 농촌의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라고 썼을 정도로 요소 생산에 애정을 쏟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삼성이 요소 공장을 지으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요소 생산은 60년대 한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였다. 당시 최대 국정과제는 '쌀의 자급자족'이었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농업생산성의 획기적 개선이 절실했다. 농업생산성 강화의 전제조건이 바로 요소 비료의 안정적 공급이었다. 대통령까지 나서 삼성의 요소 생산 공장 건설을 염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최초로 요소를 생산한 한국비료는 삼성정밀화학의 모태가 됐고, 이후 삼성이 화학사업을 정리하면서 롯데의 품으로 넘어갔다. 롯데정밀화학의 요수수 생산은 이처럼 긴 역사를 갖고 있다.

故이병철 삼선대 회장의 지시로 울산에 최초로 지은 한국비료공업의 요소·요소비료 공장 전경. 사진 제공 = 롯데정밀화학
故이병철 삼선대 회장의 지시로 울산에 최초로 지은 한국비료공업의 요소·요소비료 공장 전경. 사진 제공 = 롯데정밀화학

 

값싼 중국産에 밀린 한국産 '요소'... 2000년대 들어서며 공장 속속 중단

1990년대까지 국내 중화학 산업을 대표하던 요소 생산라인은 2000년대 들어 가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중앙정부의 보조금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의 물량공세가 원인이 됐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정책적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원가 경쟁력에서 크게 밀린 국내 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손을 떼기 시작했다. 

삼성정밀화학에 이어 요소 연산 생산능력 국내 2위였던 남해화학은 2002년 요소사업에서 철수했다. 경제성을 상실했다고 판단한 남해화학은 이듬해 요소 생산라인을 해외에 매각했다. 삼성정밀화학은 그 이후에도 약 10년간 요소 생산을 유지했다. 삼성은 '요소'가 한국 경제사에서 갖는 상징성을 잘 알고 있었다. 2003년 이후 매년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삼성은 2011년까지 요소를 생산했다. 삼성의 철수로 국내 대기업은 더 이상 요소를 생산하지 않았다. 필요한 요소는 중국에서 전량 수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내 첫 요소수 생산도 삼성이 시작했다는 점이다.

요소사업을 접은 삼성정밀화학은 새 사업을 모색하던 중 요소수 시장에 눈을 돌렸다. 요소 수출을 담당하던 영업팀 직원은 "유럽연합은 1992년부터 자동차 배기가스를 규제하고 있어 요소수가 필수다. 요소수 시장이 커지니 해보자"고 제안했다. 경영진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삼성은 요소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요소수가 현재 롯데정밀화학이 생산하는 '유록스'다. 유록스는 13년 연속 국내 판매 1위(환경부 집계 자료 기준)를 이어오고 있다.

전북 익산시가 시중가 보다 저렴하게 요소수를 판매하자 시민들이 요소수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선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익산시가 준비한 요소수가 금새 동이 나자 요소수를 구매하지 못한 시민들의 항의도 잇따르는 등 요소수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KBS뉴스 캡처
전북 익산시가 시중가 보다 저렴하게 요소수를 판매하자 시민들이 요소수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선채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익산시가 준비한 요소수가 금새 동이 나자 요소수를 구매하지 못한 시민들의 항의도 잇따르는 등 요소수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사진=KBS뉴스화면 캡처

[요소와 요소수]

요소는 암모니아에 이산화탄소를 넣어 제조한다. 생산 기술 자체가 어렵진 않다. 문제는 석탄이나 천연가스에서 암모니아를 뽑아내야 하기 때문에 산유국이나 석탄매장량이 풍부한 국가가 원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갖는다. 요소는 대표적인 로엔드(low-end, 저부가) 제품이다. 

요소에 증류수를 섞어 만든 것이 요소수다. 요소수는 미세먼지 주범인 질소산화물을 질소와 물로 분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요소수는 크게 차량용과 선박용, 산업용, 농업용으로 분류되며 요소함량에 따라 결정된다. 차량용의 경우 요소수를 제때 보충하지 않으면 시동 자체가 걸리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6'가 강화된 2015년 이후 모든 디젤차는 의무적으로 배출가스 저감장치(SCR)를 설치해야 한다. 엔진에서 타고 남은 가스가 배관을 통해 나오는데, 배기가스 저감장치에 요소수를 뿌려주면 화학반응을 통해 질소산화물이 물과 질소로 분리된다. 요소수는 정유·철강업계 산업 설비나 폐기물 소각장에서 미세먼지를 줄이는데도 쓰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요소수 원료가 되는 요소 최대 생산국이다. 올해 1~9월 누계 기준으로 중국 요소 수출국 1위는 인도, 2위는 한국이다. 한국은 올해 9월까지 56만4000t의 중국 요소를 수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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