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된 '주가조작' 주장을 또... 檢, 이재용 공판서 무리수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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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된 '주가조작' 주장을 또... 檢, 이재용 공판서 무리수 되풀이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10.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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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17차 공판
'자사주 매입 담당' 前 삼성증권 직원 증인 출석
檢 "물산-모직 합병 때 '자사주 매입', 주가 조작"
증인 "자사주 매입만으로 주가 조작 불가능"
"공매도·주식매수청구권 대응 위해 주가 부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부당 경영승계 의혹’을 다투고 있는 검찰과 변호인단이 이번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뤄진 '자사주 매입'의 목적을 두고 공방을 이어갔다. 검찰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삼성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자사주 매입으로 시세를 조종했다는 검찰 주장은 상식밖이라며 검찰 주장은 사실관계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은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자사주 매입은 '공매도 세력'에 의한 투매 등 주가의 비정상적 급락을 방지하기 위해 법령이 기업에 부여한 최소한의 권리이자 주주친화적 정책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 등 혐의 사건 등 이 사건 이전 심리가 종결된 선행 공판에서도 자사주 매입을 시세조종의 수단으로 인식한 검찰 주장은 재판부에 의해 배척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이 무리한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재판장 박정제·주심 박사랑)는 30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외부감사법 위반,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에 대한 17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증인으로는 삼성증권 직원 강 모씨가 출석했다. 강씨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증권 홀세일본부에서 국내 법인사업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해당 부서는 주로 기관들로부터 위탁을 받아 주식매매주문 업무를 수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형태로 운영된다. 

검찰은 2015년 5월 옛 제일모직, 삼성물산 이사회가 각각 합병을 의결한 직후, 삼성 미래전략실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 유지를 위해 인위적 주가관리의 일환으로 자사주 매입을 검토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한 주주가 소유 주식의 매수를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한꺼번에 몰리면 기업의 재무부담은 가중된다. 합병이 성사되도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자사주 매입은 합병 추진 기업의 주가가 해지펀드의 적대적 주식 매입, 공매도 세력에 의한 투매 등으로 급락할 위험이 예견될 때, '주가 방어'를 위해 기업이 행사할 수 있는 적법한 권리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 리스크가 발생한 것은 2015년 6월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자신들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공시하면서 구체화됐다. 엘리엇은 합병 이전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공시 없이 삼성물산 지분 4.95%를 몰래 매입하고, 합병 발표 이후 2.17%를 추가로 취득해 보유 지분 비율을 7.12%까지 늘렸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에 비해 삼성물산 가치가 저평가되는 등 합병조건이 공정하지 않으며, 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시장을 흔들었다. 엘리엇은 홍보대행사를 선임해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국내 언론에 흘렸다. 엘리엇의 시장 선동은 효과를 나타냈다. 일부 주주들은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해 합병에 반대 의사를 밝히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삼성의 자사주 매입은 이런 과정에서 추진됐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증인 "합병 앞둔 시점, 공매도 세력 대응 위해 자사주 매입"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강씨에게 자사주 매입 목적이 주가의 인위적 조작에 있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2015년 7월 강 씨가 작성한 ‘자사주 매입안’ 문건을 제시했다. 

이 문건에는 주식매수청구가격 이상의 주가 유지를 위해 10일 동안 자사주 70%를 매입하고, 상황에 따라서 그 물량을 최대 90%까지 늘리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강씨는 “2014년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과정에서도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자사주 물량 소진 이후 (주가가) 급락한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공매도 세력에 의한 주가 하락 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증인의 답변은 팩트와 일치한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 중 강씨가 2015년 6월 작성한 ‘제일모직 대차트렌드’ 문건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대차잔고'는 꾸준히 늘고 있었다. 대차잔고는 공매도 투자를 위해 금융투자사 등으로부터 빌린 주식의 총 물량을 말한다. 대차잔고 증가는 향후 주가의 하락을 예고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이다. 

강 씨는 “엘리엇의 이슈 제기로 제일모직에 대한 대차잔고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 안정'을 위해서는 제일모직 주가 부양 전략이 필요했다”며 “일반적인 주가 부양 전략으로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상향, 적극적인 기업 IR 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당시 삼성물산은 대차잔고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공매도 세력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어서 주가 안정화가 쉽지 않았다”며 “삼성물산 주가를 억지로 부양하기 보다는 제일모직의 주가를 부양하자는 판단을 했다”고 증언했다.
 

'주가 부양'을 '주가 조작'으로 오판한 검찰의 무리수

증인의 설명은 검찰이 사실관계를 오판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검찰은 강씨 작성 문건 등에서 나오는 '주가 부양'이란 표현을 '주가 조작'과 동의어로 봤다. 주가 하락국면에서 법인과 그 소속 임직원들이 주식을 매입하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다. 강씨의 증언처럼 자사주 매입은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기업이 통상적으로 행사하는 방어권이다. 이같은 행위를 주가 조작 내지 시세조종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 조작의 방편이라면 배당금 증액이나 기업의 실적 홍보도 금지돼야 한다. 

강씨의 증언을 보면 15년 당시 물산과 모직의 자사주 매입은 공매도 물량을 소화하기에도 벅찼다. 이런 상황에서 주가의 인위적 조작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다음은 이 부분 강씨의 증언 중 일부. 

"매입 물량이 주가를 변동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자사주 매입은 '주가 부양'에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제한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증인 "자사주 매입은 주가 안정이 목적... 인위적 조작 불가능"

강씨는 “자사주 매입 자체가 주가 방어의 목적도 있지만, '배당'과도 효과가 같아서 주주친화적 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주가가 하락하거나 회사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경우, 주가 하락 자체가 회사 신뢰를 떨어뜨리는 경우 등에 대한 대응으로 자사주 매입을 실시한다”고 했다. 

그는 '자사주 매입이 시장 흐름에 역행할 수 있느냐'는 변호인단 질문에 “제일모직이나 삼성물산은 대형 종목이고, 공매도 등 여러 상황에 의해 주가 흐름을 임의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어 “(검찰은) 고가 주문을 부정적으로 얘기하시는 것 같은데, 자사주 매입에서 고가 주문은 일반적이고, 시장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매수호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조작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물음에 '주식시장 시스템상 불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다음은 이 부분 질의 응답 발췌. 

변호인 : 자사주 매입을 통해 인위적 주가 조작이 가능한가?

증인 : 한번 호가를 제시하면 취소할 수 없고, 해당 호가가 시장에 전부 노출된다. 최고 호가에 대해선 규정상 제한이 있고 시스템 구조상 해당 날짜의 최고가 이상으로 주문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인위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변호인 :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 중 자사주 매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조항이 있나?

증인 :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4년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당시에도 자사주 매입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제재받거나 처벌받은 경우는 없었다. 

변호인: 자사주 매입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증인 : 자사주 매입은 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줘서 주가 안정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수급에 안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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