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본사에 직고용' 법원도 인정?... 민노총의 법리 왜곡
상태바
'현대제철 본사에 직고용' 법원도 인정?... 민노총의 법리 왜곡
  • 신준혁 기자
  • 승인 2021.09.1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팩트파인딩] '기판력(旣判力) 적용' 주장 진위는
고용부 '직접고용 시정지시' 놓고 勞使 해석 갈려
현대제철, 인권위·고용부 지시 수용해 자사 설립
민노총 "현대ITC는 자회사, 본사가 직고용해야"
판례 "노동부 시정지시, 구속력 없는 권고"
순천공장 소송, 대법 계류 중.. 기판력 적용 불가
당진은 순천과 현안 달라.. 기판력 인정 범위도 제한적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이 통제센터 인근에 천막을 설치한 모습. 사진=블라인드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노조원들이 통제센터 인근에 천막을 설치한 모습. 사진=블라인드

현대제철이 100% 자본을 출자해 설립한 현대ITC 등 자회사가 출범했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3주째 충남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무단 점거한 채 사측과 대치하고 있다. 노조는 '현대제철 본사 직고용'을 거듭 요구하면서 부분파업과 농성을 풀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 회사 순천공장 협력업체 직원들이 낸 소송의 '기판력'을 언급하면서, '법원도 본사 직고용을 판결했다'는 취지의 논리를 펴고 있다. '기판력(materielle Rechtskraft, 旣判力)'이란 한번 판결이 선고 확정되면 그 판단 내용에 대해 어긋나는 주장과 판결을 할 수 없게 하는 소송법적인 효력을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4월 현대제철에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협력사 근로자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렸다. 근로감독 결과 협력업체에 대한 파견법 위반 정황을 확인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사업주와 협력사 근로자 사이에서 '직접고용 주체'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는 사실이다. 

현대제철은 시정지시를 수용해 자회사를 설립, 협력사 직원 7000여명을 고용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노조는 '본사 직고용'과 고용확약, 전배(전환배치)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법조계는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지시와 관련 '원청이 반드시 직접 고용해야 하는 강제사항은 아니다'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협력사 고용 안정과 처우개선이 '직고용 시정지시'의 본래 목적이므로, 본사 직고용은 강행규정이 아니라 이행 권고 사항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현대제철 측의 '자회사 직고용' 방침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정부 역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종사자들의 '자회사 직고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기업의 채용은 파견, 용역 근로자 조직 규모와 업무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사협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본사(공단 혹은 공사) 직접고용, 자회사 직고용, 사회적 기업 별도 법인 설립 등 다양한 형태로 결정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는 파리바게트 제빵기사들의 자회사 직고용이다. 노동부는 2017년 9월 가맹본부가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파리바게뜨 가맹본부와 민주노총·한국노총은 2018년 파리바게트 자회사 해피파트너즈를 설립해 제빵기사 5300여명을 정규직 직원으로 고용하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법원은 노동부의 '직접고용 시정지시'의 법적 성격을 '행정청의 구속력 있는 명령이 아닌 권고사항으로, 사업주에게 시정 기회를 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행정법원은 2017년 파리바게트가 제기한 '시정지시 처분에 대한 효력 정지 행정소송'에 대해 "시정지시는 항고소송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정부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채용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고양시는 올해 5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덕양구청 노점단속 용역노동자 7명(현장직 6명, 사무직 1명)에 대해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받았다.

고양시청은 이들을 공무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형태로 직접고용했다. 시간선택제 임기제는 한시적 사업 수행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일시적으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당진제철소 앞에 걸린 플랜카드. 사진=시장경제DB
당진제철소 앞에 걸린 플랜카드. 사진=시장경제DB

 

"순천 공장처럼 해달라"... 기판력 해석 오류 혹은 노조의 언플

노동계는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근로자 불법파견이 인정된 경우 유사한 형태로 근무하는 모든 근로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자신들 주장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각 제철소에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이전 재판과 동일한 판결이 선고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전남 순천공장 근로자 161명은 2011년 7월 현대제철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심에서 임금청구소송 청구금액의 40%에 해당하는 1인당 6000여만원의 임금 차액분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계류 중이다. 

당진제철소 근로자 3138명은 2016년 1월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을 냈지만 1심 공판은 열리지 않고 있다. 이들은 '순천 판결'을 예로 들면서 현대제철의 본사 직고용을 압박하고 있다. 순천 판결의 기판력이 당진 사건에도 미친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이다. 

그러나 이는 ‘기판력’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비롯한 노조의 오판 내지 사실관계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기판력은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에서 각각 그 효력이 상이하다. 순천 판결과 당진 사건은 당사자지위 확인과 임금의 차액 지급을 구한 전형적 민사소송이다. 민사사건에서 기판력을 가지는 판결은 확정된 본안(本案) 종국판결이거나 실체적 권리관계의 당부를 다툰 명령 혹은 결정의 종국적 판단이다. 

알기 쉽게 풀이하면 ‘판결’, 서면심리만으로 종결되지 않은 가처분 신청 사건의 ‘결정’ 등이 기판력을 가지는 대표적 사건이다.

판결 혹은 명령이나 결정이 기판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정’돼야 한다. 순천 사건은 본안에 대한 종국판결은 맞지만 대법원 계류 중이므로 확정되지 않았다. 즉 순천사건은 기판력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순천 판결을 예로 들며 기판력 운운하는 노조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언론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

민사사건 기판력의 범위에 관한 통설적 견해인 ‘표준시설’을 현대제철 이슈에 적용하면, 순천 사건이 원심 그대로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기판력이 온전히 당진 사건에 미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통설이 인정하는 기판력의 범위는 종국판결의 경우 ‘사실심 변론종결시’이다. 즉 순천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 당시까지 확인된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기판력이 미친다는 뜻이다. 그 이후 새로 벌어진 사실이나 변동된 사실에 대해서는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다. 당진 사건의 진행경과가 순천 사건의 그것과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고 할 수 없고, 개별 현안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천 사건이 원심 법원의 판결 그대로 확정되더라도, 당진 사건에 미치는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