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증거인멸 재판부 "檢, 투망식으로 공소장 늘려... 그만하라"
상태바
삼바 증거인멸 재판부 "檢, 투망식으로 공소장 늘려... 그만하라"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9.07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의혹 항소심 쟁점 정리
檢, 공소장 변경 신청하며 일부 공소사실 추가
재판장 "檢, 공소장에 없는 얘기 말라" 공개 주의
은닉파일 2600만개라는 검찰.... 변호인단 "검증 전혀 안 돼"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항소심 사건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사실 추가에 경고의 뜻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없는 얘기는 하지 말라"면서 "자꾸 투망식으로 하는 건 아닌지, 이젠 스톱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찰 측의 자제를 촉구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윤승은 김대헌 하태한 부장판사)는 2일 오후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의혹 항소심 사건 속행 공판을 열었다. 재판부는 지난 공판에서 지적한 공소장 내용을 검찰이 보완한데 대해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앞서 검찰은 삼성바이오와 관계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전자 소속 임직원들의 지위나 역할이 각각 다른데도, 이들을 모두 증거인멸·은닉 교사범인 동시에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고 공소장을 작성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이 점을 문제삼지 않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 공소장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며 법리 적용의 모호함을 강하게 지적했다. 앞선 공판에서 재판부는 "난삽하다"는 표현까지 쓰면서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거듭 촉구했다.

재판부는 “교사범과 공범의 관계를 공소장 변경 시 명확히 가려줘야 한다”며 “교사를 안했는데 교사했다고 하거나, 지시를 받아 실행한 사람에게 교사 혐의를 적용했다면 재판부로서는 무죄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삼성바이오 소속 임원 등이 2018년 5월 5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에 모여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증거인멸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의에서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사내 PC 전산자료 등에 대한 삭제가 결정됐고, 부하직원에게 순차 지시하는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했다는 것이 검찰 공소사실 요지이다. 

재판부의 지적을 쉽게 풀이하면, 어린이날 회의 참석자들의 역할, 참여 정도 등에 따라 죄책이 다른 만큼 적용 법조와 법리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공판에 앞서 검찰은 재판부 지적을 받아들여 각 피고인들의 혐의를 구분, 공소장 변경 허가를 신청했다.  

재판부는 “검찰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 건을 살펴봤는데, 피고인들의 교사관계와 순차 공모관계라고 혼재됐던 점을 깔끔히 정리해줬다”며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이 되든, 안 되든 (내용이 정리됐다는 점에서) 재판부 입장에선 긍정적”이라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검찰이 예정에도 없이 공소사실을 추가한 사실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검찰은 서울 양재동 행정법원 재판부가 심리 중인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결 취소 청구 소송'과 관련돼 전문심리위원이 낸 의견서를 인용해 일부 공소사실을 새로 넣었다. 

제판부는 검찰이 공소장 변경 허가를 신청하면서 기소도 안 된 내용을 추가했다며, "공소장에 없는 얘긴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다음은 이 부분 재판장과 검찰 사이 법정 발언 발췌.  

재판부: '타인의 징계사건'을 검찰이 공소사실에 추가하면서 (삼바 분식회계 의결 취소 청구소송에서 재판부에 제출된) 전문심리위원 의견서를 냈는데, 이 사건까지 연계하는 건가?

검사: 그런 것들을 다 포함하는 겁니다. 

재판부 : 공소장에 안 쓰셨다. 공소장에 없는 얘기 하지 말라. 

검사: 필요하다면 공소장을 다듬거나 의견서를 내겠다.

재판부: 자꾸 투망식으로 하는 건 아닌지... 조금씩 공소장이 늘고 있다. 이제는 스톱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확실한 것 이외에 굳이 불확실한 것을 넣어서 흔들 필요는 없다. 

'타인의 징계사건'이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를 상대로 제기한 '분식회계 의결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말한다.

동 사건 전문심리위원이 재판부에 낸 의견서는 자의적·편향적으로 작성됐다는 점, 단정적 결론으로 법이 허용하는 전문심리위원의 ‘의견’ 범위를 넘어섰다는 점, 18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바 분식을 의결할 때도 인용치 않은 내용을 의견서에 포함시켰다는 점 등에서 신뢰도에 의문을 낳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은닉파일 2600만개라던 檢...
변호인단 "혐의 관련 파일 확인해보자"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놓고도 검찰과 변호인단이 첨예하게 맞섰다. 검찰은 삼바 임직원이 삭제 혹은 은닉한 전산파일이 2600만개에 이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변호인단은 해당 파일 가운데 상당수는 '본죄'(분식회계 의혹)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시스템 파일과 같이 사실상 의미가 없는 파일이 다수 섞여 있다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은 “사건과 관련 없는 문건이 많아 열람등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취지는 (피고인들이) 자료를 지우는 과정에서 확정적인 범위 내에서 지운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불필요한 자료를 정리한 차원에 불과했고, 실제로도 의미없는 파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수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그룹 지시가 내려와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자료를 일일이 보면서 지울 수 있겠느냐”며 “무관한 자료가 상당수 있다는 것은 급하게 지우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변호인단은 “1심에서부터 검찰은 ‘서버 파일 수천만개를 인멸한 희대의 사건’이라고 강조해왔다”며 “그렇다면 수천만건 파일 중 회계와 관련된 것이 몇 건인지 확인해 보자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열람등사가 이뤄지면 순조롭게 양형심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과정에서 협조가 원만하지 않은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는 본안 사건 증거목록 중에서 압수한 파일이 무엇인지 표시해 제출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고 정리했다. 

재판부는 “사무실에 있던 서버가 다른 곳으로 옮겨져 18테라의 자료가 은닉됐다는 사실 자체는 바뀔 수 없다”면서도 “검사가 은닉된 파일이 2600만개라고 공소사실을 구성했지만 관련 증거를 살펴보니 12개 폴더가 열린 정도이고, 그 중에서도 증거목록 정도로 축소됐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진행 경과를 양형에 반영하겠지만, 본안사건에 영향이나 방해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최종적으로 증거가 몇 개라고 양형판단에 쓰긴 어렵다”며 “자료 중 무관한 파일이 많다는 것만 가지고 양형을 결정할 수 없는 만큼,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형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 다음 공판기일은 10월 26일 열릴 예정이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