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으로 벌금형 선고? 이해 안 가"... 전문가 3인이 본 DL 이해욱 1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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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으로 벌금형 선고? 이해 안 가"... 전문가 3인이 본 DL 이해욱 1심
  • 정규호 기자
  • 승인 2021.07.2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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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pick] 국내 첫 '총수 사익편취 사건' 재판 분석
재판부, 검찰 공소사실 인용 '벌금 2억' 선고
'지시할 위치에 있었다'고 '지시한 것'으로 판단
전문가 "민사법에서나 인정되는 '추정'에 해당"
"핵심 전제 사실 인정 과정서도 판단 불명확"
"재판부, 여론 의식... 유죄 확신 없지만 벌금형 선택"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편집자 주> 계열사 보유 호텔 상표권을 총수 일가가 설립한 법인에 넘기도록 한 뒤, 다시 다른 계열사를 동원해 당해 법인과 상표권 사용에 따른 수수료 등 약정을 체결토록 하고, 이를 통해 수십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공정거래법상 총수 사익편취)로 기소된 이해욱 DL(옛 대림그룹) 회장 1심 사건이 재판부의 벌금형 선고로 마무리됐습니다.

이 사건은 공정거래법상 ‘총수 사익편취 금지’ 규정의 첫 적용 사례로 재계는 물론이고 법조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선고 직후 재판부가 밝힌 판시이유와 관련돼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문을 표시하는 견해가 나왔습니다. 일부 판시이유의 모순을 지적하는 의견과 함께 구성요건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등 범죄의 증명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는 비판적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시장경제>는 이 사건 공정위 조사부터 고발, 기소, 증인신문, 결심, 선고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현장 취재했습니다. 본지는 전문가 3인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법조계 안팎에서 제기되는 의문의 당부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는 학계 1인, 변호사 2인으로 적어도 20년 이상 공정거래 이슈와 기업 형사 사건을 다룬 경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공정거래법 사건에 있어서 국내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법조인도 포함돼 있습니다. 
 

☞ 대림, '글래드 호텔' 사업 진행 개요

건설과 정밀화학 분야를 주업종으로 성장한 대림산업은 2010년대 초반 그룹의 미래먹거리로 호텔사업 추진을 검토했다. 이 회장은 2010년 7월 호텔사업을 전담할 ‘APD(Asia Plus Development)’라는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다(설립 당시 지분 이 회장 측이 지분 100% 보유, 이후 대림 계열사에 전부 무상양도). 
워커힐, 반얀트리 등 국내외 메이저 호텔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엘리트 호텔리어들이 APD 창설 멤버로 합류했다.

APD는 2012년 이후 대림산업의 호텔브랜드 ‘글래드(GLAD)’를 개발하고 상표 등록을 마쳤다. 대림산업은 2014년 이후 오픈한 자사 계열 호텔에 글래드 브랜드를 적용, 사업을 시작했다. 글래드 호텔의 운영은 대림산업이 100% 출연해 설립한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앤리조트)이 맡았다(이상 회사 측 설명).

대림 측은 오라관광을 통해 APD와 브래드 사용권 계약 등을 체결하고 거래관계를 유지했다. 위 계약에 따라 오라관광은 APD에 브랜드 사용 수수료를 지급했다. 2018년 7월 이 회장은 자신과 일가가 보유한 APD 지분 100%를 오라관광에 무상양도했다.

사건을 바라보는 공정위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호탤 브랜드 '글래드'는 대림이 개발한 뒤 그 상표권을 이 회장 일가가 급조한 신설법인 APD에 넘겼으며, 매년 수억원 이상의 금원을 상표권 사용료, 컨설팅료 등의 명목으로 동 법인에 부당 지급한 것으로 봤다. 공정위는 APD를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판단했다.

공정위는 대림 측이 보유한 상표권을 APD에 넘기고, 매년 수억원 이상의 금원을 동 법인에 지급하는 과정에 이해욱 회장의 직접적인 지시 내지는 관여가 있었다며, 이 회장과 대림산업 법인을 공정거래법 위반(총수 사익편취)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공정위의 고발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인용해, 이 회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부, 검찰-공정위 시각 그대로 인용
변호인단 항변 대부분 배척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김준혁 판사는 27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사익편취)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DL(구 대림산업)은 벌금 5000만원, 글래드호텔앤리조트(구 오라관광)는 벌금 30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 회장에게 징역 1년 6개월, 법인 두 곳에 대해서는 벌금 1억원을 각각 구형했다.

1심 재판부의 기본 인식은 검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문제의 호텔 브랜드 '글래드' 개발 주체를 대림으로 본 검찰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용했다. 호텔 브랜드 개발 주체는 APD라는 변호인단의 항변은 배척됐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핵심 쟁점인 '이 회장의 지시 내지 관여' 여부와 관련돼,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 회장에게 총수 사익편취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가 계열사와 APD 사이 수수료 약정 등 주요 현안을 직접 '지시'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공정거래법 23조의2 4항). 지난해 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진행된 이 사건 1심에 출석한 증인은 모두 8명이다. 공정위 조사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증인은 이 회장의 지시 내지 관여 사실을 묻는 질문에 "그런 사실은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사업추진 경과와 관련자 진술, 피고 검찰 진술 등을 종합하면 대림산업 사업계획과 오라관광 거래행위를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이 인정된다"며 "이와 다른 변호인단의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림 측이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등 APD에 부당한 사업기회를 제공했으며, 그 결과 동 법인을 소유한 이 회장 측에 부당이익이 귀속됐다는 검찰 논리도 재판부 판시이유에 그대로 담겼다. 

다만 재판부의 양형 판단은 위 유죄 판시이유와 결이 달랐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현실적으로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 ▲자신과 아들이 보유한 APD 지분 전부를 계열사에 무상양도해 위법상태를 해소한 점 ▲계열사 두 곳이 공정위 부과 과징금을 모두 납부한 점 등을 열거하면서 실형이 아닌 벌금형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대림 글래드 호텔 YTN 뉴스 화면 캡처.
사진=대림 글래드 호텔 YTN 뉴스 화면 캡처.

 

이 회장 직접 '지시'했나?
전문가들 "재판부 판단 모호"

재판부 판시이유를 살펴보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검찰과 공정위의 그것과 거의 같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재판부 판시이유 중 이 회장의 지시 내지 관여 혐의를 인정한 부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기업 형사 사건을 다수 변론한 A변호사는 '업무를 지시할 위치에 있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상 범죄구성요건을 인정한 재판부 판단에 의문을 나타냈다. 

다음은 이 부분 A변호사의 설명.

“이해욱 회장이 오라관광과 APD 간 거래를 지시하였는지 여부는 형사소송법상 엄격한 증명이 이뤄져야 하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실입니다.

이 회장의 지시 여부에 관한 법정 증언 등 직접 증거가 제시되지 못한 상황에서 법원이 ‘그러한 지시를 할 지위에 있었다’라는 사실만으로 ‘지시를 하였다’는 구성요건 사실을 인정했다면, 이는 민사법에서나 인정되는 ‘추정’에 해당된다 할 것이고, ‘엄격 증명의 원칙’에 반할 것입니다.”

사익편취 혐의 구성요건 중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라는(위 같은 법 23조의2 1항) 대목과 관련된 재판부 판단에 대해서도 A변호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회장과 아들이 APD로부터 배당을 받은 사실이 없고, 그 소유 주식을 오라관광에 무상으로 양도했다면 ‘이회장에게 귀속됐다고 볼 이익’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글래드' 상표권 개발 주체를 대림으로 보는 검찰 시각에서 보면, APD에 동 권리를 넘긴 행위 자체를 '부당한 이익의 귀속'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 점은 공판과정에서 명확한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공정위 조사와 검찰 수사기록, 관련자 진술과 이메일 등을 종합할 때 '글래드' 상표권은 대림이 먼저 만든 뒤, 이를 부당하게 APD에 넘긴 것으로 봤다. 반면 이 점에 대한 변호인단의 입장은 분명하다. 글래드 상표권은 APD가 직접 개발했으며, 검찰이 반대 증거로 제시한 협력사 직원의 이메일 등은 증명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변론의 전체 취지이다.
 

"APD 개발 주체 관련 재판부 판단, 분명치 않아" 

공정거래법 전문가인 B변호사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밝힌 판시이유 설명 외 서면 기타 다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어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엄격한 범죄의 증명을 요구하는 구성요건 해석을 넓게 확장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B변호사는 이런 판단의 근거로 '이 회장 혐의를 인정한 판시이유가 구체적 증거보다는 추정 혹은 심증에 기댄 것처럼 보인다'는 점, '핵심 전제조건으로 보이는 APD 개발 주체와 관련된 재판부 판단이 분명치 않다는 점'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부분은 항소심 심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의 전체 흐름을 좌우할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무죄 판결시 불거질 수 있는 '재벌 봐주기' 등 여론 의식한 듯" 

상사법 분야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인 A교수는 “판시사항을 살펴봤을 때 재판부도 유죄 확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촌평했다.

그는 “검찰이 1년 6월의 징역형 구형을 한 상태에서 주요 피고인에 대한 형을 벌금으로 택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재판부도 실형을 선고하기에는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A교수는 “재판부가 어느 쪽으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나름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유죄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무죄 판결 시 불거질 수 있는 ‘재벌 봐주기’ 등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벌금형을 부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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