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의선 父子의 37년 '양궁 사랑'... '전자 과녁'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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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의선 父子의 37년 '양궁 사랑'... '전자 과녁'도 만들어
  • 배소라 기자
  • 승인 2021.07.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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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서향순 선수 금메달 감명... 정 명예회장 후원 결심
37년간 500억 후원... 도쿄올림픽 대비 '특설 경기장' 구현
슈팅머신·전자과녁·AI 코칭 프로그램 등 자체 개발
정의선 회장, 美국 출장 마치고 일본으로... 선수들 직접 격려
"비인기 종목 헌신적 지원 기업, 정부가 혜택 줘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장. 사진=대한양궁협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장. 사진=대한양궁협회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은 무자비하게 상대를 제압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올림픽 사상 첫 9연패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외신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외신들은 한국 양궁의 9연패 비결로 차별화된 훈련 프로그램과 수준 높은 코치진을 꼽았다. 양궁대표팀의 선전 소식이 화제를 모으면서 재계 관계자들은 "숨은 조력자가 있다"며 현대자동차 총수 일가의 유별난 양궁 사랑을 언급했다. 

양궁 국가대표팀은 지난 24일 도코올림픽 혼성 단체전(김제덕·안산) 우승에 이어 25일 여자 양궁 단체전(안산·장민희·강채영)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미국 출장을 마치고 일본을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겸 대한양궁협회장은 관람석에서 대표 선수들을 응원했다. 

한국 여자 양궁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3년 동안 한 번도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놓치지 않고 9연패(連霸)를 달성했다. 올림픽에서 특정 종목이 9연속 우승을 달성한 건 수영 남자 400m 혼계영(미국)과 육상 남자 3000m 장애물(케냐)을 포함해 단 세 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귀한 기록이다. 

현대차그룹의 헌신적 지원은 한국 남녀 양궁이 수십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만든 보이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 이같은 평가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스포츠 전문가는 거의 없다. 

현대차는 1985년부터 양궁을 후원해오고 있다. 1884년 열린 LA올림픽에서, 당시 19살의 고교생 궁사 서향순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본 정몽구 명예회장은 "한국인이 세계 1등을 하는 종목인데 지원을 못 받아 경쟁에서 밀리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며 후원을 결정했다.

정 명예회장은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양궁협회장을 지냈고, 그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은 2005년부터 16년간 회장 자리를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비인기 종목 양궁에 37년간 약 500억원 이상을 조건 없이 후원했다. 단일 기업이 스포츠에 쏟아부은 후원금으로는 가장 큰 금액이다. 

현대차그룹의 한결같은 후원을 받은 양궁 대표팀은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2021년 도쿄올림픽까지 금메달 24개를 수확했다. 

사진=YTN 뉴스 화면 캡쳐
사진=YTN 뉴스 화면 캡쳐

 

양궁 장비 관리에 신차 개발 기술 활용
현대차, 탄착점 모니터링 '전자 과녁' 등 개발 

현대차의 후원금은 양궁 꿈나무 육성과 훈련기반 조성에 두루 쓰였다. 대한양궁협회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부터 운용 중인 심리 훈련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선 이 프로그램을 한국 양궁의 1등 비결로 인식하고 있다.

후원금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은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이 회사는 한국 양궁 선수들이 실력을 겨룰 수 있도록 2016년 총상금 4억5000만원의 '현대자동차 정몽구배 한국양궁대회'를 창설했다.

지난 2019년 열린 '정몽구배 양궁대회'는 '2020 도쿄올림픽'에 앞선 마지막 국내 대회였다. 현대차는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장과 유사한 조건의 특설 경기장을 구현하는 정성을 들였다. 

현대차그룹은 장비 품질을 점검하는 데 그룹의 연구개발(R&D) 기술을 활용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비파괴검사 기술을 적용해 선수들이 사용하는 활 내부의 균열 여부를 판독했다.

현대차그룹과 양궁협회는 3D 스캐너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선수의 손에 맞는 맞춤형 그립, 제작해 선수들에게 제공했다. 1mm 미만의 오차로 승패가 갈리는 양궁 경기의 특성상 그립은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에는 정확도를 개선한 슈팅머신을 새로 도입했다. 슈팅머신은 70m 거리에서 화살을 쏴 화살의 불량 여부를 테스트하는 기기다. 국가대표 선수단도 슈팅머신의 성능에 매우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이 외에도 현대차그룹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탄착 위치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전자 과녁 △얼굴색 변화로 심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측정 장비 △활 쏘는 자세를 잡아주는 인공지능 코치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그룹 관계자는 양궁 대표팀의 선전에 "그룹의 첨단 기술과 양궁 선수들의 훈련방식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전했다.

현대차그룹과 같이 오랜 시간에 걸쳐 비인기 종목 스포츠를 헌신적으로 후원한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혜택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현한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정부보다 오히려 기업이 더 지속적으로 스포츠를 후원하고 있다"며 "현대차그룹 같은 기업에게는 정부가 각종 혜택을 줘서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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