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치솟는 경주 황리단길 '떠나는 지역 소상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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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치솟는 경주 황리단길 '떠나는 지역 소상공인'
  • 경주=박진형 기자
  • 승인 2017.07.0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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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황리단길. 관광객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네이버지도 로드뷰.

경북 경주시 황리단길의 명암은 뚜렷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카페나 식당이 들어와 새로운 문화거리로 조명을 받고 있다. 하지만 치솟는 인기와 함께 임대료도 폭증하면서 기존에 장사하던 저소득 상인들이 쫓겨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공동화현상)’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인근 부동산중개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약 1년 전부터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 올해 초 들어서 변화가 더 뚜렷해졌다. 임대료가 몇 년 사이에 최대 5배까지 뛰었다. H 부동산중개업자는 “2년 전만 해도 임대료가 100~120만원가량 하던 가게가 지금은 5배까지 뛴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I 부동산중개업자는 “내남네거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에는 최근 전용면적 33㎡(10평)에 임대료 20만원으로 매물이 나온 곳이 있다”면서 “하지만 이 규모로 황리단길에서 구하려면 적어도 10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D 중개업자도 “언론 보도와 연예인들이 방문, 인터넷에서 이슈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임대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면서 “적어도 2배 이상은 임대료 시세가 뛰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는 김 모(61) 씨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상권 분위기를 살피고 가는 빈도가 늘었다"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다 보니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높게 제시하고 있다. 사정이 안 되는 상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야 하는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주시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창조경제과 관계자와 신라문화융성과 최근택 주무관 등과 통화해 봤지만 "경주시에서 황리단길의 부동산 대책 관련해서 처리하는 부서를 잘 모르겠다. 저희(경주시) 쪽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경주시는 지난 4월 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황리단길에 대한 환경정비를 실시했다. 바르게살기협의회 회원 및 주민센터 직원 50여명이 무단 투기된 쓰레기와 현수막, 불법광고물을 수거하는 정비활동을 펼쳤다. 사진=경주시.

이와 반대로 관광객들과 주민들은 새단장을 한 황리단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경주시민인 안지영(24·여) 씨는 "예전에는 이곳이 빈 점포도 많았고 오래된 건물이라 사람 발길이 뜸했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에 맞는 예쁜 가게들이 들어오면서 매력있는 거리로 변하고 있다.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근처에는 유적지도 많아 데이트 코스로도 제격"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한 관광객은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를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시골 동네라서 큰 기대를 안 했다"면서 "하지만 막상 와보니 생각이 완전 달라졌다. 특히 카페 루프탑에 올라가 바라보는 전경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보면서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말처럼 황리단길에는 커피숍과 갤러리, 한복집 등 새롭게 들어선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외관이 낙후됐더라도 리모델링 공사로 내부는 현대적 감각을 자랑했다. 오래된 이발소와 점집 등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버려진 골목'이라는 말은 옛 수식어가 된 듯 보였다. 거리에는 젊은 관광객들과 이웃주민들로 북적거렸다.

황리단길이 ‘23개 읍면동 친절한 경자씨 행복한 경주만들기 주민제안 공모사업’에 최정 선정됐다. 이에 경주시 관계자와 황리단길 주민들이 만나 소통하고 있다. 사진=경주시.

영세한 상인들과 관광객들의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상인들은 임대료·권리금 등이 상승해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지만 관광객이나 주민들은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면서 거리 환경이 개선되고 세련된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부정적 영향에 대해 간과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건국대 심교언 부동산학과 교수는 “상가 임대료가 폭등하면 기존의 영세 상인이 쫓겨날 수 있다”라며 “'부동산 막차'를 탄 사람이라도 가격 거품이 꺼지게 되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단기간 내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서서히 가격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토연구원 최명식 연구책임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영향은 비자발적으로 이주를 하기 전에 미리 쫓겨날 것을 걱정하는 심리적 비용을 치루는 것"이라면서 "이로 인해 지역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주변 지역의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줘 합당한 이유 없이 동반 상승시킬 공산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젠트리피케이션을 두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지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학자들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서울연구원의 ‘해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는 선진국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어떤 식으로 대응전략을 폈는지 나와 있어 주목된다.

프랑스 파리시는 1970년대까지 도심에 대형 상업 시설이 들어오면서 소규모 음식점과 전통 식당 등이 급격히 줄었다. 골목 상권이 타격을 입었다. 이에 파리시 산하 거리활성화정비국이 시로부터 총 11개의 사업지구에 있는 건물 1층과 상점과 토지에 대해 선매권을 받았다. 그리고 경쟁력이 약한 업종 위주로 지역 소상공인과 수공업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 줬다.

영국 런던시 해크니구 쇼디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몰려들었다. 도심 접근성이 좋은 데다 임대료가 쌌기 때문. 하지만 1990년대부터 이 일대에 도시 재생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비싸졌고, 예술가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영국 중앙정부는 2000년대 들어 쇼디치에 예술가를 위한 건물을 지었고, 미술관·스튜디오 영업시간을 연장하는 등 조치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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