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삼성 경영권 위협... 이재용 사익 아닌 그룹 보호 위해 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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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삼성 경영권 위협... 이재용 사익 아닌 그룹 보호 위해 합병"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6.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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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회계·삼성 합병 의혹’ 7차 공판
‘프로젝트G’ 문건 작성자 삼성증권 前 팀장 진술
2005년부터 헤지펀드의 경영권 위협 이어져
골드만삭스 자문... "비상식적 경영활동 아니다"
"전문가·언론 모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긍정적"
"엘리엇,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익되는 투자자 아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2015년 추진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글로벌 해지펀드의 적대적 지분 인수와 규제 당국의 금산분리 정책 등 경영권을 위협하는 국내외 리크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전 삼성증권 IB팀 팀장을 역임한 A는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재판장 박정제·주심 박사랑) 심리로 열린 ‘삼성바이오 회계·삼성 합병 의혹’ 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합병의 목적을 묻는 변호인단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A는 “경영권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며 “(해외 해지펀드의 공격과 금산분리 정책 실행으로 인한) 경영권 위협을 없애기 위해선 합병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성이 당시 골드만삭스 등 ‘경영권 방어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A는 “비정상적 경영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견해를 밝혔다. A의 증언은 이 사건 검찰 공소사실과 상반된다.

검찰은 옛 삼성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범 그룹 차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광범위한 작업이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고의적인 주가조작과 회계 분식 등 범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들 위법행위의 정점에 이 부회장이 있으며, 그가 이런 사실을 사전에 보고 받고 승인했다는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A는 2004년부터 2018년 초까지 삼성증권에서 근무하면서, 삼성 옛 미래전략실(미전실) 임직원들과 함께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A는 검찰이 이 사건 혐의를 입증할 스모킹건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 작성이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검찰은 이 사건 첫 증인으로 A를 지목하면서, 그에 대한 주신문을 통해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공소사실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A는 검찰의 주신문은 물론이고 이어진 변호인단 반대신문에서도 ‘합병 전 물산 주가는 하락하고, 모직은 주가가 상승 추세에 있어 시세조종의 필요성이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일관되게 하고 있다. ‘프로젝트G’의 성격 내지 작성 목적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A는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가 아니라 국내외 위협 요소로부터 그룹 경영권을 방어하고, 각 핵심 계열사 지배구조를 규제 당국의 기준에 맞춰 개편하는데 있었다’고 증언했다.

 

모직-물산 합병 전, 삼성 '해지펀드 공격'에 취약

이날 증인신문 내용을 살펴보면, 2015년 합병이 이뤄지기 전 삼성은 해외 헤지펀드들이 노리기 쉬운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총수일가 보유 지분이 취약한 탓에 외부세력에 의한 경영권 위협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2004년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는 삼성물산 지분 5%를 매입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삼성SDI가 삼성물산 지분을 기존 4.5에서 7.2%까지 늘리면서 급한 불을 껐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경영권이 해외 해지펀드로 넘어갈 수도 있음을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여기에 더해 금산분리, 순환출자 제한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삼성 경영권 위협은 더욱 가중됐다. 규제가 현실이 되면 삼성전자에 대한 생명의 의결권 행사는 제한을 받는다. 상속세율 증가에 따른 막대한 세 부담도 난제였다. 이 부회장이 상속을 받더라도 세금 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지분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된 것이 2015년 5월 삼성물산-제일모직(구 에버랜드) 합병이다. 이 사안을 놓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검찰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사익을 위해 추진됐다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프로젝트G 문건에 따라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 시점을 임의로 선택해 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손해를 가하고, '합병은 적정했다'는 내용의 회계보고서를 조작·유포했다는 것이다. 

반면, 변호인단은 합병의 목적 자체를 달리 봤다.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가 목적이 아니라 글로벌 해지펀드, 금산분리 등 국내외 경영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그룹 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키기 위함이었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엘리엇, 삼성 몰래 지분 취득해 경영권 위협...
A "합병 외 방법 없었다"

변호인단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끼어들면서 경영권 위협이 재현됐다.  

엘리엇은 합병 이전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공시 없이 삼성물산 지분 4.95%를 몰래 매입하고, 합병 발표 이후 2.17%를 추가로 취득해 보유 지분 비율을 7.12%까지 늘렸다. 당시 엘리엇은 계열사를 통해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A는 이에 대해 “(TRS 거래를 통해 지분을 매입한 경우) 정확하게 100% 알지는 못한다”며 “TRS는 명의를 밝히지 않고 실제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엘리엇이 그런 부분을 고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확보 이후 합병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엘리엇은 국내 언론을 상대로 대대적인 홍보전을 펴면서 '제일모직에 비해 삼성물산 가치가 저평가되는 등 합병조건이 공정하지 않다. 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경영권 분쟁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헤지펀드의 전형적 행태였다. 

삼성 측은 엘리엇의 ‘어깃장’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했다. 프로젝트G에는 당시 삼성 측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변호인단이 제시한 문건에 따르면 삼성은 합병이 무산될 경우, 그룹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율이 낮아 지속적인 경영권 공격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앨리엇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를 선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엘리엇 등장 전에는 '합병비율 부적절 기사' 나온 적 없다"   

A는 엘리엇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 되는 회사라기 보다는 단기적으로 주주가치만 올릴 수 있는, 그런 방향에 집중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며 “판단하긴 쉽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회사 성장에 초점을 두는 주주는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주들이 합병에 부정적이었다면 합병발표 이후부터 양사의 주가가 하락했을 것”이라며 “주주총회 통과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판을 통해 확인된 내용을 기준으로 하면, 15 상반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합병 기대감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15년 7월 양사 주총이 합병 찬성을 결의한 직후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일시 하락했으나 단기적 조정에 그쳤다.   

변호인단은 당시 전문가들이 두 기업의 합병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항변했다. A도 “엘리엇 등장 전에는 합병비율이 적절하지 않다는 언론 기사나 증권 전문가들의 의견을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 사건 8회 공판기일은 다음달 1일 오전 10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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