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G는 고객용 자문書... 이재용 승계기획 보고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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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G는 고객용 자문書... 이재용 승계기획 보고서 아니다"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6.07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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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회계·삼성 합병 의혹' 4차 공판
작성자 前 삼성증권 팀장 출석... 檢신문 종료
美 엘리엇 '합병비율 불공정' 문제 제기
'경영권 위협' 판단, 삼성증권에 대응 전략 의뢰
"합병 자문사로서 문건 작성... 보고서 아니다"
이재용 유리한 시점에 합병? 4년 전도 입증 실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검찰이 '삼성바이오 회계·삼성 합병 의혹' 스모킹건으로 보고 있는 ‘프로젝트G’ 문건의 성격과 관련돼 증권사가 작성한 '고객용 자문서'에 불과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증인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 불공정 주장을 펴고 있던 상황에서 삼성 측은 이를 위기로 인식했고, 대응방안 마련을 위한 자문을 삼성증권에 의뢰했다"고 부연했다.

증언에 따르면 '프로젝트G 문건'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기획 시나리오가 아니라, 증권사가 고객에 제공하는 지배구조 현안 관련 자문서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박사랑·권성수 부장판사, 재판장 박정제·주심 박사랑)는 3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와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에 대한 4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프로젝트G’ 문건 관련 실무 업무를 맡은 전 삼성증권 팀장 A다. A는 2004년부터 2018년 초까지 삼성증권에서 근무하면서, 삼성 옛 미래전략실(미전실) 임직원들과 함께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참여했다. 

검찰은 삼성 계열사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통해 A와 옛 미전실 임직원들이 주고 받은 다량의 이메일 데이터를 확보하고, '프로젝트G' 문건을 이 사건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거로 판단했다. 검찰이 A를 이 사건 첫 증인으로 신청한 데는 이런 사정이 존재한다.

지금까지의 신문 내용을 살피면 검찰은 A에 대한 주신문을 통해 적어도 3가지 공소사실을 입증하고자 했다. 하나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근본 목적이 이 부회장 그룹 지배력 강화였다는 점, 두 번째는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을 위해 물산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주가조작이 있었다는 점, 세 번째는 이 부회장이 미전실로부터 이같은 방안을 보고받았다는 점이다. 검찰의 주신문은 대체로 위 3가지 쟁점에 집중됐다.

검찰의 주신문은 지난달 6일과 20일에 이어 이날까지 모두 세 차례 진행됐다. 이날도 검찰은 이메일 첨부 보고서 등의 문건을 제시하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시세조종 의혹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검찰은 '물산 주가를 인위로 낮추는 시세조종이 필요했다'거나 '시세조종 관련 내용이 이 부회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얻지 못했다. 

 

증인 “물산 주식은 하락, 모직은 올라가던 상황”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검찰은 원하는 진술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문자답'식의 질문을 반복했으나 증인은 "시세조종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가 부양 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미전실 관계자에게 보낸 사실에 대해서는,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등이 합병비율을 문제삼으며 합병 효력 자체를 부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예상 가능한 리걸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언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되레 신문과정에서는 합병 이전부터 물산 주가는 저평가, 모직 주가는 고평가돼 있었다는 진술이 잇따랐다. 이같은 진술은 검찰 공소사실에 정면으로 반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한 시점을 선택해 합병을 추진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예단과 추론을 제외하면 달리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 

특히 검찰이 주장하는 시세조종 의혹은 4년 전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서 이미 걸러진 내용이라는 점에서, 공소사실의 신뢰도에 의문을 더한다. 

[검찰 시세조종 의혹, 4년 전에도 입증 실패] 

김신 전 삼성물산 대표는 2017년 6월23일 이 부회장 뇌물 등 혐의 사건 32차 공판기일에 출석해, “모직-물산 합병은 양사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 전략적 결정이었을 뿐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양사 합병은 이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 아니었느냐’는 박영수 특검의 거듭된 질문에 “모직과 물산이 합병을 하지 않았다면 물산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것”이라며 “합병은 경영상 판단의 결과였다”고 반박했다.

김 전 대표는 합병 전 물산의 실적을 구체적으로 인용하면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시세조종은 할 이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작업을 기획할 사정도 안 됐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김 전 대표의 법정 증언.

"2015년부터 2년간 물산 건설부문과 상사부문서 상당한 손실이 났다. 2년간 직원들이 성과급을 전혀 받지 못할 만큼 실적이 나빴다. 건설부문 인력 20%, 상사부문 인력 10%를 각각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부진을 의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박영수 특검은 법정에 직접 나와 ‘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 산정을 위해 물산 실적 부진을 의도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반복하다가 재판장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1심 재판장이었던 김진동 부장판사는 “그런 식의 신문은 자제하라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며 “나머지 문항도 같은 취지라면 생략하는게 낫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판에서도 검찰은 ‘삼성물산 주식 저평가 논란 방안’ 이메일을 제시하며 어떤 내용인지 물었다. A는 “당시 삼성물산 주식은 하락하는 추세에 있었고, 제일모직은 상대적으로 올라가던 상황”이라며 “(일부 물산 주주들이) 합병비율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는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같은 주장을 폈다”고 덧붙였다. 

A의 증언처럼 엘리엇이 합병 비율 적정성 논란을 들고 나오면서 삼성 측도 대응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2015년 6월 작성된 ‘엘리엇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엘리엇이 이슈를 제기하고 나설 경우, 합병이 무산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안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했다. 

다음은 이 부분 A의 증언.

"합병 발표 이후 며칠 있다가 엘리엇이 지분 5%를 가지고 있다는 공시를 했는데 어떤 회사인지 보니까 굉장히 유명한 헤지펀드고 액티비스트(투쟁적인) 펀드였다. 엘리엇이 논란을 일으키고 이슈를 제기할 수 있는 주주라고 생각해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한 것 같다." 

"의결권 설득 방안 수립해 우호세력을 확보하고, 우호지분 확보 추진, 협력사 직원 등 의결권 확보 방안을 제안했다. 엘리엇 주장은 '합병비율이 불공정한데 삼성 대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것이 주주들 전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엘리엇 주장에 어떻게 대응할지 큰 방향으로 논의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미국 골드만삭스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추가로 제시하면서 A가 작성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묻기도 했다.

A는 “자료 내용 봤을 때는 저희팀이 초안을 만들거나 내용 준비하거나 마무리까지 하는 차원의 문서는 아닌 것 같다”며 “문건을 전달받으면서 내용을 조금 듣긴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삼성증권이 합병 자문사 맡아
"'프로젝트G', 자문한다 생각하고 만들어" 

변호인단 반대신문에서 A는 '프로젝트G' 문건의 작성 배경과 동 문건의 성격을 이렇게 밝혔다.

"삼성증권은 합병 자문사(IB, Investment Banking)로서 M&A 관련 기업 인수나 합병 관련 자문을 맡았다.

(문건 작성은) 각종 지배구조와 사업구조 개선방안에 대한 요청이 있어서 시작된 것으로 기억한다. 저희(삼성증권)는 자문을 드린다고 항상 생각했고, 보고서를 대신 만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만, 압축적으로 표현하다보니 일부 단정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A는 “기본적으로 저희가 문서를 요청받아 작성하는 과정에서 내부의 상하관계를 따르지는 않았다”며 “같은 그룹 안에 있으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삼성그룹도 중요한 고객 중에 하나인 만큼, 고객 요청에 맞춰 업무를 하자는 생각으로 진행했다”고 진술했다. 

A의 증언을 종합하면 삼성증권은 삼성 미래전략실로부터 의뢰를 받아, 엘리엇 등 구 삼성물산 주주의 합병비율 문제 제기에 대응할 목적으로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전달했다.

5차 공판은 이달 10일 속개된다. A에 대한 검찰 주신문이 종료됨에 따라, 변호인단 반대신문이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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