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안하다 고맙다" 언제부터 금기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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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안하다 고맙다" 언제부터 금기어 됐나
  • 이준영 기자
  • 승인 2021.06.0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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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정용진, 文대통령 '세월호 글' 비유 논란
SNS 일상적 용어, 정치적 확대 해석 우려 목소리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SNS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 사진= 정용진 부회장 SNS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SNS에 올라온 게시물 캡처. 사진= 정용진 부회장 SNS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본인 SNS에 음식 사진을 올려놓고 쓴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쓴 글이 화제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25일과 26일 본인 계정 SNS에 우럭과 가재 요리 사진을 올리며 "잘가라 우럭아 니가 정말 우럭의 자존심을 살렸다 미안하다 고맙다", "가재야 잘가라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각각 글을 올렸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정 부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저격한 글이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3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팽목항을 찾아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글을 쓴 바 있다. 정 부회장의 글이 이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다.

네티즌들은 정 부회장의 발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문구를 따라한 것은 대놓고 저격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다수의 네티즌들은 일반적으로 쓴 말인데 너무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나섰다. 특히 한 네티즌은 "세월호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한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거 아닌가"라며 "우리를 위해 희생한 생선이나 가재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정 부회장은 이후 지난달 28일에도 소고기 사진을 올리며 "너희들이 우리의 입맛을 세웠다. 참 고맙다"는 글을 올렸다. 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2016년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방명록에 남긴 글귀를 패러디 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박 전 시장은 "아이들아 너희들이 대한민국을 다시 세웠다. 참 고맙다"고 적었다.

정 부회장의 이러한 글은 풍자적 비유에 가깝다. 적절한 대상에 대해 일부 문구를 차용한 것이다. 부적절한 대상에게 사용했다면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우리의 음식이 되는 가축이나 해산물에게 쓰는데 의미상 무리는 없다.

인터넷 상에서는 "미안하고 고맙다"라는 문구 자체가 금기시 되는 분위기다. 일상적인 말에 정치적 해석이 더해져 마치 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의미로 통칭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진다. 이번 사건은 진영싸움으로 번져 보수 진영은 정 부회장을 지지하고, 진보 진영은 신세계 계열 불매운동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문구 차용을 비난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이전 문 대통령의 글이 부적절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 부회장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게재했는지 가늠할 수는 없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만한 일이 이토록 일파만파 커지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영양분이 돼준 음식들에게 고맙고, 우리를 위해 희생했기에 미안하다라는 표현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일 수 있다. 오히려 갈라치기에 능숙한 일부 네티즌이 '위트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예능'은 예능일 뿐 '다큐'로 받으면 불편함만 쌓인다. 웃자고 편하게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 필요는 없지 않나. 가재도 우럭도 '잘가기' 참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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