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식품 뮤지엄①] 투게더·요플레... 히트상품 富者 된 54살 '빙그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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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식품 뮤지엄①] 투게더·요플레... 히트상품 富者 된 54살 '빙그레우스'
  • 김보라 기자
  • 승인 2021.05.2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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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아이스크림 '투게더'·바나나맛 우유 돌풍
서구식 요거트 최초로 알린 '요플레' 시장 선도
출시 직후 210억 매출 '메로나' 빙과업계 새역사
1992년 부채 4200%, 김호연 회장 승부수 적중
젊어진 빙그레 브랜드... MZ겨냥 마케팅 '웃음꽃'
자사제품 치장 B급 캐릭터 '빙그레우스'로 존재감 부각
사진= 빙그레
사진= 빙그레

54년의 역사를 지닌 빙그레는 잘나가는 장수식품 기업 중 하나다. 바나나맛우유, 투게더, 메로나, 붕어싸만코, 슈퍼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제품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에게 친근한 빙그레지만 현재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빙그레의 역사는 1967년 시작된다. 아이스크림 등을 유통하던 홍순지 사장이 대일양행을 창업하고, 1971년 대일유업으로 간판을 바꿨다. 유업계로써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1972년 미국의 퍼모스트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아이스크림과 우유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현재의 네모난 팩 우유의 시초가 바로 대일유업이다.

대일유업은 1973년 월남에 진출해 미군 부대를 상대로 아이스크림을 납품하던 중 당시 남양주군 일대에 젖소가 많다는 사실을 접하고 미금면 도농리에 유제품 가공공장(지금의 빙그레 남양주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건설 도중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경영부실로 한국화약그룹에 인수됐고, 이 시기부터 김호연 회장이 대일유업을 이끌었다. 당시 한국화약그룹은 화약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유제품을 판매하던 대일유업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씻어내고자 했다.

사진= 빙그레.
사진= 빙그레.

 

'설탕물은 가라'... 우유 성분의 아이스크림 대중화 선도

70년대 국내 빙과류 시장은 유제품이 아닌 설탕물을 얼린 빙과류가 호황을 누릴 때였다. 유제품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술도 없었거니와 생산원가도 비싸 우유 성분을 넣은 진짜 아이스크림을 찾는다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대일유업은 기술 제휴를 맺었던 미국 퍼모스트사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이때 출시한 우유와 아이스크림이 '바나나우유'와 '투게더'다. 이 두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대박'을 쳤다. 10원짜리 아이스케키와 하드 중심의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당시 600원의 높은 가격의 투게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남다른 집안 이력을 지녔다. 김호연 회장은 한화그룹 오너 가족으로 고 김종희 회장의 차남이다. 친형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1981년 김종희 회장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김호연 회장이 대일유업을 맡으며 1982년 사명을 '빙그레'로 변경했다.

김종희 회장이 작고한 후 경영승계 과정에서 형제 간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빙그레는 김종희 회장이 작고한 후 매출이 반토막 나고 새롭게 진행하던 라면 사업도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유제품과 빙과류 외에도 과자, 라면 등 여러 식품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삼양을 필두로 농심과 팔도, 오뚜기 등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날개를 펴지 못했다. 김호연 회장이 빙그레를 맡은 것도 경영승계 과정에서 밀렸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1992년 적자를 면치 못한 빙그레는 한화그룹에서 계열 분리했다. 당시 빙그레 부채비율은 무려 4200%였다. 매년 발생하는 이자 갚기가 버거운 상황. 자본잠식에 들어가 정상적인 영업도 불가능했다. 빙그레 김호연호(號)의 가시밭길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때 김 회장이 야심차게 출시한 제품이 바로 멜론 과일 맛이 나는 ‘메로나’다. 메로나는 출시 직후 21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국내 빙과업계에 새 역사를 썼다. 메로나는 현재까지 빙그레를 일으켜 세운 효자 상품으로 알려져있다.

사진= 빙그레
사진= 빙그레

 

'바나나' 쉽게 맛보기 힘든 '고급과일'로 입맛 사로잡아

빙그레의 장수제품인 '바나나맛 우유'는 1970년대 탄생했다. 당시 고급 과일이었던 바나나 향을 더해 출시한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인기 폭발하며 가공우유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출시 당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가 아닌 '퍼모스트 바나나맛 우유'로 출시됐다. 대일유업에서 퍼모스트와 기술제휴를 하면서 나온 음료이기 때문이다. 1974년 출시된 바나나맛우유는 현재까지 가공유 판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인의 입에 맞는 달달하고도 변치않는 맛이 성공 요인으로 꼽히지만, 바나나맛우유의 독특한 용기도 흥행에 한 몫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바나나맛우유는 통통하고 배불뚝이 모양의 독특한 용기로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사진= 빙그레.
사진= 빙그레.

 

국내 서구식 요거트 알린 '빙그레'... 혁신으로 '시장 선도'

빙그레는 국내에 서구식 요거트를 최초로 알린 기업이다. 빙그레 요플레는 국내 발효유 산업이 초기 단계에 머무르던 1983년 국내 최초의 떠먹는 요거트를 출시하면서 국내 발효유 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빙그레는 플레인 요거트에 딸기, 복숭아, 파인애플 등 과육을 넣은 고급 제품을 선보이거나, 기존 대비당 함량을 80% 줄인 '요플레 라이트' 등을 선보이며 시장을 선도했다.

빙그레는 1997년 4월 드링크 요거트 닥터 캡슐로 주목받았다. 닥터 캡슐은 유산균이 강력한 위산으로 인해 대부분 죽는다는 점을 착안해 캡슐로 비피더스 유산균을 감싸 장까지 살아서 도달시킨다는 새로운 개념의 요거트다. 이 제품은 유산균 캡슐제 요구르트 및 그 제조 방법에 대해 국내와 미국, 홍콩, 싱가포르 특허청으로부터 특허를 획득했다.

빙그레는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신제품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2018년 출시한 요플레 토핑이다. 요플레 토핑은 토핑의 바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원재료에 특별한 가공 없이 그대로 부숴 요거트와 분리해 포장한 제품이다. 요플레 토핑 출시 전 국내 플립 요거트 시장은 연간 300억원 규모였지만 요플레 토핑이 출시된 이후 시장 규모는 연간 약 8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사진= 빙그레
사진= 빙그레

 

장수기업의 변신... 'MZ세대' 겨냥 마케팅으로 젊은 이미지 구축

올해 54주년을 맞은 장수 기업 빙그레는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젊은 이미지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주요 타깃인 'MZ세대'를 겨냥해 오마이걸, 주지훈, KCM·조동혁을 광고모델로 기용하고, SNS를 통해 B급 감성 빙그레 캐릭터 '빙그레우스'를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빙그레는 꾸준히 젊은층과 소통하는 마케팅을 진행해 왔다. 2016년에는 올리브영과 협업해 '바나나맛 우유 바디로션' 등으로 화장품 업계에 진출했다. 2017년에는 핸드크림과 립밤, 핸드워시, 입술 스크럽 등으로 품목을 확대해 바나나맛 우유 화장품을 또 한 번 히트시켰다. 기존 바나나와 딸기 맛에서 멜론과 커피 맛으로 향도 늘렸다.

2020년 6월 꽃게랑 스낵 모양을 로고화해 만든 패션 브랜드 ‘꼬뜨-게랑(Cotes Guerang)’을 론칭해 MZ세대의 주목을 받았다. 가수 지코를 모델로 기용하고 티셔츠 2종과 반소매 셔츠, 선글라스, 로브, 마스크, 가방 등을 한정판으로 출시했다.

명품 브랜드를 걸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꽃게랑 로고로 뒤덮인 옷을 입고 있는 지코의 모습에 누리꾼들은 ‘이거 기획한 사람 누구냐’, ‘빙그레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며 격한 호응을 보였다. 가방은 출시 하루 만에, 남성 셔츠는 이틀 만에 준비한 물량이 모두 팔리며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빙그레 캐릭터 '빙그레우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어린 시절 순정만화에나 나올법한 꽃미남 캐릭터인 빙그레우스는 자신을 '빙그레 나라' 왕자로 소개하며 메로나와 빵또아, 닥터캡슐 등 빙그레 제품을 소개한다. 특히 '~하오'체를 쓰는 특유의 말투는 'MZ'에게 'B급 감성'으로 낯설지만 유쾌하게 소비자에게 다가가며 빙그레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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