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25시] 통장대여 보이스피싱 직접 당해봤다 ‘범죄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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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통장대여 보이스피싱 직접 당해봤다 ‘범죄의 재구성’
  • 정규호 기자, 박진형 기자
  • 승인 2017.06.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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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물류회사로 속이기 위해 모든 서류 조작 및 도용
지난 8일 '부수입 정보를 알려드립니다'라는 보이스피싱 문자가 국민들에게 돌았다. 사진=시장경제신문

지난 6월8일, 14일 세진물류의 송정훈 대리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회사에서 세금을 적게 내려고 하는데, 통장 좀 빌려달라는 것이 문자의 내용이었다. 발신지는 07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였다. 통장을 빌려주면 한 계좌에 150만 원, 두 계좌에 350만 원, 3계좌에 550만 원의 통장 임대료를 주겠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 사기를 치는지 파악하기 위해 직접 보이스피싱에 당해봤다.

◇ “인감, 확약서 등 5종 (가짜)서류 보낼테니 계좌번호, 비번 알려달라”

지난 8일 보이스피싱 문자를 받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으로 가장하고 통장대여 보이스피싱 업체와 전화를 시도했다. 어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세진종합물류 경영지원팀 송정훈 대리라고 소개했다. 중국동포의 말투는 아니었다.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한국말을 구사했다.

송정훈 대리는 전화통화에서 자신들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차명계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단 ▲통장 사본 ▲사업자등록증 ▲재직증명서(송정훈 대리) ▲확약서 ▲대표이사 인감증명서 등 5종의 서류를 이메일로 보내고, 확인 후 ▲이름 ▲주민번호 앞6자리 ▲계좌번호 ▲비밀번호 ▲임대료 받을 계좌번호 ▲카드 회수해야 할 주소 등을 공개해달라고 제안했다.

자신을 서진물류의 송정훈 대리라고 소개한 그는 각종 회사 (조작)서류를 보내줄테니 확인하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공개해 달라고 유도하고 있다. 사진=시장경제신문

계약이 성사되면 차량 배차를 통해 카드를 회수하러 오겠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12일 14시에 계약을 하자고 제안했고, 그전에 회사서류를 보내주면 확인하고 통장을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송 대리는 “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라며 “요즘 대포통장 모집이라던지 불법업체가 워낙 많고 거기다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보시는 분들이 많다 보니깐 저희도 피해를 보는 입장”이라는 거짓말을 하며 계약은 성사됐다.

◇ 계약 성사됐지만 수일 지난 후 연락 와

주말이 지나고 계약 한 당일인 12일 14시가 됐지만 업체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고, 3일이 지난 14일이 돼서야 연락이 왔다.

송 대리는 연락이 늦은 이유에 대해 ‘출장’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추가 진행은 다른 직원과 상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연결된 직원은 곽희철이라는 경영지원팀 직원이었다.

그는 주거래 은행이 어디냐고 물었고, 국민, 신한, 하나라고 하자 “하나은행은 ‘모니터링’이라고 해서 거래내역이 많이 없는 계좌면 아무런 사유 없이 출금을 막는 경우가 흔하다”며 “거래가 까다롭지만 최근까지 거래한 계좌라면 임대료를 해주겠다”고 설명했다.

자신을 서진물류 곽희철 경영지원팀 대리로 설명한 그는 하나은행과 농협은 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나중에는 거래를 할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사진=시장경제신문

이어 자신들의 서류를 메일로 받아보려면 ▲이름 ▲전화번호 ▲주민번호 앞 6자리 ▲거래 진행할 은행권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기자는 5종의 회사서류를 먼저 보내라고 요구했고, 15분 후 그들이 말한 5종의 서류가 이메일로 도착했다.

◇ 5종 서류 일일이 확인해보니 다 조작

곧장 서류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서진물류 주식회사’라는 사업자등록증이 실존하는지 알아봤다. 국세청 홈택스를 통해 사업자등록증을 조회한 결과 ‘부가가치세 일반과세자’라고 나왔다. 사업자 번호를 도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상호를 확인하기 위해 각종 포털사이트에 ‘서진물류’를 쳐봤다. 동명의 회사는 나타났지만 이들이 재직하고 있다는 서진물류, 세진물류, 서진종합물류, 세진종합물류는 찾을 수 없었다.

특히, 이들이 문자와 카톡을 통해 링크를 건 홈페이지(www.soujincenter.com, www.soujincenter.com)도 6월8일에는 세진물류였지만, 6월12일에는 서진물류로 바뀐 상태였다. 아울러, ‘스마트스크린필터’라는 공지가 떴다. ‘스마트스크린필터’란 합법적인 웹 사이트를 가장한 안전하지 않은 웹 사이트를 보호해 주는 기능이다. 즉, 한국에 있는 웹사이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수시로 홈페이지를 '세진'에서 '서진'으로 유사한 이름으로 바꿔가며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이 사이트는 확인 결과, 국제물류회사인 토탈월드oooo㈜의 서브 홈페이지를 그대로 카피해 상품명만 바꿔 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보이스피싱업체 링크 홈피 캡쳐

또한, 송정훈과 곽희철이라고 밝힌 직원들의 카톡 배경화면에는 중국과 지구본 표시가 떠 있었는데, 이는 외국에서 카톡을 계설했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홈페이지와 사업자등록증에 나와 있는 회사 주소(서울 강남 논현동 226-1 2층)를 직접 찾아가 봤다.

확인 결과 서진물류, 세진물류 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건물의 관리인은 “이곳 건물을 8년 동안 관리했는데 서진물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다”면서 “201호에는 지금 가구 만드는 회사가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3년부터는 올해 1월까지는 의류 업체가 임차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업체가 홈페이지와 사업자등록증을 통해 자신들이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 주소의 건물. 이 건물의 관리인과 입주 기업 관계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서진물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시장경제신문

이와 함께 서진물류 홈페이지에는 특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회사소개를 누르면 ‘토탈월드해운항공(주)’라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서진물류는 이 회사가 투자해 자신들을 만들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토탈월드해운항공(주)도 직접 찾아가 봤다.

토탈해운항공 관계자는 "서진종합물류는 오늘 처음 들어봤다. 우리 회사를 사칭한 것 같다"며 "만약에 우리와 관계가 있다면 팔레스빌딩에 10년 넘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이스피싱 업체로 의심되는 서진물류 때문에 자사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인 만큼 경찰에 신고 조치해 해당 사이트가 폐쇄되도록 조치 하겠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을 위해 만들어진 서진-세진물류 홈페이지에는 특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회사소개를 누르면 ‘토탈월드해운항공(주)’라는 곳으로 이동하는데, 서진물류는 이 회사가 투자해 자신들을 만들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토탈월드해운항공(주)측은 "이들이 우리를 사칭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시장경제신문

◇ 재직증명서 확인해보니 인감 조작

다음으로 곽희철이라는 이름의 재직증명서를 확인한 결과 조작된 서류임이 확인됐다.

현재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서진물류의 대표는 ‘김현복’이지만 인감 도장 파일의 위치를 옮겨보니 다른 인감 도장이 나타났다. 즉, 다른 회사의 서류를 조작해 만든 재직증명서인 것이다.

서류를 조작했다는 대목은 또 있다.

곽희철이라는 직원의 주민번호가 틀렸다. 그는 자신의 주민번호를 ‘780626-XXXXXXX’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변조 방지 검증번호인 주민번호의 가장 끝자리가 ‘5’가 아닌 9로 나왔다. 즉, 실제 존재하는 주민번호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곽희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보이스피싱업체 직원의 전화번호와 재직증명서를 확인한 결과 '불법도박'이라는 발신자 정보가 떴고, 재직증명서에 있는 인감 도장 파일의 위치를 옮겨보니 다른 인감 도장이 나타났다. 사진=시장경제신문

◇ ‘법인등록번호’, 커버○○○(주) 도용으로 드러나

서진물류라는 회사의 법인등록번호를 확인해보니 ‘커버○○○(주)’의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사는 2012년까지 ‘강남구 논현동 226-1’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즉, 서진물류가 이 회사의 법인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있는 셈이다.

‘커버○○○(주)’ 관계자는 해당 등록번호는 자신들의 것이 맞지만 자신들은 건축, 토목 업체라고 설명했다.

업체측은 경찰 조사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커버○○○(주)’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업체로 의심을 받아 이번 취재까지 3번의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은 보이스피싱으로 피해를 보지 않아 해당 업체를 조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며 “그동안 우리가 사칭을 당해온 것은 어쩌란 것인가. 꼭 피해를 입어야 해당업체를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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