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도 '내로남불'... "투기"라던 정부, 500억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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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도 '내로남불'... "투기"라던 정부, 500억 투자했다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5.0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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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부 343억·산업은행 118억원
"내가하면 투자, 남이 하면 도박인가"
정부, 250만원 이상 양도소득 20% 과세
야권, "투자자 보호않고 과세? 현대판 보스턴 차 사건"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시장경제DB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시장경제DB

가상화폐를 투기·도박에 비유하고 건전한 자산이 아니라고 비판해 오던 정부가 가상화폐 관련 펀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두고 야권에선 '익숙한 내로남불'이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KDB산업은행 등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은 2017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상화폐 관련 투자상품에 총 502억1,500만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관별로는 중소벤처기업부 343억원, KDB산업은행 117억7,000만원, 국민연금공단 34억6,600만원, 우정사업본부 4억9,000만원, 기업은행 1억8,900만원 등이다. 직접투자가 아닌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 형태였지만, 해당 펀드들이 업비트·빗썸 등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에 직접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액이 가장 많은 중기부의 경우 2017년에 193억원을 투자했다. 다음해인 2018년 정부가 도박·불법 으로 규정하자 투자액을 28억원으로 크게 줄였지만 2019년 92억원, 2020년 6억원, 올해 1~3월엔 24억원을 투자했다.

이와 관련해 중기부는 윤창현 의원실에 보낸 입장을 통해 "모태출자펀드에서 가상화폐 관련 기업 4곳에 343억원을 투자했다"며 "모태출자펀드의 투자와 관리 등은 관련 법률에 따라 벤처캐피털(창업투자회사 등)인 업무집행 조합원이 진행한다"고 해명했다.

6일 윤창현 의원은 본지 취재진에게 "정부는 최근까지 가상화폐를 '도박' 또는 '내재가치 없다'고 해놓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은 거래소에 투자해왔다"면서 "이렇게 일관성없는 행태로 어떻게 국민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같은 당 박수영 의원(정무위) 역시 "공공기관들이 모태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라고 항변하지만, (직접이건 간접이건) 정부가 투자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가상화폐 투자자 A씨는 "이 정부에서 익숙한 내로남불이다. 자신들이 하면 현명한 투자고 일반 투자자들이 하면 도박이란 얘기"라고 꼬집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가상화폐 과세하고 보호는 뒷짐...야권, "현대판 보스턴 차 사건"

최근까지 정부는 가상화폐에 대해 부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소득세는 부과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상자산은 가격 등락폭이 너무 크고 심해서 리스크가 큰 자산"이라면서 "가격 등락폭이 다른 투자자산에 비해서 굉장히 크고 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화폐는 투자 대상이 아닌 도박이며, 투자자 보호도 할 수 없다"고 말해 투자자들의 반발을 샀다.

지난 4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 게시자는 "투자자는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며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구요?"라며 은성수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은 최근 15만3,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5일 내년부터 250만원이 넘는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에 20%의 세율로 세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양도 과정에서 지불하는 거래 수수료, 채굴 과정에서 필요한 전기세 등의 필요경비는 순수 수익금액에서 제외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을 막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소득세를 걷는 것은 모순적 행태"라며 "정부가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면 세금도 걷지 말아야 한다. 미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 바로 이러한 (영국 정부의) 모순으로 촉발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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