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요청' SK이노만?... LG엔솔, 4개월 뒤 똑같이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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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요청' SK이노만?... LG엔솔, 4개월 뒤 똑같이 당할 수 있다
  • 양원석 기자
  • 승인 2021.04.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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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 침해' LG 승소 뒤 '특허침해' SK 승소
美 통상법 전문가 "바이든 거부권 명분 생겨" 
"남은 배터리 특허침해 1건, SK이노에 유리"
SK, 특허침해 소장에 LG 美수입생산 금지 청구
"LG엔솔이 '수입금지 명령' 당사자 될 수도"
'SK 조지아 공장의 차질없는 건설과 운영'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LG측은 최근 조지아 공장의 인수 가능성을 언론에 흘렸다. 사진=MBC뉴스화면 캡처
'SK 조지아 공장의 차질없는 건설과 운영'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떠오르면서, LG측은 최근 조지아 공장의 인수 가능성을 언론에 흘렸다. 사진=MBC뉴스화면 캡처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미국 ITC의 패소 결정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반론입니다. 대통령 거부권은 언제나 예외적인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코로나라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재난 속에서 경제 회복에 모든 것을 걸아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분명 예외적입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희박하다고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LG입장에서도 지금 합의를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자신들이 수입금지 명령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SK이노베이션의 특허 침해 금지 청구를 취소해 달라는 LG에너지솔루션의 청구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기각한 2일, 미국 통상법제를 수 십년 간 연구한 A교수는 ‘LG엔솔 vs SK이노 영업비밀 침해 사건’ USITC 최종 의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특히 그는 이틀 연속으로 나온 USITC의 관련 결정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여건은 조성이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두 기업이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아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A교수는 “이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두 기업의 오너가 형식을 따지지 말고 서둘러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2일 오전 USITC는 SK이노의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취소해 달라는 LG엔솔의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증거인멸’을 이유로 하는 LG엔솔의 청구는 입증이 안 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고, 이 사건 특허 침해 관련 문서는 인멸 정황이나 우려 없이 안전하게 보존돼 있으며, 증거인멸 주장 자체가 이 사건 청구와는 관계가 없다고 판시했다.

USITC의 이날 기각 결정으로 SK이노가 LG엔솔을 상대로 낸 특허 침해 금지 사건 심리는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사진=TV조선 뉴스 화면 캡처.
사진=TV조선 뉴스 화면 캡처.

 

[편집자주] 

배터리 분쟁이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특허 침해를 이유로 불거진 LG엔솔과 SK이노 사이 전기차용 2차전지(배터리) 분쟁은 2011년 말 처음 시작됐다. 그해 12월 LG화학(LG엔솔 분사 전 사건 당사자)은 SK이노를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SK측은 특허심판원에 LG 보유 특허에 대한 무효심판을 내면서 맞불을 놨다.

이 사건은 중앙지법, 특허심판원, 특허법원, 대법원을 경유하면서 2014년까지 이어졌다.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 파기 후 중앙지법은 ‘LG 보유 특허의 무효’를 주장한 SK 측의 손을 들어줬다. 동 사건은 항소심 진행 도중 양측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한동안 휴전상태를 지속하던 두 기업간 배터리 분쟁은 19년 4월 LG화학이 USITC와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소를 제기하면서 재현됐다. 두 기업은 ‘영업비밀 침해’와 별도로 ‘특허 침해’ 이슈를 두고도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한 USITC 최종 의결은 올해 2월 10일 나왔다. 위원회는 LG 측의 청구를 받아들여 SK 제조 배터리의 구입과 미국 내 생산을 향후 10년간 금지했다. 이에 앞서 위원회 행정법판사(ALJ)는 지난해 초 ‘예비판정’을 통해 ‘SK이노 패소’를 결정했다. SK이노 일부 직원들이 이메일 등 전산자료를 삭제해 증거조사절차를 위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위원회의 최종 의결은 예비판정의 취지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결과다.

의결 직후 SK이노는 입장문을 내고 불복 의사를 밝혔다. 회사 측은 “증거조사절차 위반을 이유로 사건 쟁점에 대한 판단 없이 결론이 나왔다”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비롯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LG 측이 영업비밀 참해 소송을 낸지 5개월 뒤인 19년 9월 SK이노는 USITC와 델라웨어 연방법원에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냈다(특허 침해 1차 사건). 파우치형 배터리의 용량 및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자사 미국 특허 2건을 LG 측이 무단 도용했다는 것이 주된 청구취지였다. SK이노는 특허를 침해한 LG엔솔 배터리의 수입과 미국 내 생산을 금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LG엔솔은 곧바로 반소에 나섰다. LG엔솔은 SRS 특허 3건과 양극재 특허 1건 등 4건의 미국 특허가 침해당했다며 SK이노를 상대로 동일한 성격의 특허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특허 침해 2차 사건).

접수는 1차 사건이 빨랐으나 증거조사절차는 2차 사건이 먼저 진행됐다. 2차 사건의 예비판정은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1일(한국시간 4월 1일) 발표됐다. 위원회 행정법판사는 이달 1일 예비판정을 통해 LG 측의 특허 침해 주장을 전부 배척했다. 남은 1차 사건의 예비판정은 올해 7월 30일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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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전경. 사진=SK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전경. 사진=SK

 

'특허 침해 사건' 결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영향 줄 수도 

양 사가 서로를 상대로 낸 소송은 청구의 취지와 그 이유에서 차이가 있다. 영업비밀과 특허는 ‘보호법익’과 범위 및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소송 결과가 다른 사건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설명한 사건들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양사 갈등을 살피면 원인은 ‘기술 훔치기’에 대한 깊은 불신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기술 도용 의혹’의 중심에는 SRS 특허가 있다. LG가 침해를 주장한 4건의 미국 특허 중 3건이 SRS 특허이다.

영업비밀 침해 사건은 전술한 것처럼 특허 침해 사건과 보호법익이 다르다. 다만 분쟁의 출발점은 같다. SRS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한 위원회의 판단이, 영업비밀 침해 관련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달 31일 USITC 행정법판사는 특허 침해 2차 사건 예비판정을 통해 ‘LG엔솔 패소’를 결정했다. LG 측의 핵심 청구항이었던 SRS 517 특허는 유효성은 인정받았으나 침해 주장은 기각됐다. 다른 두 건의 SRS 특허와 양극재 특허 1건은 특허 자체의 유효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분리막 특허 3건에 대한 위원회 예비판정은 LG엔솔에겐 뼈아픈 부분이다. 10년 넘게 이어진 배터리 분쟁에서 청구의 정당성은 물론 도덕적 우위를 담보할 수 있는 근거가 부정당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ITC는 2일 오전 SK이노의 특허 침해 금지 청구를 취소해 달라는 LG 측 요청도 기각했다. 주요 증거를 인멸한 SK이노의 특허 침해 금지 청구는 부당하므로, 소 자체를 취소해 달라는 것이 청구 요지였다. LG엔솔은 앞선 영업비밀침해에서 앞세운 증거인멸 주장을 다시 한번 원용했으나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위원회 행정법 판사는 LG 측 청구 이유를 모두 배척했다.

위원회가 잇따라 LG 측의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USITC 결정이 난 날로부터 60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 할 수 있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위원회의 결정은 효력을 상실한다. 2월10일 나온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간은 이달 11일까지이다.

LG와 SK는 각각 통상분야 전문가와 미국 정가의 거물을 동원, 치열한 로비전을 벌이고 있다. SK이노 배터리 공장이 들어설 미 조지아 주지사도 거듭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함을 호소했다. 최근에는 샐리 예이츠 오마바 정부 법무차관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허 침해 소송서는 SK 우위"
"LG가 바이든 거부권 바라는 상황 벌어질 수도" 

A 교수는 “위원회의 예비판정이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명분이 쌓인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사 소송의 근간이 특허 침해 갈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거부권 행사로 인한 부담을 덜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정된 특허 침해 1차 사건 예비판정이 SK에 유리하게 나오는 경우, LG엔솔이 ‘수입금지 명령’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고개를 들고 있다. SK이노는 소장에서 LG 배터리의 미국 내 수입과 생산 금지를 청구했다. SK이노 측이 승소하는 경우, 이번에는 LG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바라는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배터리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인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SK이노 측의 배터리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터리 성능 지표인 ‘에너지밀도’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SK 제품의 에너지밀도가 LG의 그것보다 높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원천 특허 내지 원천기술 보유 여부에 대해서도 LG 배터리 기술 경쟁력에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베터리 분리막 소재인 원단과 코팅 기술의 경우, LG 제품의 경쟁력이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상생을 전제로 두 기업의 화해를 강하게 당부했다.

"두 회사의 공방이 길어질수록 이익은 중국 배터리 업계가 취한다.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이 일본과 중국, 미국에 밀리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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