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업방어권, 전속고발권 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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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업방어권, 전속고발권 만큼 중요하다
  • 신준혁 기자
  • 승인 2021.03.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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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의혹 세아베스틸 '자료파쇄'.. 공정위, 檢고발
증거인멸 철저히 따지되 방어권 충분히 보장해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시장경제DB

올해 들어 제강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공정위가 철스크랩(고철) 담합 혐의로 부과한 3001억원의 과징금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철강협회가 현장과 법규 사이의 괴리감을 공정위 측에 적극적으로 전하는 데 소홀했다며 탈퇴를 선언하는 등 업계 전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무엇보다 제강사들은 '반론 기회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공정위로부터 제재처분을 받은 기업들은 "공정위 조사보고서는 400페이지 분량인데, 의견 진술 기간은 한 달 남짓에 불과했다"며 조사 절차상의 불공정을 지적하고 있다. 기업들은 고철 구매 과정을 설명하면서 "가격을 조정할 권한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공정위 보도자료 어디에도 반론은 실리지 않았다.

공정위 입장에서 이번 조사는 큰 성과다. 7개 제강사에 부과된 과징금은 역대 4번째 규모다. 제강업계로 범위를 좁히면 역대 최대 과징금이다. 특히 과징금 부과 금액을 기업 별로 나누면 1년치 영업이익을 훌쩍 뛰어 넘는다.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에 그치지 않고 담합 가담기간과 조사 협조 수준 등을 따져 4개사 법인과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조사대상에 오른 특수강 1위 업체 세아베스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처음부터 고철을 매입하는 제강사들과 달리, 생산된 제품을 사용하는 세아베스틸의 담합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담합 의혹을 받는 기업들도 "세아베스틸 담당자들은 실무진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어났다. 공정위가 조사과정에서 자료를 삭제하고 은닉했다는 혐의로 세아베스틸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세아는 단순 오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세아의 해명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자료보전 통보를 받고도 사내 PC를 업데이트하고 문서를 옮긴 행위는 공정위 의심을 자초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 조사가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심정적 불안과 동요를 느낀 일부 직원의 의도치 않은 행위가 오해를 키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눈 여겨볼 점은 직접적인 증거파기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파쇄된 문서를 발견했고 일부 문서가 옮겨진 정황을 확인했지만, 파쇄행위가 담긴 CCTV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인멸 자체와 동 행위가 벌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법률효과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당장 증거의 가치를 다투는 '증명력'이 문제될 수 있다.

재계에서는 공정위의 고발 조치에 "과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고발 이후 검찰의 기소 여부나 법원 판결 결과는 공정위의 손을 떠난 영역이기에, 전속고발권을 다소 무리하게 행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제강사 고철 담합 및 세아베스틸 증거인멸 의혹에 대한 당부 판단은 검찰과 법원의 몫으로 남았다. 공정위의 ‘역대급’ 조사가 업계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졌는지, 피심 기업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검찰 수사와 법원의 심리 과정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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