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 죽는다... LG-SK, '배터리재단 설립' 대승적 결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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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죽는다... LG-SK, '배터리재단 설립' 대승적 결단해야"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3.0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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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25시]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앞서가는 日, 추격나선 中... K-배터리 '위기'
SK, ITC 패소 인정안해... 이 싸움 오래갈 것
SK '배터리 에너지 밀도', LG보다 높게 나와
LG 소송전략 '패착'... SK 합의명분 잃게 만들어
힘합쳐야... 배터리 공동재단 설립이 유일책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두 회사는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은 상태로 여기까지 왔어요. 합의가 쉽지 않아요. 이 싸움은 오래 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두 회사를 제외한 전 세계의 배터리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겠지요.“

25일 서울 구반포역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뚜렷한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며 LG에너지솔루션(LG에솔)과 SK이노베이션(SK이노)의 배터리(2차 전지) 분쟁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차세대전지이노베이션 센터장과 차세대전지성장동력사업단 총괄간사 등을 역임했고, 한국전지학회와 탄소학회 이사를 지낸 국내 최고 배터리 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박 교수는 전기차용 2차 전지 '에너지 밀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하면서, "SK 측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패소 의결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 밀도'는 배터리의 성능 내지 효율을 검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활용된다는 것이 박 교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조사 결과 "SK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LG의 그것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사건은 원점에서의 재검토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성능에서 앞선 SK 측이 LG 배터리 직원들로부터 영업비밀을 빼낼 이유가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9년 4월, LG에솔은 SK이노에 대해 “2017년부터 자사 전지사업본부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빼돌려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ITC는 지난해 ‘증거조사 절차(Discovery) 위반’을 이유로, 예비판정을 통해 'SK이노 조기 패소'를 결정했다. ITC는 지난달 10일 열린 최종 의결에서도 원고인 LG에솔의 손을 들었다.

영미법은 증거조사절차상 위법이 인정되는 경우, 사건 쟁점에 대한 심리 없이 패소 판결을 내린다. 이는 영미법 고유의 확립된 판례법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 법 체계는 '실체적 진실 규명'을 중시하는 대록법계의 전통을 따른다. 사안을 다루는 기준이 전혀 다른 만큼 ITC의 최종 의결에 대한 판단도 다를 수밖에 없다.

ITC는 최종 의결을 통해 'SK이노가 제조한 배터리 셀, 관련 부품, 배터리팩 완성품의 미국 내 수입을 향후 10년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LG에솔 소송 전략, 역설적으로 SK 측 합의 명분 잃게 만들어'  

박 교수는 승소를 안긴 LG의 소송 전략이, 되레 SK이노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이에 대한 그의 설명.

“기업 입장에서는 합의금을 받는 것이 현실적인데, LG의 소송 전략은 SK가 합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LG의 의중은 합의가 아니라 ‘SK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끝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

ITC의 최종 의결은 '조기 패소 결정'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증거조사절차상 위법을 지적한 LG에솔의 소송 전략은 승소를 이끌어내는 '신의 한 수'가 됐지만, 역설적으로 SK이노가 합의에 나설 명분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 박 교수 지적이다.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판단 없이 내려진 ITC 의결을 SK이노 주주와 임직원들이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SK이노-LG엔솔 '배터리 분쟁', 이익은 중국 등 제3국 경쟁기업 몫"

박 교수는 "두 회사의 공방이 길어질수록 이익은 중국 배터리 업계가 취할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양 측의 대승적 합의를 촉구했다. 그는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이 일본과 중국, 미국에 밀리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며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배터리 회사 기업들도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력질주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두 회사가 서로 멱살을 붙잡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평행선을 달리는 양사의 행태를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각에선 우리나라 배터리 기술이 세계 최고라며 자만하고 있지만, CATL 등 중국 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이미 위협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배터리 산업의 핵심은 ‘소재’이다. 문제는 베터리 소재 분야에서 우리는 이미 중국에 선두 자리를 내눴다는 것이다. 2차 전지 핵심 소재인 ‘전구체’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는 것의 그의 주장이다. 이 가운데서도 핵심 소재인 '양극활물질 삼원계 전구체'는 중국의 주력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는 "확실한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며 "중국은 우리나라와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박 교수는 “배터리는 양극활물질에서 전구체가 핵심 기술인데 중국이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아주 미흡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두 기업이 미국에서 벌이는 배터리 분쟁은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경쟁사들의 이익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른바 '중간지대 설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가칭 '배터리 재단' 및 '배터리 펀드'를 양 사가 총 1조 가량 공동 출자하고, 출자 부담은 8:2 또는 7:3으로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보다 더 많은 대신, 지분은 동등하게 갖는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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