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정보, 받진 못하고 제공 의무만?... '마이데이터' 규제의 역설(逆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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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정보, 받진 못하고 제공 의무만?... '마이데이터' 규제의 역설(逆說)
  • 양일국 기자
  • 승인 2021.02.2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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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이터 막아놓고... '데이터 제공' 강제
8월 선발주자들 본격 경쟁... 과잉규제 논란
금융위, 1월 규제개선안 예고하고 '하세월'
"출발선 다른 불공정... 첨단분야 규제개선 시급"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시장경제신문DB

마이데이터 사업 진출이 보류된 금융사들이 타사에 고객 데이터를 제공해야 할 처지가 됐다. 금융사가 오랜 기간 경비를 들여 축적한 데이터지만 결국 남 좋은 일만 하도록 강요하는 당국의 규제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최근 '금융 마이데이터 표준 API 제공 시스템 구축'을 위해 분주하다. 마이데이터 정보 수집 방식이 오는 8월 4일부터 '표준 API'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기존의 '스크래핑' 방식은 고객의 인증정보를 이용해 특정 금융사,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자동으로 추출해서 제공한다. 해킹 시 아이디와 패스워드 등 중요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새로운 API 방식은 중요정보 대신 일시적 허용권한증표(토큰) 방식으로 이용자가 부여한 권한 내에서만 정보수집이 허용되며 보안상 유리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하나은행을 포함한 하나금융지주 계열사 3곳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지난해 11월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 심사가 보류됐다. 금융당국은 하나금융이 '국정농단 특혜대출 의혹'으로 2017년 시민단체로부터 형사 고발돼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인 점을 심사 중단 사유로 들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하나은행이 당시 대출을 해준 직원을 임원으로 승진시킨 점을 문제 삼았지만 현재까지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인 하나금융이 고발되면서 하나은행 뿐만 아니라 하나금융투자, 하나카드, 핀크 등 계열사들까지 모두 마이데이터 사업에 대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업계 안팎에선 마이데이터와 아무 관련이 없는 정치적 이슈로 신사업 진출을 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마이데이터 진출 막혔는데 타사에 자료제공은 하라니.."

문제는 하나은행은 API 시스템을 구축해도 당분간 자사의 축적된 고객 데이터를 타사에 일방적으로 제공만 해야한다는 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정상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를 받은 다른 금융사들이 요구하면 심사가 보류된 금융사도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각 금융사들이 축적해온 고객 정보와 각종 데이터는 곧 '피와 살'과 다를 바 없다"면서 "개별 데이터 하나 하나가 기록되기까지 엄청난 경비와 노력이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이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개정된 신용정보법은 핀테크 기업이 기존 금융사에 계좌, 대출, 카드, 보험 등의 금융정보를 요구할 때는 그 대가로 수수료 내지 열람료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마이데이터 경쟁의 핵심은 결국 자사 데이터를 외부 자료와 융·복합해 가명정보·익명정보·통계정보등 '비식별정보' 형태로 판매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IT 업계 관계자는 "금융사가 고객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제공하기만 한다면 결국 '경쟁자'들의 상품개발과 품질개선을 돕는 것"이라면서 "자사의 데이터를 시장에 내놓고 평가받을 기회를 제한하는 것 역시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1월 규제개선안 예고하고 '하세월'

지난 1월 6일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신규 인허가 시 운영되고 있는 심사중단 제도가 판단 기준의 모호성 등으로 비판이 있는 만큼 합리성을 제고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금융권은 당국의 전향적인 규제완화를 기대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이 나오지 않으면서 마이데이터 심사가 보류된 금융사들은 자산조회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금융위는 "심사보류 사유가 해소되는 즉시 심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재 하나금융에 대한 고발 건은 아직 검찰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아 기약 없는 답보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하나은행 외에도 카카오페이, 삼성카드 등도 각각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심사가 중단된 상황이다.

반면 본허가를 받은 28개 기업들은 오는 8월까지 마이데이터 사업 관련 인프라 구축을 마치고 본격적인 신사업 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결국 당국이 5개월 안에 개선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하나은행은 먼저 출발한 경쟁사들에게 자사 데이터를 제공하며 규제완화를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 금융사의 고객 정보는 일견 별 것이 아닐 수 있지만 여러 금융사의 정보들이 융복합을 거치면 어떤 '대박'이 될지 알 수 없다"면서 "이런 첨단 분야에서 '선수'들의 출발선을 다르게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권 전반이 오프라인 영업은 줄고 디지털과 빅데이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시기인데 지금 한 발 늦은 것이 나중에 얼마나 큰 손실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번 표준 API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 "고객 정보보호와 편의성을 위한 조치이며 관련 규정을 성실히 준수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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