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지시한 것으로 추정"... 檢, 삼바 재판서 8개월째 관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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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인멸 지시한 것으로 추정"... 檢, 삼바 재판서 8개월째 관심법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1.02.0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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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임직원 '증거인멸' 7차 공판 분석
회의참석 안한 임원에... 檢 "회의서 지시" 억측
"교사범이면서 실행범?" 재판부, 공소모순 지적
재판부 작년 6월부터 석명 요구... 檢, 입증 못해
분식회계 행정소송 1심 선고, 사건 심리에 큰 영향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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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의혹 사건' 항소심 공판이 코로나 여파로 5개월여 만에 열렸으나 심리는 사실상 공전됐다. 직전 공판에서 재판부는 교사범들 사이의 이른바 ‘공동교사’ 법리구성이 가능한지 여부를 주제로 검찰에 석명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다. 

‘공동교사’ 가능 여부에 대한 법리 구성은 이 사건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삼성바이오와 관계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소속 임직원들의 지위나 역할이 각각 다른데도, 검찰은 이들을 모두 증거인멸·은닉 교사범인 동시에 공동정범으로 판단하고 공소장을 작성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이 같은 법리구성에 강한 의문을 표했다. 공동교사 법리 구성은 ‘행위를 지시한 사람’과 ‘실행한 사람’의 범주가 모호해 진다는 태생적 모순을 안고 있다.  

2일 서울고법 형사2부(함상훈 김민기 하태한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 등 7명에 대한 증거인멸 의혹 사건 7차 공판기일을 열었다. 이날 공판은 지난해 9월 18일 6차 공판이 열린 이후, 코로나 확산 등 우여곡절 끝에 약 5개월여 만에 속개됐다.

앞서 지난해 6월 5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법리상 교사범과 공동정범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지 강한 의문을 나타내면서 공소사실 법리 구성의 모순을 지적했다. 피고인들의 회사 내 지위나 역할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교사범이면서 동시에 공동정범이 성립된다는 검찰 공소사실은 법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변호인단 항변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가 구체적으로 검찰에 답변을 요구한 대표적 사안은 '교사범들 사이의 공동정범이 성립 가능한지', 이른바 '공동교사'의 법리 적용에 문제가 없는지 등이다. 특히 재판부는 위 법리적 쟁점사안에 대한 선례(대법원 판례)와 논거를 함께 제시할 것을 검찰에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약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석명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법리 구성은 검찰에 그 입증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항소심 판결의 향방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법리오해'는 대표적인 원심 파기 사유인 만큼, 재판부가 납득할 만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검찰로서는 이 사건 법리 싸움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 

검찰에 출석하는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 사진=시장경제DB
검찰에 출석하는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김태한 대표. 사진=시장경제DB

 

檢, 공소장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무시했나? 

검찰과 변호인단이 이견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은 김홍경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사장이 ‘어린이날 회의’에 참석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및 삼성바이오 소속 임원 등이 2018년 5월 5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에 모여 대책회의를 열고 증거인멸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의에서 삼성바이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내 전산자료에 대한 삭제가 결정됐고, 부하직원에게 순차 지시하는 방법으로 증거인멸이 이뤄졌다는 것이 검찰의 기본 시각이다.   

변호인단은 "김 부사장이 당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공소장에는 참여한 것으로 돼 있다"며 검찰 공소사실의 허점을 짚었다. 검찰은 “김 부사장의 회사 내 지위와 역할 등을 감안하면 사전에 회의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참석도 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라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 “김 부사장의 통화 내역이나 본인의 계열사 업무자료가 일체 삭제·은닉된 것으로 미뤄 볼 때, 김 부사장이 일련의 행위에 대해 몰랐을 수 없고, 당연히 관여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동 주장을 살피면, 검찰은 김 부사장이 어린이날 회의에 참석했음을 직접 입증하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개연성을 바탕으로 참석을 '추단'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같은 주장에 변호인단은 “검찰은 김 부사장의 회의 참석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며 “그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을 경우, 교사범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도 “검찰의 주장은 통화내역을 볼 때, 김 부사장의 관여를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 같다”면서 “검찰이 달리 증거조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실인정에 대한 문제일 수 있다”고 정리했다.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김 부사장의 회의 참석 여부를 입증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진=시장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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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증선위 행정소송... 증거인멸 의혹 공판 영향 줄까

삼성바이오가 증선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이 항소심 재판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바이오가 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행정소송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소송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삼바 증거인멸 의혹 사건’ 항소심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혐의’(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등 형사사건의 선고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판단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행정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핵심 쟁점이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변경의 적절성'에 맞춰져 있는 만큼, 증선위 고의 분식회계 의결에 대한 당부 판단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이 사건 증거인멸 의혹 사건과 위 행정소송은 묘한 역학관계에 놓이게 됐다. 

행정소송에서 분식회계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증거인멸 의혹 사건 항소심은 피고 측에 상당히 유리한 국면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증거인멸 의혹 사건은 기본적으로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사실이 없다면, 이를 전제로 하는 검찰의 사건 공소사실은 기초가 무너진다.  

변호인단은 “행정소송에서 분식회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본안(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은 1~2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행정소송 선고는 그보다는 빠를 것으로 예상되므로 행정소송의 결과를 보면서 이 사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것은 맞지만,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기 전 수사 단계에서는 수사기록을 공개할 수 없어서 기일이 늦춰졌던 것으로 안다”며 “현재는 증거자료를 행정소송 재판부도 열람할 수 있지만, 분량이 방대하기 때문에 선고가 빠르게 나올지는 의문”이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 사건 다음 공판 기일은 3월 30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속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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