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건' 화장품만 착해?... 中 수출기업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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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건' 화장품만 착해?... 中 수출기업을 위한 변명
  • 최지흥 기자
  • 승인 2021.02.0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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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 필수' 中수출 기업, 마녀사냥 말아야
더바디샵, 모회사 로레알로 알려지며 도매급 비판
아모레·LG생건도 中수출 이유로 진정성 의심
'中수출 =가짜 비건 화장품' 의식 변화 필요할 때
비건을 모토로 내세우며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아워글래스'. 모회사가 다수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유니레버라는 사실에 진정한 비건 화장품이 아니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사진=아워글래스
비건을 모토로 내세우며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아워글래스'. 모회사가 다수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유니레버라는 사실에 진정한 비건 화장품이 아니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사진=아워글래스

'비거니즘(Veganism, 육식을 먹지 않는 완벽한 채식주의)' 열풍이 화장품 영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먹는 것 뿐 아니라 바르는 것에서도 '비건'을 선언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비건 화장품에 대한 정의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흔히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유래 성분이 없는, 동물관련 유전자 0% 인증을 획득한 화장품을 의미하는 말로 통용된다.

미국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비건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153억 달러(약 17조원)이다. 2010년 중반 이후 연평균 6.3%씩 성장해 2025년에는 208억 달러(약 2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의미로만 본다면 비건화장품 성장세는 동물 윤리 차원에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최근 ‘비건 화장품=착한 화장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동물 실험과 연관된 기업들이 욕을 먹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비건이 아닌 화장품은 마치 나쁜 화장품인것 처럼 몰아가는 것이다.

동물실험이 의무화 된 중국 수출 기업들에 대한 비난이 대표적이다. 비건을 내세운 브랜드지만 모회사가 중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나 단일 브랜드에서 한 개 라인만을 비건 컨셉으로 출시한 기업이 표적이다.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 중 비건 브랜드를 출시하는 경우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례로 동물실험 반대 운동에 앞장선 '더바디샵'을 들 수 있다. 유럽은 물론 전세계 시장에서 화장품 동물실험 퇴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더바디샵'은 중국 진출 포기 선언에도 불구, 모회사가 로레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에 비호감 반열에 올랐다. 공격적인 M&A로 유명한 로레알은 중국에도 다수의 브랜드를 수출하고 있다. 

비건을 모토로 내세우며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아워글래스' 역시 마찬가지다. 모회사가 다수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는 유니레버라는 사실에 진정한 비건 화장품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등 다수의 국내 대표 브랜드들이 비건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비건 제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중국 수출기업이라는 이유 하나로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동물실험을 의무화하고 있는 중국을 마치 미개한 국가로 몰아가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동물실험 반대를 내세운 유럽도 7년 전인 2013년에서야 화장품 동물실험이 금지됐다. 한국은 4년이 지난 2017년에 관련법이 발효됐다. 이 마저도 대체실험이 불가능한 부분은 여전히 동물실험 유예를 인정해 준다. 중국 수출을 위해서 동물실험을 인정해주는 단서 조항도 있다.

사실 화장품 제조과정에서 동물실험은 의약품 수준의 효능과 효과를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니즈가 반영된 결과다. 더 좋은 성분의 인체에 무해(無害)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실험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성 검증 역시 마찬가지이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 필수'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비건 화장품 열풍은 채식주의자라는 극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반려동물 증가와 사회단체들의 동물실험 반대 운동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비건 화장품은 하나의 계몽운동으로 변했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필수 항목처럼 여겨지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화장품이라는 극히 개인적인 소비재 구매에도 '가치 소비'가 강조된다. 비건 화장품은 무조건 옳다는 '반(半)강제적'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적 논리가 아닌, 객관적 검증을 통한 소비자들의 합리적 비판이 절실한 때이다. 동물실험 반대는 응원해야 마땅하지만 화장품 제조에 '필수불가결(必須不可缺)'한 명제로 가둬둘 수는 없다. 지금은 과도기다. ‘중국 수출 화장품=가짜 비건 화장품’이라는 인식을 극복하기에 현실은 냉혹하다. 기업들에게 너무나 많은 출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다양한 검증 방법이 나올 것이고, 그 때가서 비판을 해도 늦지 않다.

화장품이 사치품에서 일상 생활용품으로 바뀐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화장품 역사 이제 70년. 유럽, 미국, 일본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짧지만 'K-뷰티'는 세계 10위 안에 들며 저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비판은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성장 기세(氣勢)를 꺾기도 한다. 우리 기업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는 것은 어떨까. 이미 많은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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