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성형의, 밤엔 119 대원... "응급현장 어디든 달려갑니다"
상태바
낮엔 성형의, 밤엔 119 대원... "응급현장 어디든 달려갑니다"
  • 최지흥 기자
  • 승인 2021.01.30 15: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경초대석] 강남구의사회 황규석 회장 인터뷰
강남소방서 영동 119센터 구급대원 활동 눈길
"1일 20번 출동까지... 강남북 5번 왕복한 적도"
"현장서 본 구급대원에 감명, 미약하지만 함께 할 것"
사진=강남구의사회
사진=강남구의사회

지난해 겨울, 강남소방서 영동 119 안전센터에는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다. 황톳빛 가득한 소방복들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하얀 가운과 목에 걸린 은빛 청진기. 강남구의사회 황규석 회장이다.

화재나 구급 출동이 발생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동행하는 그는, 현장에서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이고 누구보다 바쁘게 환자를 돌본다. 이미 소방서에서는 유명인이다.

어느 때보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는 화재 현장, 단 1초 차이로 환자의 생사가 갈리는 응급 출동 현장에서 황규석 회장은 ‘진짜 의사’로 통한다. 그는 왜 병원이 아닌 119 출동 현장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의사가 있는 곳, 유치원생도 알 법한 틀을 깬 황규석 회장. 그의 독특하지만 이색적인 일상을 따라가 보았다.
 

-황규석이라는 인물이 궁금하다. 의사라고 들었다.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

"자랑할 만한 것은 없다. 현재 강남구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강남구의사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의사회,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성형외과 의사와 119? 쉽게 연상되는 조합은 아니다. 어떻게 강남 소방서 안전센터에서 활동을 하게 됐나?

"요즘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구급대원들과 현장에 나가면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아해 하는 이들도 있다. 응급실에서 만나는 의사들도 신기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의사가 의료지원이 필요한 곳에 있다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지 않나. 그동안 강남구 의사회 회원으로서 몇몇 사회공헌 활동에 동참해 왔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되면서 대면을 통한 지원 활동이 어렵게 되었다.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119 현장에 간 것은 그런 고민 끝에 결정이었다. 협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길어지긴 했지만, 다행히 전임 서장과 새로 부임한 윤득주 강남소방서장이 취지를 높이 평가해 주셔서 지난해부터 함께 할 수 있었다.

-119 안전센터 구급대원 활동은 개인 자격인가, 아니면 의사회 차원의 지원 활동인가?

"몇 년 전부터 강남소방서 김윤섭 전임 서장과 의사회 차원의 활동을 계획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소방청과의 협의, 강남구 의사회 회원들의 협조, 관련 법규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간단히 결정하고 시스템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강남소방서의 허락과 통제를 전제로 개인 자격 참여로 하게 됐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앞으로 관련 기관의 허락과 취지를 공감해 주시는 의사들이 있다면 많은 동참해 주었으면 한다."

-의사가 참여할 수 있는 공헌 활동이 많을 텐데, 왜 119였나?

"코로나 극복을 위해 현재도 많은 의료진이 현장에서 환자를 만나고 진료하고 있다. 119 현장 역시 코로나는 위험 요소고 현장에서 구급대원들과 환자들 역시 코로나에 대해 준비가 필요하고 힘든 상황일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구급대원들의 경우 검사나 치료를 위한 의료 현장보다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구급대에서 하는 일은 어떤 것인가? 참여 빈도도 알고 싶다

"말만 들으면 거창하지만 사실 미미한 역할이다. 2~3주에 한 번씩 병원 진료를 마친 후에 영동 119 안전센터로 가서 구급 2팀 3명과 한팀으로 출동한다.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9시 교대가 이루어질 때까지 구급대원들을 돕고 있다. 강남소방서 영동센터는 상시 2개 구급팀이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한 팀이 2~3주에 하루 야근 근무가 돌아오기 때문에 자주 구급활동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사진=강남구의사회
사진=강남구의사회

-운영하는 병원의 의료진과 119 구급대원들과는 차이가 있을 텐데, 호흡은 잘 맞나?

"처음에는 조금 서먹서먹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가족 같다. 솔직히 처음 함께 했을 때 실수를 하거나 오히려 폐가 될까 많이 긴장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 지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아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응급상황 대처,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등 오히려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사실 응급처치는 구급대원들이 대부분 하고 있어 의사로서의 경험과 인프라를 공유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의사로서 체감한 119 현장은 어땠나?

"강남에서 20년 넘게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영동센터 관할 지역에서만 활동한다면 그다지 힘들지 않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근무를 시작하고 야간에만 적게는 10번, 많게는 20번 가량의 출동이 발생하고, 관할 지역(논현 1·2동, 압구정동, 신사동)뿐만 아니라 서초구와 송파구까지 출동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정말 많이 놀랬다.

게다가 응급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병상이 비거나 응급 대처가 가능한 병원을 찾다 보니 하루 밤새 강남·강북 지역을 5번 넘게 왕복한 적도 있었다. 다른 구급대원들에게 물어 보니 급하면 경기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고작 2~3주에 한 번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고, 동시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119 대원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강남구의사회
사진=강남구의사회

-119 외에도 다른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나?

"개인적으로는 119 구급 활동 참여와 지역아동센터 몇 곳을 후원하고 있다. 대부분은 강남구의사회에서 지원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강남구에도 적지 않은 수의 저소득 가정이 있다. 강남구의사회는 이 중 의료지원이 절실한 이들에게 수술비나 의료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관내 장래가 촉망되는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고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 활동이 많은 관공서에 마스크와 핫팩 등을 지원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정부 기관의 요청을 받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단체에서 월 1회 지역봉사를 수행하고 있고, 연 1회 해외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사진=강남구의사회
사진=강남구의사회

-앞으로도 봉사 현장에 있을 생각인가?

"얼마 전 기사에서 구세군의 거리 모금액이 줄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온도탑)가 기부금 목표액을 낮춰 잡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추운 겨울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상징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믿었던 터라 이 소식을 접하고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파만큼이나 시민들의 마음도 얼어붙은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코로나 상황이라는 전례가 없는 재난으로 서민들의 삶이 더 각박해지고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힘든 상황일수록 서로에게 의지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도 아직 멈출 생각은 없다. 구급대원의 출동이 사라지고 의사를 만나는 일이 줄어야 좋은 일이지만, 여전히 의사 황규석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약하지만 활동 할 수 있는 순간까지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있고 싶다."


관련기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