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살 깎아 버틴 中企화장품... 복지부는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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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제살 깎아 버틴 中企화장품... 복지부는 뭐하나
  • 최지흥 기자
  • 승인 2021.01.3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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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가 낮춰 대량 판매... 뒤로 손해보는 구조
K-뷰티 인지도 하락 등 폐해... 정부지원 절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코로나 백신 의정공동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질병관리청에서 열린 코로나 백신 의정공동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화장품은 코로나 여파에도 수출액 75억69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15.7% 증가했다. 메이크업 제품과 기초화장품이 수출 증가에 한 몫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 화장품 업계는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수출길이 막히고 운임도 3배 이상 올랐는데 어떻게 수출이 늘었냐며 쉽게 납득을 못하는 분위기다.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메이저 화장품사들 중 매출이 늘어난 곳이 없기에 어떤 브랜드가 수출 성과를 올렸는지 궁금해 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업계가 분석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그동안 중국에 비공식적으로 수출한 화장품들이 위생허가를 받으며 정식 집계에 잡히기 시작해 수출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일명 ‘보따리’로 불리는 불법 수입 화장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 공식수출 대비 3배 이상 높았던 비공식 수출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두 번째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을 통한 역직구 증가다. 티몰을 시작으로 중국 내 다수의 유통 플랫폼들이 중국 왕홍이나 국내 인플루언서를 활용해 역직구 형태로 한국 브랜드를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중국 최대 쇼핑 시즌인 11월 11일 광군제에서 국내 화장품 브랜드들이 티몰 판매 상위권에 랭크되고 쇼피, 라자다 등 해외 주요 쇼핑몰에서 한국산 화장품 매출이 증가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판 틱톡인 도우인이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진행하면서 한국 제품들을 다양하게 판매해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세 번째는 경기 불황, 재고 부담으로 수출 공급가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마진율은 낮추는 대신 수량을 늘렸다는 것인데, 업계에서는 이를 수출 증가의 가장 큰 이유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온라인 쇼핑몰은 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했다. 역직구 판매 역시 가격 할인율 경쟁이 치열해져 이익률은 최저 수준이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대기업 수출 공급률은 소비자 가격의 60~65%로 형성돼 있다. 하지만 면세점 할인과 편법 유통으로 공급률은 하락 추세이고, 최근에는 정식 수출도 40~45% 정도로 낮아졌다. 중소기업의 경우는 이보다 더 낮은 30~35%다. 수수료가 아닌 공급가로 운영되는 역직구의 경우는 20~25%까지 떨어졌다. 한 중소화장품 기업은 매출이 40%대로 크게 상승했지만 수익은 거의 못남겼다.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원가에 제품을 수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화장품 중소기업들은 수출은 소폭 상승했지만 수익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수출 공급가를 크게 낮추며 '제살 깎기식'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몇몇 브랜드들의 경우 소량 제품만을 생산하는 이른바 ‘기획 생산’으로 수출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도매업자나 해외 밴더에게 일정 수량이 넘지 않게 공급하고, 대량 주문이 들어올 경우 한달여의 기간을 정해 선금을 받고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 기업도 있다.

코로나 시국에서 '공급가 내리기' 전략은 기업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공급가가 낮아진다는 것은 성장 중이던 K-뷰티의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한번 내려간 가격은 다시 올리기 쉽지 않다. 현재 국내 화장품 사업자는 2만여 개에 달한다. 이중 연간 매출이 10억 원 이상인 기업은 5,000여 개로, 코로나 태풍을 견디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버티는 중이다. 대기업들은 메인 상품을 새롭게 개발해 론칭하거나 브랜드 리뉴얼 작업에 한창이다. 무너진 가격대로 2021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중소기업은 아예 생산 단계부터 저가 판매를 위한 온라인 전용 제품을 만들고 있다. 가격 경쟁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2019년 12월 발표한 '미래 화장품 육성방안'을 보완해 ’K-뷰티 혁신 종합전략‘을 발표했다. 취지는 시장 활성화였지만 역시나 실질적 대응책은 없었다. 2019년과 판박이로 수출 성과와 일자리 창출만 내세웠다. 모든 일상을 집어 삼킨 코로나가 없던 지난해 세운 전략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무늬만 증가한 수출의 이면을 외면하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K-뷰티 글로벌을 말하기에 앞서, 지난해 6월부터 집합금지에 묶여 생계를 위협 받는 방문판매와 다단계, 관광객 감소로 문 닫는 로드숍, 재고처리에 피눈물 흘리는 중소기업을 먼저 보듬어야 할 때다. 

특히, 이번 발표내용 중 어디에도 포스트 코로나는 없었다. 전세계 화장품 유통이 비대면으로 급변했는데 온라인 대책 하나 없이 오프라인 홍보관을 이야기 하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세상이 바뀌면 사고(思考)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내부의 현실부터 돌아 보라. K-뷰티는 홍보가 아닌 진정성 있는 정책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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