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자전거 배달 급증하는데... 국토부 "화물·이륜차 배달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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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자전거 배달 급증하는데... 국토부 "화물·이륜차 배달 99%"
  • 최유진 기자
  • 승인 2021.01.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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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 발목잡는 '생활물류법', 배달업계 분노
배달·택배 운송수단, 화물·이륜차로 제한 논란
전기자전거·승용차 등 배달기사, 법 '사각지대'
국토부 "배달 대부분 화물·이륜차" 황당 답변
기타 운송 긱워커 급증... 현실 외면
업계 "특정 모빌티티 두 개만 합법 테두리... 현장 혼란 당연"
배달하는 라이더 모습. 사진=시장경제DB
배달하는 라이더 모습. 사진=시장경제DB

정부가 택배노동자 보호롤 역설하며 제정을 강행한 생활물류법이 되레 배달업계 종사자 상당수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법률안 제정 과정서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측을 지나치게 의식, 운송수단을 '화물차와 이륜자'로 사실상 제한하면서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배달업을 영위하는 이들을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다는 지적이다. 법령 제정에 따른 현장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국토부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현장의 혼란과 불안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8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이하 생활물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생활물류법은 택배, 배달 등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생활물류서비스 산업의 체계적 시스템을 규율하기 위해 발의됐다. 생활물류법은 택배업을 등록제로 바꾸고, 오토바이를 이용한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사업의 경우 인증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배달업종사자들이 과로사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잇따라 발생하자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그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발의됐다. '생활물류법'을 통해 등록 및 인증을 한 택배, 소화물배송대행서비스업 종사자는 위 생활물류법의 보호 범위 안에 위치한다. 

위 법률 제정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동 법률의 일부 조항이 되레 신산업 발전을 해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생활물류법'은 배달·택배 운송수단을 '화물차와 이륜차'로 제한하고 있다. 법률을 문언대로 해석한다면 배민커넥트, 쿠팡플렉스 등 도보·킥보드·자전거·승용차로 배달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본지 취재 결과, 국회 상임위에서는 '배송수단 제한'이 초래할 역기능과 관련돼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제정 법률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외부의 압력'으로 이런 우려가 법률에 반영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를 지목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연합회 측에서 "운송수단 확대는 물류산업의 퇴보를 야기할 것"이란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생활물류법 제정을 위한 공정회 회의록에도 나와 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사진=시장경제DB
변창흠 국토부 장관. 사진=시장경제DB

생활물류법 제정으로 혼란이 커지는 상황과 관련돼 국토부 관계자는 "택배를 비롯해 배달업 종사자의 99%가 화물차·이륜차를 이용하고 있다"며 "제정된 생활물류법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한 배달업 종사자 수는 소수이며 그들 역시 (법률에 의한) 규제를 받는 것을 반기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활물류법은 인증을 받는 제도일 뿐 (화물차 및 이륜차를 제외한) 다른 운송수단을 불법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유권해석을 담은 참고자료 등을 별도로 배포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배달수단 대부분이 화물차나 이륜차'라는 발언을 뒷받침할 통계자료의 존재를 묻는 기자 질문에 "근거자료는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국토부 관계자 말과 다르게 최근 화물차·이륜차 외의 운송수단을 이용해 배달업을 하는 '긱워커(Gig Worker)' 수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긱워커는 사업주와 단기계약을 맺고, 파트타임이나 일회성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뜻한다. 배달의민족에서 운영하는 '배민커넥터', 쿠팡 '쿠팡플렉스', GS25 '우리동네 딜리버리 친구'(우친), CU '도보배달' 등을 통해 배달업무를 수행하는 이들 역시 긱워커다.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12월 기준 긱워커 수가 5만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1년 사이 5배가 증가한 것이다. 쿠팡플렉스도 현재까지 누적 등록자 수가 15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GS25에 따르면, '우친'을 이용하는 긱워커의 수는 지난해 12월 기준 4만5000명으로 같은 해 8월 대비 45배 급증했다. 글로벌 프리랜서 플랫폼 '숨고' 측이 공개한 데이터를 보면, 부업이나 투잡이 아닌 '전업 긱워커'(파트타임 근무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약 15만명 정도이다. 

배송수단을 화물차와 이륜차로 제한한 생활물류법 제정에 배달업계는 우려와 함께 불안감을 내비쳤다.

업계 관계자는 "생활물류법은 '새로운 플랫폼 노동자의 불법화'가 아니라 '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됐는데 지금은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변화하는 시장을 정부가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향후 스타트업을 고려한 현실적인 제도 보완 등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생활물류법은 미래에 확장될 이동수단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은 택시 기사도 부업으로 택배 일을 한다. 법률이 배송수단을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생활물류법 제정 과정을 지켜본 배달업계 관계자는 국토부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특정 모빌티티 두 개만 합법적 테두리 안에 두고, 나머지는 애매모호한 영역에 남겨놨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국토부가 신산업 현장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특정단체의 주장만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토부가 유권해석이라도 적극적으로 해 주면 좋을 텐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온다면 현장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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