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출신은 공정, 삼성 추천 인사는 불공정"... 특검의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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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출신은 공정, 삼성 추천 인사는 불공정"... 특검의 궤변
  • 유경표 기자
  • 승인 2020.11.1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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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파기심, 전문심리위원 선정 대립각
우리가 정의?... 특검, '내로남불' 인식 도마위
檢, '참여연대 출신' 홍순탁 회계사 추천
홍 회계사, 동 사건에 적극 동참... 공정성 의문
특검 "삼성만 적극적 능동적으로 뇌물 공여"
파기 전 1~3심에선 "청탁 성격은 묵시적 포괄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시장경제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특검이 전문심리위원 선정과 관련,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펴며 재판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재판부의 소송지휘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전문심리위원을 통해 삼성 준법감시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재판부 방침에 반발해 ‘기피신청’까지 불사했던 특검이, 갈수록 불리한 상황에 몰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9일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 전현직 임직원 뇌물 등 혐의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 선정' 취지 설명에 이례적으로 긴 시간을 할애했다. 

전문심리위원들의 의견은 재판부가 양형을 정함에 있어 고려할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특히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양형에 전문심리위원들의 의견만이 유일하게 반영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동 제도 도입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우선, 재판부는 형법 제 51조가 정한 양형조건 4가지를 소개했다. 여기에는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 정황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양형 요인 중 이 부회장에게 적용될 수 있는 요건은 '범행의 동기 및 수단', ‘범행 후 정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뇌물 공여 등의 범행은 절대권력을 손에 뒨 전직 대통령의 부당한 압력에서 비롯됐으며, 이는 '최서원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재판을 통해 드러난 객관적 사실이다.

국정농단 사건과 같은 불행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준법 통제기구의 강화가 절실하다. 내부의 석연치 않은 자금 흐름을 감시할 수 있는 독립된 통제기구가 정상 작동한다면, 외부세력의 압력에 떠밀려 회사 자금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복적 사법'을 중시하는 이 사건 재판부가 삼성 측의 준법통제기구 운영 실태를 검증, 그 결과를 이 사건 양형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재판부는 삼성이 설립한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의 실효성 검증을 위해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전문심리위위원제'를 도입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운영 여부를 살필 전문심리위원으로는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 참여연대 출신 홍순탁 회계사, 김경수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등 3인을 선정했다. 강 전 재판관은 이 사건 재판부가 추천한 인물이다. 강 전 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주심을 맡았다. 

특검은 홍순탁 회계사를, 변호인단은 김경수 변호사를 각각 추천했다. 

 

특검 '참여연대 출신' 회계사, 

삼성 측 '김경수 경남지사 변호인' 각각 추천   

특검이 추천한 홍씨는 2018년 11월27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자격으로 한겨레에 <‘삼바’ 밝혀낸 홍순탁 회계사 “3대 회계법인이 조작 공모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그는 위 기사에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0.35:1)에 맞춰 모직의 주식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야 했으며, 그 수단 중 하나로 삼바 분식회계가 이뤄졌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홍씨는 삼바 분식회계를 '실제 일어난 일'로 단정하면서 국내 주요 회계법인을 공범으로 표현했다. 

이 사건 검찰 수사의 밑바탕이 된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은 2015년 상반기 참여연대가 처음 이슈화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참여연대는 이후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을 상대로 수 차례에 걸쳐 고발장을 작성, 수사당국에 접수했다. 홍씨의 과거 이력 및 이 사건과 참여연대의 '인연' 등을 종합할 때 특검의 홍씨 추천은, 사실상 '사건 당사자'를 전문심리위원에 위촉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2018년 11월 15일 홍순탁 회계사(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의원,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이 국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한겨레 기사 화면 캡처.
2018년 11월 15일 홍순탁 회계사(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의원,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은정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팀장이 국회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한겨레 기사 화면 캡처.

변호인단의 추천을 받은 김경수 변호사는 '마지막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특수통으로 대전, 부산, 대구 등 3곳의 고검장을 역임했다. 변호사 개업후, 드루킹 사건으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 1심 변호를 맡기도 했다.

전문심리위원들은 삼성준법감시위원회 및 삼성 핵심 계열사 7곳의 내부 준법감시기구 등에 대한 현장점검, 자료조사를 마친 뒤 이달 30일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예정이다. 

그러나 특검은 재판부 방침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특검은 변호인단에서 추천한 김경수 변호사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에 연루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변호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피고인들과 경제적 이해관계로 묶여있다는 주장을 폈다. 

특검은 “김 변호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실사에 참여한 회계법인을 변호하고 있다”며 “피고인들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는 법무법인의 기업형사팀 팀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심리위원도 기피사유가 적용된다. 김경수 변호사가 준법제도 실효성을 공정히 심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위원 선정은 재판부 소송지휘권에 따른 직권사항이며 위원들의 의견은 양형조건의 하나일 뿐”이라고 중재에 나섰지만, 특검은 계속해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특검은 이 부분에서 궤변 수준의 당혹스런 논리를 폈다. 재판부가 “특검이 추천한 홍순탁 회계사도 참여연대 출신 아니냐”고 되묻자, 특검은 “홍 회계사는 공익적 목적이고, 김 변호사는 경제적 이익이 있다는 것이 차이”라고 답했다.

전술한 것처럼 참여연대는 15년 5월 모직-물산 합병 당시부터 앞장서 의혹을 제기했다. 홍순탁 회계사는 이 사건 관련 참여연대의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김 변호사가 삼성 합병 당시 실사업무를 맡은 회계법인의 변호인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면, 홍 회계사 선임도 같은 이유에서 철회돼야 논리에 부합한다. 특검의 이부분 주장을 궤변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복현 부장검사.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이복현 부장검사. 사진=YTN 뉴스화면 캡처

 

특검, 노골적 불만 표시에

재판부 "전문심리위원 선임은 직권사항" 

특검은 재판부의 전문심리위원 선정 과정을 두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규칙에 의거해 절차를 진행했다고 재판 중 수차례 언급하며 협조를 구했지만, 특검은 지속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공판검사로 법정에 선 이복현 부장검사는 “저희가 얘기할 때는 재판부가 끊는다”며 “말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안주셔서 저희도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여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계속 말씀하시라. 이 자리에서 다 듣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어 “위원 선정에 왜 이렇게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 위원은 재판부의 보조기관”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상황이 진정되지 않자 재판부는 ‘휴정’을 명했다. 

휴정 후 재판부는 "위원 선정은 법원의 직권사항이며, 이달 6일 각 위원 3명과 2~3시간 동안 면담 후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판단 하에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특검과 변호인단에게 각각 5분씩 위원 선정 관련 의견을 법정에서 밝힐 수 있도록 허가했다. 

특검은 “별도 기일을 지정해 위원들의 평가사항을 확정하는 한편, 위원들에게 삼성 내부자료 접근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삼성은 규모가 큰 기업인 만큼, 자료의 양이 방대해 충분한 검토기간이 필요하다”며 “투명한 절차 진행을 위해 재판부가 위원에게 요청한 사항이나 회의록 작성 등 모든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 사건은 특검의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10개월이나 공전됐다. 재판이 많이 지연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특검이 말하는 부분들이 올해 1~2월 달 공판준비기일에서 다퉈지고 그때 논의, 합의하고 검증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여건 상 위원들의 활동 기한을 무한정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판부 기본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측에서 스스로 준법감시제 개선방안을 많이 시행한 상태”라며 “이를 어떻게 실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위원들의 논의를 지켜보고, 그 다음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진=시장경제DB
사진=시장경제DB

 

특검, 재판부 석명요구에 '허점' 드러내

지난달 26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특검과 변호인단에 각각 석명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의견서 제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대통령의 헌법위반과 직권남용으로 인한, 기업 불법후원 및 뇌물사건’이라고 정의하면서 특검과 변호인단에 각 1개, 양측 공통 1개 등 총 3개의 석명사항을 요구했다. 

먼저, 특검에 대해서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후원을 요구받은 7개 대기업 중 삼성과 롯데 등 2곳 총수와 임원만 구속 기소하고 다른 5개 기업은 기소조차 하지 않은 사실을 인용하면서, 그 이유를 정리해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변호인에 대해서는, 지난 공판에서 특검이 양형 참고자료로 제기한 방위사업청 뇌물사건 등 4개 사건과 이 사건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정리해 의견서로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공통 석명사항으로는 대통령 요구를 따른 기업 총수의 불법후원행위를 처벌한 사례가 있는데, 양형 판단에 있어 이 사건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특검은 ‘최순실 사건’에 연루된 6개 기업 중 오직 삼성만이 적극적·능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재계 1위이자, 국내에서 경제적 권력 1위인 삼성은 대통령마저도 일방적 요구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며 “대통령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능력이 있는 지위에 있었지만, 다른 기업과 달리 적극적, 능동적으로 요구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특검의 답변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 사건 파기 전 대법원 상고심을 비롯 1심과 항소심 재판부도 '삼성이 명시적 대가를 요구하면서 대통령에게 적극적, 능동적으로 뇌물을 전달했다'는 특검 공소사실을 배척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파기 전 1~3심 재판부는 모두 "이 사건 청탁은 묵시적, 포괄적으로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청탁이 묵시적 포괄적으로 이뤄졌다면, 법리적으로 뇌물의 적극성은 부정되는 것이 한결 자연스럽다. 특검의 위 답변은 이 사건 심리를 통해 드러난 '객관적 사실'에 반한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특검의 요청에 따라 공판절차 갱신을 위한 증거조사기일을 23일 한 차례 더 열고, 30일 전문심리위원 의견진술기일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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